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모임 운영자 A 씨가 이 같은 고발 사실을 2년 만에 처음 언론에 밝힌 이유는 검찰 수사가 이뤄지지 않아서다. A 씨는 “권 씨 아내 B 씨는 일반 가정주부가 아니다. 루나 사태 공범이다. 그래서 고발했는데 수사가 안 됐다”며 “형사사법포털(KICS)에 ‘수사 중’만 2년째 뜬다. 검찰이 선택적으로 수사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A 씨는 “검찰 수사에 왜 협조했는지 회의적이다. 검찰에 직접 가서 조사받으면서 물어보는 것도 다 대답하고 자료도 냈다”며 “검찰이 어차피 묻을 거 그냥 쇼만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A 씨는 권도형 씨가 미국에서 수사와 재판을 받기를 바라고 있다. 검찰이 권 씨 아내조차 미진하게 수사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A 씨는 “검찰은 권도형도 제대로 수사를 안 할 것이다. 권도형은 미국에서 조사받고 처벌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A 씨는 “권 씨 아내 B 씨는 2018년 초 테라폼랩스 운영 관리를 뒤에서 도와주는 업무를 도맡았다”며 “대학 선배에게 도움을 요청해 테라 프로젝트 개발자 구인 게시물을 2018년 2월 6일 올리도록 요청했다”고 2022년 5월 31일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 제출한 고발장에 적었다.
B 씨 대학 선배는 2018년 2월 6일 블록체인 커뮤니티에 올린 구인 글에서 “아는 후배가 부탁해서 올린다”며 “국내 주요 4개 암호화폐 거래소 전부에서 투자 오퍼를 받은 유일한 ICO(암호화폐공개) 프로젝트다. 코파운더 중 한 명은 티몬 의장 신현성 씨고 현재 팀은 스탠퍼드 졸업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최고급 인력에 맞는 compensation(보상)을 드린다고 한다”고 밝혔다. 테라 프로젝트 초기 멤버인 권도형 씨와 니콜라스 플라티아스는 미국 스탠퍼드대학 출신이다.
해당 구인 글에는 권 씨 아내 B 씨 이메일 주소가 적혀 있다. 해당 이메일 주소로 간단한 소개와 이력, 연락처를 보내 달라는 내용이다. B 씨가 테라 프로젝트 운영에 관여한 정황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18년 2월은 테라 프로젝트 극초기 시점이었다. 검찰은 루나 사태와 관련해 테라폼랩스 공동창업자 신현성 씨 등 8명을 기소하면서 “권도형 씨와 신현성 씨가 2017년 12월경 알게 된 후 2018년 1월경 테라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의기투합했다”고 적시했다.
권 씨와 B 씨가 2018년 2월 어떤 관계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법적으로 부부였을 가능성은 적다. 권 씨와 B 씨는 2021년 2월 결혼식을 올렸다. 테라폼랩스 공동창업자 신현성 씨가 결혼식 주례를 맡았다.
B 씨는 2018년 말부터 블록체인 업체에서 일하기도 했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증권사 리서치 파트에서 일하던 B 씨는 돌연 블록체인 업체로 이직했다. B 씨는 2018년 11월경부터 블록체인 업체 C 사 한국지부장을 맡았다. 공교롭게도 C 사는 테라폼랩스와 2018년 12월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B 씨는 C 사 한국지부장으로서 2019년 1월 언론 인터뷰를 했다. 당시 B 씨는 C 사 성장 과정을 설명하면서 “테라와 같은 주요 블록체인 기업과 MOU를 체결한 것이 영향을 준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기사에 권 씨가 언급되지는 않는다.
또 B 씨는 해당 인터뷰에서 “블록체인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친구들을 따라 블록체인 행사에 참가했다. 이때 (C 사) 공동창립자 2명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B 씨가 친구라고 에둘러 표현한 인물은 권 씨로 추정된다.
