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마음으로 경전을 보게 만드는 그 시간, 어느 날 스님이 열일곱 살밖에 되지 않은 한 소년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배울 게 없고 배우고 싶은 것도 없어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로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마음을 움직이는 공부를 하고 싶어 스님을 찾았다는 소년에게 스님은 화엄경 영어판을 주신 모양이다.
스님은 한문을 우리말로 해석하고, 소년은 영어를 우리말로 해석하며 화엄경의 뜻을 찾아가는데, 그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화엄경의 형식이 선재동자가 53 선지식을 찾아다니며 진리를 구하는 과정 아닌가. 동자는 진리를 구하고, 강백은 진리를 구하는 동자를 아끼고, 화엄경다운 인연이었다.
소년이 화엄경을 해석하는 태도를 보니 소년은 자발적으로 학교를 그만둔 것이 분명했다. 도대체 저 소년은 무슨 힘으로 학교를 그만둘 수 있었을까. 학교가 죽었다고 하면서도 학교에 목숨을 거는 세상인데. 나는 그 용기의 원천이 궁금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듣고 배우는가. 너무나 많은 지식을 외우고 풀다보면 좀 더 깊이 배우고 싶은 것이 생길 법도 한데, 우리나라 입시제도는 좀 더 깊이 배우고 싶은 것을 찾아 선택하게 도와주는 제도가 아니다. 호기심과 상관없이, 적성과 상관없이 성적표에 맞춰 대학을 정하고 과를 정하다보니 무엇이든 할 수 있으나 왜 그것을 해야 되는지 모르는 공부를 하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니 선재동자를 연상케 하는 소년이 인상적일밖에.
또래 친구들이 학교에서 입시 공부를 하고 있는데 화엄경을 읽고 있는 소년, 남이 만들어준 세계를 스스로 박차고 나온 소년은 결국은 자기 촉수로 자기세계를 구축해 갈 것이다. 생각해 보면 자기 세상을 구축한 자는 모두 편견과 선입견으로 가득 찬 세상을 해체한 존재들이었다. 남이 만들어준 세상을 해체해보지 않고 어떻게 자기 세상을 구축할 수 있겠으며, 세속의 윤리를 해체해보지 않고 어떻게 자기 윤리를 세울 수 있을까. 그 과정이 외롭고 고단하더라도 자기를 믿고 자신의 꿈을 믿는 자는 마침내 자신만의 집을 지으리라 믿는다.
소년과 같은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학교에서 하라는 공부만 맹목적으로 하지 말고 평소 관심이 있었던 것들을 찾아 깊이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이. 스마트폰만 열심히 하지 말고 다양한 활동들, 다양한 봉사들을 해보겠다고 열정을 내는 사람들이. 삶이 달라지면 표정이 달라지고 인연이 달라진다. 스님과 소년의 아름다운 인연을 보니 절로 미소가 생긴다.
수원대 교수 이주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