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갈등으로 전국의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에 돌입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의료대란으로 번지기 전에 갈등을 봉합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지만 역설적이게도 전문가들은 지금이 의료개혁의 적기라고 말한다. ‘전공의 중심의 대형병원 인력구조’ ‘무너진 의료 전달 체계’ ‘PA 간호사 합법화’ 등 그동안 의료 현장에서 부조리로 지목되어 온 문제들이 이번 사태로 적나라하게 드러남과 동시에 일부는 해소의 실마리까지 보여준 까닭이다. 전공의 사직이 촉발한 의료개혁의 과제는 무엇이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짚어본다.[일요신문] 의대 증원 갈등이 촉발한 전공의 공백 사태가 한 달을 넘어가는 가운데 대형병원이 무너지고 있다. 각 병원별로 예상되는 적자만 하루 10억 원을 웃돈다. 전공의를 교육해야 할 병원은 오히려 이들의 ‘장시간·저임금 노동’에 기대어 병원을 경영해왔다. 의료계에선 대형병원이 전공의 의존도를 줄이고 수련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빅5' 병원 하루 평균 10억 이상 적자
2월 19일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가 집단 사직을 결의했다. 100개의 수련병원 전공의 1만 2000여 명이 병원을 이탈하자 의료 현장은 그야말로 대혼란이었다. 대형병원을 찾은 환자들은 방황했고 이들이 속한 병원의 수술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외래 진료에도 곧바로 차질이 생겼다. 소수의 교수들이 돌아가며 당직을 섰고 전공의 대신 PA(임상전담) 간호사가 수술실에 들어갔다.
이후, 비상진료체계가 가동되면서 혼선이 조금씩 줄어들었으나 이른바 ‘빅5’(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 병원들은 전공의가 없는 현재 하루 평균 각각 10억 원의 이상의 적자를 내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그동안 대형병원 인력구조가 얼마나 비정상적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전공의는 전문의 자격을 따기 위해 병원에서 임상 수련을 하는 인턴(1년)과 레지전트(3~4년)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 교수는 스승이고 전공의는 이들에게 가르침을 받는 피교육생 신분이다. 문제는 그동안 우리나라 대형병원이 제자들인 전공의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았다는 점이다. 2021년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은 전체 의사 1603명 중 740명(46.2%)이 전공의로 거의 절반에 가까운 인력이 인턴과 레지던트였다. 세브란스병원은 1524명 중 612명(40.2%)이 전공의였고, 삼성서울병원은 1382명 중 525명(38%), 서울아산병원은 1676명 중 578명(34.5%), 서울성모병원은 857명의 의사 중 33.8%인 290명이 전공의였다.
이들 다수는 격무에 시달린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발표한 ‘2022년 전공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공의들의 주당 근로시간은 평균 77.7시간이었다. 4주 연속 주 80시간 초과근무를 한 전공의는 52.0%로 절반 이상이었다. 특히 흉부외과의 경우 응답 인원 전원이 4주 평균 80시간 초과근무를 했다고 답했고 이 가운데 15.8%는 4일 이상 연속으로 24시간 초과근무한 경험이 있었다. 의사와 간호사 등 보건업 종사자는 특별법에 따라 주 52시간의 적용을 받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편, ‘당직 근무 중 환자에게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전문의에게 즉시 보고하고 적절한 자문을 구할 수 있었냐’는 질문에는 48.6%의 전공의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고, ‘충분한 교육을 받은 상태에서 전문의의 지도 아래 환자를 보고 있느냐’는 설문에는 45.5%가 ‘그렇지 않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전공의 몸값 전문의의 3분의 1도 안돼
대형병원이 전공의 중심으로 운영되어 온 이유는 경제적 논리에 기반한다. 전공의가 전문의보다 하는 일은 더 많으면서 임금은 훨씬 싸다. 전공의는 수술을 보조하는 것 외에도 병동 내 입원·수술 환자들을 24시간 관리하고 응급상황에 대응하거나 야간 당직을 선다. 간호사들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환자들에게 수술 동의서를 받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반면 몸값은 전문의보다 훨씬 싸다. 2020년 기준 인턴과 레지던트 연봉은 각각 6882만 원과 7280만 원이었다. 평균 7000만 원으로 계산해도 같은 기간 약 2억 3690만 원을 받는 전문의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시급으로 따지면 1만 2000~1만 5000원 선이다. 