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사 ‘법인 갈아타기’로 수백억 채무 면탈 의혹…금융당국, KDB캐피탈 등 대주단 부패·배임 혐의 조사중
마침내 모든 사업이 끝났지만 한편에선 이제 시작이다. 국민권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이 지역 개발 과정에서 불거진 KDB산업은행캐피탈(KDB캐피탈) 등의 부패·배임 의혹을 살피고 있다. 특히 이를 신고한 당사자가 해당 개발사업 관련 각종 비리사건을 직접 감사했던 전 KDB캐피탈 관계자로 확인돼 결과에 눈길이 쏠린다.
#1600억 빌리고 파산한 기업
상도동 푸르지오 부지는 원래 조선 태종의 장남 양녕대군 사당이 있는 '지덕사' 소유 땅이었다. 2007년 '세아주택'이 KDB캐피탈 등 15개 금융기관으로 구성된 대주단의 대출을 받아 토지를 매입하고 재개발을 추진했으나 1년 만에 세계 금융위기로 고비에 직면했다. 결국 대출보증을 서준 금호산업개발이 2009년 워크아웃을 신청했고, 세아주택도 2010년 부도와 파산으로 좌절을 맞았다.
'비운의 개발지'로 남을 뻔했던 이 땅은 2014년 새 주인 '포스트개발'을 만났다. 다만 이 역시 구설을 낳았다. 8개 업체가 경쟁적으로 땅 매매 입찰에 참여했는데 정작 포스트개발이 '수의계약'을 통해 시행사로 선정된 데다, 계약금을 미납했는데도 대주단 및 토지신탁사 등이 계약을 유지해주는 등 포스트개발을 전폭 지원한다는 논란이었다. 주민들은 KDB캐피탈 등이 포스트개발에 특혜를 줬다며 항의 집회도 열었다.
일요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현재 권익위와 금감원은 그 후 벌어진 일련의 과정들을 다시 살펴보고 있다. 각각 KDB캐피탈 등의 부패와 배임 여부를 살피는 작업이다. 대주단이 첫 사업자였던 세아주택에 빌려준 돈을 제대로 회수했는지, 혹은 회수할 노력은 했는지 등을 파악하는 게 핵심이라 금감원 역할이 크다는 분석이다. 대주단이 포스트개발에 빌려준 돈은 약 1600억 원이다.
무엇보다 이번 조사는 과거 KDB캐피탈에서 세아주택과 포스트개발 등에 대해 감사를 벌였던 관계자의 신고로 이뤄지게 돼 주목된다. 한때 포스트개발에 특혜를 제공했다고 의심 받았던 기관의 당사자가 이제는 직접 KDB캐피탈 등 대주단의 문제를 지적하고 나선 셈이다. KDB캐피탈은 국책은행인 한국산업은행이 99%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로 사실상 국민 혈세가 투입된 기관이기도 하다.
이런 만큼 금감원 조사도 KDB캐피탈을 중심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KDB캐피탈은 15개 금융기관 가운데 가장 큰 300억 원을 세아주택에 빌려준 곳으로 대주단 간사이기도 했다. 세아주택 부도 후 9년이 지난 2019년에야 담보 토지 매각 등으로 원금의 약 70%를 회수했지만, 남은 원금과 이자까지 더하면 계속 거둬야 할 돈은 800억 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대출 계약 당시 기본 이자율이 8.5%, 연체이자율은 25%였다.
#'포스트개발은 누구 겁니까'
이미 파산한 세아주택의 대출금 회수 가능성을 살피는 데에는 복잡한 사정이 있다. 핵심은 세아주택과 포스트개발이 실질적으로 같은 회사라는 의혹이다. 세아주택이 대출보증을 서준 금호산업개발의 워크아웃 등으로 경영 상황이 나빠지자 회사를 파산시키고, 법인 간판만 포스트개발로 바꿔 갚아야 할 대출 원리금을 백지화했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나온다.
구체적으로, 포스트개발은 당시 설립된 지 불과 1개월밖에 안 된 회사였다. 이런 곳이 세아주택 부도 이후 시행권 인수를 시도하며 세아주택의 각종 인·허가권은 물론 사채로 빌린 돈까지 대신 내주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정작 KDB캐피탈 등 대주단의 대출 원리금은 인수하지 않았다.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만 쏙 뺀 형태로 사업에 필요한 권리와 의무를 가져간 셈이다.