B 씨는 2019년 6~8월경 또 다른 블록체인 업체 D 사 한국 책임자로 일한 내역도 포착됐다. D 사 역시 테라폼랩스와 사업적으로 연관됐던 회사다. 루나 피해자 모임 운영자 A 씨는 “경영학을 전공한 블록체인 초보자 B 씨가 블록체인 업체를 옮겨다니며 임직원으로 활동했다”며 B 씨 블록체인 업체 입사 경위에 의구심을 표했다. B 씨가 테라폼랩스와 밀접한 인물이기 때문에 블록체인 업체 입사가 가능하지 않았겠냐는 의심이다.
B 씨는 이후 다시 한번 변신한다. B 씨는 2021년 대학생이었던 친동생과 함께 핫소스 업체를 창업했다. B 씨는 핫소스 업체 대표로서 2022년 2월 언론 인터뷰를 하면서 블록체인 업체 경력은 언급하지 않았다. B 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증권사 근무 경력만 언급하면서 “외식업에서 일하고 싶다는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퇴사했다”고 말했다. 해당 인터뷰 기사에는 B 씨가 권 씨 아내라는 사실이 언급되지 않았다.
해당 핫소스 판매 사이트에는 “그 유명한 루나와 연관된 소스가 맞나?”라는 문의 글이 2022년 5월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자 업체 명의로 “허위사실을 공개적인 장소에 유포하는 행위는 형법에 의해 5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 가능하다. 즉시 해당 문의를 삭제하면 법적 대응은 하지 않겠다”는 답글이 달렸다.
B 씨 행방은 현재 묘연한 상태다. 권 씨는 2022년 3월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 공항에서 아랍에미리트로 출국하려다가 위조 여권이 적발돼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 권 씨 옆에는 테라폼랩스 최고재무책임자(CFO) 한창준 씨가 있었다. B 씨는 없었다. 권 씨가 여권 위조 혐의로 몬테네그로에서 재판 받는 과정은 현지에서도 주목 받았다. 하지만 현지 언론에 권 씨 아내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권 씨가 2022년 싱가포르에 체류했을 때는 B 씨도 함께 생활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B 씨는 싱가포르 온라인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아기띠, 아기 놀이용품 등 아기용품을 판매한 내역이 포착됐다. B 씨가 해당 사이트에 가입한 시점은 2022년 8월경이다. 공교롭게도 권 씨는 2022년 9월 초 싱가포르를 출국했다.
일요신문은 권 씨 아내 B 씨 입장을 묻고자 휴대전화와 이메일 등으로 여러 차례 연락을 취했다. B 씨는 3월 13일 전화 통화에서 기자 신분을 밝히자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이후 아무런 답변을 보내지 않았다. B 씨와 핫소스 업체를 운영했던 B 씨 친동생은 기자 신분을 밝히자 연락처를 차단했다.
한국이냐 미국이냐…권도형 송환 전쟁 막후
테라폼랩스 공동창업자 권도형 씨는 한국과 미국 중 어디서 수사와 재판을 받게 될까. 전 세계는 권 씨 송환지에 주목하고 있다. 권 씨는 2022년 5월 루나 폭락 사태 이후 해외에 머물며 수사에 응하지 않았다. 권 씨는 해외 도피 중 2022년 11월 해외 인터넷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당시 권 씨는 여권이 만료된 상태였다.
권 씨는 2023년 3월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 공항에서 현지 경찰에게 붙잡혔다. 권 씨는 몬테네그로에서 위조여권 사용 혐의로 징역 4월을 선고받았다. 권 씨는 몬테네그로에서 형기를 마친 뒤 범죄인 인도를 요청한 한국과 미국 중 한 곳으로 송환될 예정이다.
권 씨는 당초 미국으로 송환이 결정됐다. 하지만 권 씨는 이에 반발해 몬테네그로 법원에 항소를 제기했다. 이후 두 차례 파기환송이 이뤄지는 등 지난한 법적 절차를 거쳐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은 3월 20일 권 씨를 한국으로 송환한다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권 씨 한국행이 임박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몬테네그로 검찰이 법원 결정에 3월 21일 이의를 제기하면서 권 씨 송환지와 일정은 다시 오리무중이 됐다. 몬테네그로 검찰은 3월 21일 성명에서 권 씨 송환지는 법원이 아닌 법무부 장관이 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드레이 밀로비치 몬테네그로 법무부 장관은 권 씨를 미국으로 보내겠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남경식 기자 ng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