병원을 경영하는 병원장 입장에서 굳이 몸값 비싼 전문의를 추가로 고용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정부가 병원의 인력구조를 전문의 중심으로 바꾸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2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필수의료패키지에 따르면 정부는 2025년부터 국립대병원과 지역 수련병원을 시작으로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 시범 사업’을 추진하고 전문의 배치 기준을 강화해 전문의 고용 확대를 유도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일일 입원환자 20명당 전공의는 0.5명 배치하고, 각 의료기관이 의사 인력을 확보했는지 계산할 때 전공의 1명은 전문의의 0.5명으로 산정하기로 했다. 전공의는 1명이 아닌 0.5명으로 계산할 테니 전문의 고용을 늘리라는 의도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병원이 전문의 채용을 늘릴지는 알 수 없다. 병원장 입장에서는 전공의 3명을 채용하는 것이 전문의 1명을 채용하는 것보다 더 이득이기 때문이다. 상황을 알고 있는 정부도 전문의 고용을 늘린 병원에 대해서는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했으나 아직까지 구체적인 예산과 재원 마련 방법은 밝히지 않고 있다. 전공의들로부터 “정부가 말로만 믿으라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지점이다.
장기적으로는 의대 정원 확대 역시 전문의 중심병원을 구축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정형선 연세대 의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의대 정원이 충분히 늘면 자연스럽게 필수의료 분야에 공급이 늘고 생태계도 회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의료 종사자가 증가하면서 의료 서비스가 늘어나면 사회 전체의 의료비도 자연스럽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반면 전공의들은 환경 개선 없이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2월 수련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한 한 전공의는 “굳이 전공의라는 길을 택하지 않아도 이미 의사 면허가 있기 때문에 개원할 수 있었다. 병원에 들어와 주 80시간 넘게 일을 했던 것은 단지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명감이 있어서였다. 다들 그렇게 병원에 들어올 것이다. 그렇게 왔다가 결국 개원을 택하는 이유는 사람을 갈아 넣는 구조 때문이다. 대학병원에서는 희망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정부가 본질은 건드리지 않은 채 단순 증원으로 낙수효과만을 노려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유목적사업금 사용할 수 있어야”
대형병원은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그동안 낮은 가격에 최대한 많은 환자를 받는 박리다매식 경영으로 이익을 내왔는데 전공의 이탈로 외래 진료와 수술이 절반 이상 줄어들면서 하루 10억 원 이상의 적자가 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아산병원과 세브란스병원에 이어 연세대의료원 전체와 경희대의료원도 3월 17일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고, 서울대병원은 최근 마이너스통장의 한도를 500억 원에서 1000억 원으로 늘렸다. 이렇게 하고도 인건비 감당이 어려운 일부 병원은 간호사와 직원을 대상으로 무급휴가 신청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병원이 쌓아둔 돈을 써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대형병원에는 시설 개선과 미래 투자 등을 이유로 적립해두는 돈인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이 있기 때문이다.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은 공익법인이나 비영리법인이 향후 목적사업에 사용하기 위한 재원을 미리 손금으로 계상하는 제도다.
실제로 대형병원들은 매년 이익의 상당 부분을 고유목적사업을 위한 부채계상 준비금으로 적립해 왔는데 그 규모는 수백억 원에 이른다. 게다가 이 돈은 회계상 수익이 아닌 비용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법인세 과세 대상에서도 제외되어 왔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와 대현회계법인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서울대병원의 부채계상 준비금은 7601억 원, 서울아산병원은 7269억 원, 가천대길병원은 2813억 원, 인하대병원은 1111억 원이었다.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의 경우 의료기기나 의료기관 시설, 법인의 건물 및 토지 등 고정 자산을 취득하는 데만 쓸 수 있다. 각 병원들의 시급한 문제로 제기되는 인건비에는 사용이 불가능하다. 의료계 안팎에서 “경영위기를 맞은 현시점에 병원이 잉여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