시민회의, 임태훈 배제 규탄하며 심사위 보이콧…통진당 후신 진보당 원내 진출 둘러싼 뒷말도
#위성정당 꼼수 어게인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21대 총선을 앞두고 도입됐다. 병립형 비례대표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였다. 소수정당이 당선자를 낼 수 있도록 다양성을 보장하자는 취지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따르면 지역구 의석수 비율이 정당 득표율보다 적으면 모자란 의석의 100%를 비례대표 의석으로 채워준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약 50% 의석만 채워준다.
그러나 부작용이 발생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비례대표만을 노린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꼼수 논란이 거셌다. 국민의힘은 처음부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반대해 왔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위성정당을 창당했다. 그러자 민주당도 약속을 어기고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그 결과 제도 취지와 달리 거대 양당으로 의석수가 편중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다시 위성정당이 등장했다. 국민의힘은 줄곧 병립형 비례대표제가 채택되지 않으면 위성정당을 창당하겠다고 했다. 결국 2월 23일 위성정당 국민의미래를 창당했다. 3월 13일 국민의힘은 비례대표 의원 8명을 제명했다. 제명 사유는 밝히지 않았다. 이들은 국민의미래로 당적을 옮길 예정이다. 이는 투표용지 기호 앞 순번을 받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투표용지 순번은 현역 의원 수로 정해진다.
야권에서도 선거 승리라는 실리를 명분으로 연합 위성정당 창당 움직임이 일었다. 기본소득당·열린민주당·사회민주당 등 야권 군소정당이 연합한 ‘개혁연합신당’은 연합 비례정당을 제안했다.
민주당은 딜레마에 빠졌다. 단독으로 위성정당을 만들면 또 다시 꼼수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연합 비례정당에 참여하면 비례대표 순번을 두고 알력다툼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내부에서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이재명 대표는 2월 5일 광주 5·18 민주묘지 앞에서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준연동제 안에서 승리의 길을 찾겠다”라고 준연동형을 유지할 뜻을 밝혔다. 이어 이 대표는 “정권심판과 역사의 전진에 동의하는 모든 세력과 함께 위성정당 반칙에 대응하면서 연동제의 취지를 살리는 통합형 비례정당을 준비하겠다”며 “민주개혁세력의 맏형으로서 민주당이 주도적으로 그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비례정당은 3월 3일 공식 창당했다. 당명은 더불어민주연합이다. 민주당과 유사한 이름이다. 민주당의 윤영덕 의원(초선)과 민주당 영입인재 12호 백승아 전 교사가 공동대표로 선출됐다. 앞서 윤 의원은 광주 동구남구갑 경선에서 탈락했다. 이날 창당대회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 용혜인 새진보연합 상임선대위원장, 윤희숙 진보당 상임대표, 시민사회계를 대표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이 참석했다. 녹색정의당은 위성정당 참여를 거부했다.
비례대표 후보 명부는 30번까지 작성하기로 결정됐다. 진보당과 새진보연합은 각각 3명의 후보를 낸다.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연합정치시민회의는 ‘국민후보’ 4명을 추천한다. 민주당에는 20명이 배정됐다. 확정권으로 볼 수 있는 1~4번은 국민후보에 할당된다. 5번부터는 민주당, 진보당, 새진보연합 후보가 교차로 배치된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은 득표율 33.3%로 17석을 얻었다.
#비례명단 두고 내부 파열음
국민후보 선정은 순탄치 않았다. 국민후보는 국민후보추천심사위원회 심사 50%, 100인의 국민심사단 심사 30%, 오디션과 함께 진행되는 실시간 온라인 참여 시민 심사 20%를 종합해 최종 4명이 선발된다. 총 44명이 지원했고, 서류 심사를 거쳐 12명이 3월 10일 공개 오디션에 참가했다. 오디션 결과 전지예 금융정의연대 운영위원, 정영이 전국농민회총연맹 구례농민회장,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 임태훈 전 군인권센터 소장이 최종 선발됐다. 최종 선발된 후보자들은 다시 민주연합 적격 심사를 받았다.
