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처럼 이번 3월에도 주주총회(주총)가 한창이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주식회사에서 주주는 직접 경영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다만, 주주는 소유주인 만큼 주총을 통해 등기임원 선임, 배당을 포함한 재무제표 승인, 정관 변경 등 회사의 운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안건에 대해 지분율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한다. 비록 주주가 경영에 관한 모든 의사결정을 내리지는 않지만, 위와 같이 가장 중요한 안건은 반드시 주총에서 가결돼야 한다.
주주가치를 높이려면 재무적인 성과와 성장 가능성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주총이 실질적으로 제 역할을 다 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주총이 활성화된다면 단순히 주요 안건을 의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최대주주 전횡을 감시·견제할 수 있는 창구 기능을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주총 활성화는 주주가치를 질적으로 제고하기 위한 최우선 과제로 손꼽힌다. 민주주의가 성숙하기 위해서는 유권자의 적극적인 투표가 무엇보다 중요하듯이, 주주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한 주총 활성화는 주주가치 확대를 위한 필요조건으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주주가치 제고에 필수적이라면,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회사가 주총 활성화를 위해 앞장서야 당연하다. 그러나 회사가 스스로 활발한 주총을 위해 노력하는 경우는 적어도 국내에서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본질적인 이유를 꼽자면 역시 소유-지배의 괴리를 빼놓을 수 없다.
상대적으로 적은 지분만으로 한 회사 또는 기업집단 전반에 대해 지배력을 행사하는 지배주주는 자신에 대한 감시나 견제 기능을 하는 주총을 달가워할 리 없다. 지배주주 입장에서는 주총 활성화에 따른 주주가치 제고로 얻게 되는 이익보다는 견제받지 않는 지배력이 훨씬 큰 이익이기 때문이다.
개미 투자자는 흔히 국내 대기업집단은 주주가치에 관심이 없다고 푸념하곤 하는데, 꽤나 정확한 지적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대기업집단의 지배주주에게는 △소유·지배 괴리 △주총이나 이사회 기능의 약화 등으로 발생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결코 불리하지 않다.
이러한 현실적 상황을 감안할 때, 주총 활성화를 위해서는 제도적인 접근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주주제안에 관한 제도 개선을 한 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주주제안은 말 그대로 주주가 직접 주총 안건을 제안하는 제도로 가장 적극적 형태의 주주 참여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이른바 행동주의 펀드나 적극적인 기관투자자를 중심으로 주주제안을 하는 경우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올해도 주요 회사에 대한 주주제안이 성패와 상관없이 언론과 투자자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국내에서는 주주제안이 활발하지 못한 편이다. 가장 큰 이유는 상법상 주주제안을 하기 위해 소유해야 하는 최소 지분요건 때문이다. 상장회사의 경우 원칙적으로 1%(자본금 1000억 원 이상 대규모 상장회사는 0.5%)를 6개월 이상 보유해야 주주제안을 할 수 있다. 금융사지배구조법을 적용받는 금융회사는 지분요건이 0.1%로 더 완화되어 있기는 하나, 소액주주 입장에서는 사실상 주주제안을 할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시가총액이 1조 원인 대규모 상장회사에서 주주제안을 하려면, 50억 원(1조 원×0.5%)의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기관투자자 없이 소액주주만으로 50억 원을 모으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약 466조 원)를 비롯해 10조 원 이상인 코스피 상장회사도 40여 개에 달한다. 이들 회사를 상대로는 기관투자자도 연합하지 않는 한, 주주제안을 하기가 매우 어렵고, 가결은 더더욱 어렵다. 그렇기에, 올해 삼성물산을 상대로 행동주의 펀드 연합이 배당과 자사주에 관한 주주제안을 했던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고, 그만큼 더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비록 부결됐지만 주주환원에 관한 논의를 촉발시키는 등 긍정적인 기여도 있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주주제안이 활성화되어 있는 미국은 회사 규모와 상관없이 절대적인 지분가치 기준으로 2000달러(약 267만 원)를 3년 이상 보유하거나, 1만 5000달러(약 2010만 원)를 2년 이상, 또는 2만 5000달러(약 3350만 원)를 1년 이상 보유하면 주주제안을 할 수 있다.
최근 전체 주식시장이 크게 상승한 일본도 지분율 요건(1%)과 별개로, 절대적인 수치로 의결권 300개 이상을 6개월간 보유해도 주주제안을 할 수 있다. 물론, 상법은 회사가 스스로 정관을 통해 주주제안 요건을 법률상 기준보다 더 낮게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주총이나 주주제안이 활성화되기 바라는 지배주주는 찾아보기 어렵다. 결국, 회사 스스로 주주제안 요건을 낮춘 경우는 사실상 전무하다. 따라서 주주제안을 할 수 있는 문턱 자체를 지금보다 낮출 필요가 있다. 이외에도 많은 개선 과제가 있지만, 적어도 주주제안을 시도라도 해볼 만한 환경을 만들려면, 지금보다는 지분요건을 완화해야 한다.
노종화는 회계사이자 변호사다. 현재(2017년 5월~) 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0년 3월부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상근)으로도 재직 중이다.
노종화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