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포화’에 경매 시장에 나온 시설들도 찬밥…“앞으로 전국에서 100곳 넘게 오픈”
경매 시장에 나온 시설들도 ‘찬밥 신세’다. ‘일요신문i’ 확인 결과 지난 2월 법원 경매가 진행된 서울시내 지식산업센터 14곳 가운데 단 1곳만 입찰자를 만나 매각 처리됐다. 전국 규모로 봐도 전체 74곳 중 18곳(24.3%)만 매각이 성사됐다.
최근 지식산업센터는 1곳당 많게는 1000실 이상의 오피스(사무실)와 저층부 상가점포, 창고시설, 기숙사시설 등을 둔 대규모 시설로 지어지고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집계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기준 전국에서 건축이 완료된 지식산업센터는 940곳에 이른다. 이 가운데 82.3%(774곳)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서울에 279곳, 경기에 435곳, 인천에 60곳이다. 특히 최근 1~2년 새 ‘공급 폭탄’을 맞은 경기도 내 지식산업센터는 준공 즉시 ‘유령 건물’이 된 곳이 부지기수다.
가장 상황이 심각한 곳은 경기 평택이 꼽힌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확장 효과를 노리며 평택시 고덕면과 고덕동, 모곡동 등지에 들어선 지식산업센터는 약 20곳으로, 현재 공실률이 최소 40%에서 최고 90%대에 이른다. 고덕동의 한 지식산업센터에 입주해 있는 공인중개사무소장 류재현 씨는 “현재 평택시내 지식산업센터의 경우 입주율이 그나마 높은 곳이 60% 수준으로, 절반 이상은 입주율이 10%가 안 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서울에 인접한 고양과 하남, 광명지역도 상황이 안 좋긴 마찬가지다. 지난해 7월 입주를 시작한 고양 향동지구 지식산업센터들의 공실률은 60~70%에 이른다. 지난해 광명 하안동에 잇달아 들어선 지식산업센터 역시 전체 오피스의 20~30%가 비어 있다. 하남 미사강변도시 일대 20개 지식산업센터는 약 10~30%의 공실률을 보인다. 하남 덕풍동의 한 지식산업센터 공인중개사무소장 A 씨는 “우리 건물의 오피스는 약 90%의 입주율을 보이고 있지만, 하남 전체로 보면 입주율이 낮게는 70% 정도”라고 말했다.
세입자 구하기도 어려운데 ‘애물단지’를 떠안을 매수자를 찾기는 더욱 힘들 수밖에 없다. 부동산정보기업 ‘부동산플래닛’에 따르면 전국 지식산업센터 매매 거래 건수는 2021년 8287건으로 정점을 찍었다가 2022년 5075건, 2023년 3395건으로 급락했다.
새 ‘임자’를 못 찾아 경매시장으로 들어오는 물건도 늘었다. 경·공매데이터전문기업 ‘지지옥션’에 따르면 법원 경매가 진행된 전국 지식산업센터 건수는 2022년 403건에서 2023년 688건으로 70.7% 껑충 뛰었다. 이주현 지지옥션 전문위원은 “경기가 안 좋아 임대료 수입은 기대보다 낮은데 대출 금리는 높아 투자 수익률이 떨어진 상황에서 이자 부담을 버티지 못한 물건들이 경매시장에 많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매 시장에서 입찰자를 찾는 것도 어렵다. 2022년 한때 66.7%까지 올랐던 지식산업센터 경매 매각율(전체 경매 건 가운데 매각이 성사된 비율)은 지난 2월 기준 24%대로 뚝 떨어졌다. 서울로 좁혀보면 매각율이 7.1%에 그쳤다.
과거 ‘아파트형 공장’으로 불렸던 지식산업센터는 이명박 정부 시절 관련법 개정과 함께 새 이름이 등장했다. 2009년 개정된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은 지식산업센터를 ‘제조업과 지식사업, 정보통신업이나 이를 지원하는 시설이 함께 입주할 수 있는 집합건축물’로 규정하고, 설립 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도 뒀다.
지식산업센터는 일반적인 제조업 공장에 비해 면적 사용 규모가 적은 특징을 주목해 일반주거지역과 준주거지역 내 건축이 허용되면서 이후 수도권 내 공격적인 건설로 이어졌다. 정부나 공공기관, 지자체들도 택지지구의 ‘자족기능’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2기 신도시를 포함한 택지지구에 지식산업센터 건립을 환영, 유도했다.
이후 2018년부터 약 3년간 주택 가격이 급등하는 사이 ‘대체투자’ 종목으로 광풍이 일면서 전국에서 건축과 분양 열기가 들끓었다. 부동산 개발사들은 초저금리 여건에 PF대출을 적극 끌어당겨 너도나도 건설에 나섰다. 당시 지식산업센터는 일반 주택과 달리 사실상 ‘규제 무풍지대’에 속한 데다 수분양자는 분양가의 80~90%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어 수천만~1억 원 수준의 소액 투자자가 대거 몰렸다.
업계의 소홀한 ‘수요 예측’은 결국 대량 공실 사태로 이어졌다. 주변에 이렇다 할 산업단지가 없어 오피스 수요를 기대하기 어려운 곳까지 ‘우후죽순’으로 지어진 결과다. 공실률이 높은 곳들은 대중교통 인프라가 부실한 점도 공통점이다. 평택 고덕면 해창리나 고양 덕은·향동지구 모두 전철역에서 3~4㎞ 떨어져 있는 데다 버스 노선도 열악해 사실상 ‘자차’가 아니면 출퇴근이 어려운 곳이란 평가를 받는다.
부동산정보기업 ‘알스퀘어’의 류강민 리서치센터장은 “과거 경기도에 들어선 지식산업센터는 성남, 부천 등 자생적 오피스 수요가 있는 곳에 집중적으로 지어졌지만 최근엔 수요가 확인되지 않은 지역에 대거 들어서면서 ‘수요 예측’ 자체가 완전히 실패한 양상”이라고 진단했다.
제대로 된 입주 수요 검토 없이 건축 승인을 남발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에도 책임론이 제기된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가장 큰 원인은 지식산업센터 개발이 정부 지원 사업으로 진행돼 대출이 제한 없이 이뤄진 것”이라며 “공급이 포화 상태를 넘어 과포화 상태인데도 정부가 방치하고 있어 돌파구가 안 보인다”고 지적했다.
지식산업센터가 앞으로도 줄줄이 ‘오픈’하면서 현재의 ‘공실 대란’에 더욱 기름을 부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집계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서 공사가 진행 중인 센터는 약 100곳, 경기도에만 46곳이 있다. 건축 승인만 받아놓고 아직 착공에 들어가지 않은 센터도 전국에 약 276개, 경기도에 111개가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미착공’ 상태인 센터 가운데 상당수는 공사 계획을 취소하거나 무기한 연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계속된 고금리와 치솟은 건설물가, 얼어붙은 PF금융 상황에서 건축도, 분양도 모두 ‘사업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조지훈 지식산업센터114 대표는 “현재는 금융사와 신탁회사들이 지식산업센터 개발사업에 거의 나서지 않고 있어 건축 허가를 받고도 실제 공사가 진행되지 않는 곳이 굉장히 많을 것”이라며 “공사를 진행하다 분양이 안 될 경우 시공사들의 부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올해 지식산업센터 건설과 분양이 꽤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류강민 알스퀘어 리서치센터장은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곳은 어쩔 수 없이 끝까지 지어야 하겠지만 건축 인허가만 받아두고 착공하지 않은 곳은 사업이 엎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강훈 기자 ygh@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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