명단이 공개된 후 전지예 위원과 정영이 회장 이력이 문제가 됐다. 전 위원은 과거 한미 연합 훈련 반대 시위를 벌인 ‘겨레하나’에서 활동했다. 과거 종북 이슈로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후신으로 알려진 진보당 입당 경력도 드러났다. 정 회장은 전국여성농민총연합 소속으로 경북 성주에서 사드 배치 반대 시위를 주도했다. 두 후보를 두고 국민의힘은 친북·반미 성향 인사가 비례대표 당선권에 들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국민 눈높이에 맞는 후보여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3월 11일에는 시민회의 측에 재검토를 요청했다. 결국 둘은 자진사퇴했다. 전 위원은 “낡은 색깔론을 꺼내 들어 청년의 도전을 왜곡하는 국민의힘에 분노한다”며 “저는 윤석열 정권 심판을 바라는 국민들께 일말의 걱정이나 우려를 끼치고 싶지 않다. 국민후보를 사퇴한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반평생 여성 농민과 더불어 살아온 삶이 부정당하고, 국민의 40%가 공감한 ‘사드 배치 반대 집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종북몰이의 희생양이 되는 현실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며 “철 지난 ‘종북 타령’ 없이는 말을 잇지 못하는 한동훈 위원장과 국민의힘의 저열한 인식에 대단히 참담한 심정”이라고 했다.
임태훈 전 군인권센터 소장을 놓고는 내홍이 빚어졌다. 3월 13일 민주연합은 임 전 소장이 양심적 병역 거부자라는 점을 들어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민주연합에 참여하는 민주당 측 관계자에 따르면 민주연합은 이날 오후 6시에 임 전 소장에게 부적격 통보를 했고, 오후 11시까지 이의 신청 기간을 줬다.
임 전 소장은 같은 날 페이스북에 이의신청을 했다며 “국가가 폭력과 가혹행위가 난무하는 반인권적 군대 문화를 방치하는 한, 군대에 갈 수 없다고 선언했고 결국 감옥에 갔다. (감옥에서 나온 뒤) 몇 년의 준비 끝에 2009년 군인권센터를 설립했고, 그 뒤로 15년을 달려오며 언제나 우리 군의 더 나은 모습을 바라는 마음으로 싸워왔다”고 주장했다. 임 전 소장은 대체복무가 인정되지 않던 2004년 병역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05년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았다. 그러나 민주연합은 1시간 동안 위원들의 의견 수렴을 거쳐 이의 신청을 기각했다.
일요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표면적으로는 병역거부를 문제 삼았지만, 물밑에선 기독교계 표심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임 전 소장은 성 소수자로 알려져 있다. 보수 기독교계 표심이 민주당에서 돌아설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는 뜻이다. 실제로 임 전 소장 추천을 두고 기독교계 등 종교계의 우려가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회의 측은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고 주장했다. 시민회의를 이끌고 있는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는 일요신문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제(3월 13일) 저녁에 임태훈 후보 상황을 몰랐었다. 우리는 (전지예 위원과 정영이 회장의) 사퇴 의사를 존중해서 다시 (후보자를) 추천했다. 그러고 난 다음 (임 전 소장 부적격 판정) 소식을 들었다. (민주연합에)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하는 공문을 보냈다. 그것도 기각이 됐다고 임 후보가 자정이 넘어서 알려왔다.”
윤영덕 공동대표는 3월 14일 오후 입장문에서 “임태훈 후보자에 대한 부적격 철회 요청에 대해 우리 당의 입장은 정해진 심사 기준과 절차에 따라 결정한 사안으로, 번복할 만한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판단되지 않기에 이를 수용하기 어려운 점을 넓은 마음으로 헤아려 주시기 바란다”며 “민주개혁진보선거연합의 합의 정신이 훼손되거나 윤석열 정권 심판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저버리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3월 14일 시민회의는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긴급 전원회의를 열었다. 시민회의 측은 임 전 소장 재추천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이들은 부적격 결정이 “국제 인권과 유엔 권고, 헌법재판소의 대체복무에 대한 판단, 더불어민주연합을 구성한 3개 당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그동안 취해온 정책, 그리고 그가 군 인권 개선을 위해 기여해온 바에 비추어 부당하다”고 말했다.
3월 15일 민주연합은 다시 부적격 판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시민회의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오늘 심사위원회가 재추천한 임태훈 국민후보를 더불어민주연합이 또다시 부적격 판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심사위는 부적격 판단은 독립적 심사기구인 국민후보추천심사위원회 위상을 훼손한다”며 “임태훈 후보에 대한 부적격 판단을 강력히 규탄하면서 국민후보 추천 심사위원회 상임위원들은 김상근 심사위원장을 비롯 10명 전원이 그 직위를 내려놓겠다”고 했다.