포스트개발의 지분 구조도 의혹을 남긴다. 이곳 주식 약정서를 보면 포스트개발 A 대표는 주식 49.5%를 보유했다. 또 다른 인물 B 씨도 49.5%를 보유했다. 그런데 B 씨는 세아주택의 대표였다. 또한 포스트개발 A 대표는 세아주택 시절 등기이사였다. 즉 부도가 난 세아주택의 대표 및 임원들이 직함만 바꾼 채 포스트개발을 세워 시행사업에 다시 도전했다는 뜻이다.
이 같은 사실은 A 대표와 B 씨가 포스트개발 지분 및 소유권 등으로 갈등을 빚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여느 개발사업처럼 A 대표와 B 씨도 각종 문제로 소송에 휘말렸는데, 2019년 서울고등법원은 B 씨 사기 혐의 관련 판결에서 "세아주택과 포스트개발은 A 대표와 B 씨가 절반의 지분을 나눠 가진 사실상의 같은 회사"라고 판시했다. 같은 해 대법원의 다른 사건 판결문에도 같은 내용이 명시됐다.
다만 2021년 대법원 파기환송으로 서울고등법원이 맡았던 한 사건에서는 "세아주택과 포스트개발을 동일 법인으로 취급하기 어렵다"는 판단도 나왔다. 그러나 여러 소송에서 분명히 밝혀진 사실은 B 씨가 포스트개발 주식을 부인 등 다른 사람 명의로 보유해왔다는 점이었다. B 씨와 A 대표의 주식 약정서는 실명으로 기재돼 있는 점에 비춰보면, B 씨가 포스트개발 주식 보유사실을 대외적으로는 숨기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보는 주식 가압류, KDB캐피탈은…
결과적으로 포스트개발의 개발사업 자체는 성공으로 끝나 분양까지 이어졌다. 개발 수익은 400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A 대표와 B 씨는 개발이익을 각자의 지분만큼 나누기로 약정했다. 따라서 B 씨의 이익은 산술적으로는 2000억 원에 달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세아주택과 포스트개발이 같은 회사라면 KDB캐피탈 등은 세아주택 연대보증인 B 씨의 이러한 주식 배당이익을 놓고 대출 상환을 요구할 수 있다.
최근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내용에 따르면, 신고인은 세아주택과 포스트개발이 동일한 회사라는 사실을 KDB캐피탈도 일찍이 알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가 직접 감사를 벌이며 확보한 여러 약정서와 판결문 및 차명주식 내역 등을 여러 차례 윗선에 보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KDB캐피탈 등은 800억 원에 달하는 대출금을 회수하려는 작업에 돌입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한편 예금보험공사는 이 대출 원리금을 돌려받기 위한 작업에 이미 돌입했다. 세아주택에 돈을 빌려줬다가 파산한 솔로몬저축은행·경기저축은행·진흥저축은행 3곳의 파산관재인으로서 세아주택 주식 약 190억 원어치 가압류를 신청했다. 서울동부지법도 예금보험공사의 주장을 받아들여 이를 인용했다. 예금보험공사 관계자는 "세아주택과 포스트개발을 같은 회사로 보고 현재 본안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건을 조사하는 금감원 관계자는 "신고 내용과 관련해 KDB캐피탈의 의견 및 자료 등도 전달을 받아 구체적인 내용들을 검토하고 있다"며 "사안을 종합적으로 들여다본 뒤 결과가 나오는 대로 절차에 따라 부패 방지 기관인 권익위에도 내용을 통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면 KDB캐피탈 관계자는 "언론에까지 자세한 얘기를 설명드릴 수는 없다"고 했다.
KDB캐피탈 등 15개 금융기관 대주단이 세아주택에 빌려준 돈은 1600억 원으로 현재는 이자 포함 2000억 원이 넘을 수 있다. 대주단이 정당한 사유 없이 해당 채권회수를 포기했다면 카르텔이 작동했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일각에선 '금융권 카르텔 혁파'를 자주 강조해온 이복현 금감원장의 역할을 기대한다. 이 원장은 2023년 7월 금감원 반부패·청렴 워크숍에서 "이제 반부패 활동에도 관심이 필요하다"며 "원칙에 따른 감독 업무를 수행해 달라"고 직원들에 강조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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