#용혜인 비례대표 재선 논란
민주당은 3월 12일 비례대표 추천 명단(20인)을 발표했고, 이를 민주연합에 전달했다. 명단에 따르면 선순위에 배치된 여성 인사는 백승아 더불어민주연합 공동대표(전 강원교사노조 위원장)와 오세희 전 소상공인연합회 회장, 강유정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임미애 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 고재순 전 노무현재단 사무총장 등이다. 남성 인사로는 위성락 전 주러시아대사관 대사, 임광현 전 국세청 차장, 박홍배 한국노총 금융노조위원장, 정을호 전 민주당 총무국장, 김준환 전 국정원 차장 등이 선발됐다.
후순위로는 곽은미 민주당 국제국 국장, 백혜숙 사회적기업 (주)에코십일 대표이사, 전예현 우석대 대학원 객원교수, 허소영 전 강원도의회 의원, 강경윤 민주당 여성국 국장, 조원희 민주당 경북도당 농어민위원장, 서승만 코미디언(공연기획자), 서재헌 민주당 대구시당 청년위원장, 최영승 전 대한법무사협회장, 송창욱 전 청와대 제도개혁비서관이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추천 공모에는 총 192명이 참여했다. 서류심사를 통과한 43명이 3월 9∼10일 이틀간 면접 심사를 치렀고 20인이 최종 선발됐다. 이들은 민주연합의 2차 검증을 거친 다음 순번을 받게 된다.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우상호 의원은 페이스북에 “4년 전에는 당원이 참여하는 공천을 추진한다는 취지로 비례대표 신청자들의 예비 경선을 전당원 투표로 하고, 그 순위 확정은 중앙위원들 투표로 결정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당원 투표와 중앙위원 투표를 하지 않고, 전략공관위의 심사로 결정한다고 한다”며 “이 방식은 밀실에서 소수가 후보를 결정하는 과거의 방식으로, 혁신과 거리가 멀다”고 적었다. 민주당은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절차를 따르기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진보당은 손솔·전종덕·정태흥·장진숙 등 4명을 추천했다. 정태흥 장진숙 후보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논란이 됐다. 2월 25일 개혁신당 이원욱 의원은 “민주당의 위성정당은 통진당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념 세력’의 국회 진출을 위한 계획”이라며 “경기동부연합 등 이념 세력은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을 숙주로 성남시·경기도를 지나 이제는 국회까지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이 언급한 경기동부연합은 경기 성남과 용인 등을 활동 무대로 삼은 운동권 조직이다. 1980년대부터 세력을 확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중에는 정계에 진출해 통합진보당 핵심 세력이 됐다. 통합진보당은 2013년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선동 사건으로 정당이 해산됐다. 대법원은 내란음모는 무죄로 판단했고, 내란 선동·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는 유죄로 인정했다. 진보당은 통진당의 후신이다. 정가에선 경기동부연합이 성남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이들 세력이 이재명 대표와 연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용혜인 상임선대위원장의 비례대표 재도전도 도마 위에 올랐다. 용 위원장은 21대 총선에서 더불어시민당 비례후보 5번에 배치됐고, 원내 입성에 성공했다. 총선이 끝난 다음인 2020년 5월 12일 당에서 제명됐다. 비례대표는 탈당이 아닌 제명이 되면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다. 용 위원장은 다시 기본소득당으로 복귀했다.
용 위원장은 비례대표 당선권에 배치될 것으로 보인다. 22대 총선에서도 민주당의 위성정당 비례대표 후보로 당선되는 셈이다. 비례대표 연임 사례는 드물다. 2004년에 치러진 17대 총선 이후 송영선 전 의원(17대 새누리당·18대 친박연대)과 현역인 이태규 의원(19대·20대 국민의당) 등 정도다. 김종인 개혁신당 선관위원장은 비례 4선으로 불린다. 김 위원장은 11·12대에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전국구 의원(비례대표에 해당)에 당선됐고, 17·20대에는 각각 새천년민주당과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로 원내에 입성했다. 이 때문에 용 위원장에게 ‘리틀 김종인’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용혜인 위원장은 3월 5일 새진보연합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모두발언에서 “제한된 여러 조건 속에서 민주개혁진보의 승리와 기본소득당의 성장을 위해 제가 내린 최선의 선택”이라며 “이번 결정을 흔쾌히 지지해주지 못할 분들도 계시리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격려와 비판 모두 열린 마음으로 청해 듣겠다”고 말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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