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불황 속 친환경 규제도 완화 추세…일진 “2분기부터 수소버스 매출 증가 예상”
일진하이솔루스는 수소차에 적용되는 수소탱크를 개발하는 기업이다. 일진하이솔루스는 문재인 정부 시절 발표한 수소경제 로드맵 덕에 승승장구했다. 증권가에서는 일진하이솔루스 상장 당시 2023년 수소 부문 매출만 3400억 원일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일진하이솔루스의 실제 2023년 수소 부문 매출은 790억 원에 그쳤다.
수소산업 정체는 한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세계적으로 경기 불황 우려에 친환경 규제가 완화되는 추세에 있기 때문이다. 일진그룹 안팎에서는 일진하이솔루스를 매각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영업손실 올해도 지속될 가능성"
일진하이솔루스의 지난해 4분기 매출은 192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6%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손실은 39억 원으로, 지난해 3분기(28억 원)에 비해 적자폭이 커졌다. 일진하이솔루스의 올해 1분기 실적은 더 부진할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국내 유일한 수소차인 현대자동차 넥쏘의 판매량이 지속해서 줄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올해 1분기 보조금 수준이 확정되지 않아 특히 판매량이 적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에셋증권은 올해 넥쏘 판매량이 전년의 절반 수준인 2000~3000대에 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류제현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넥쏘 판매량이 지속적으로 부진한 이유는 충전소 인프라 문제 외에도 넥쏘 신규 출시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며 “넥쏘 신차는 내년 출시 예정인데 이 실적이 반영될 내년 하반기까지는 인내심이 필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진하이솔루스가 상장할 당시 새로운 먹거리로 지목했던 환경사업 부문(매연 저감 장치 등)도 기대하기 힘들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일진하이솔루스의 지난해 4분기 환경 부문 매출은 10억 원 정도에 그쳤다. 사실상 사업 철수 수순이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일진하이솔루스가 올해 1분기 110억 원가량의 매출을 낼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지난해 1분기(250억 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또 올해 1분기 영업손실은 30억 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했다. 류제현 연구원은 일진하이솔루스에 대해 “올해도 영업손실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일진하이솔루스는 2021년 상장 당시 대부분 증권사가 앞다퉈 보고서를 낼 정도로 뜨거운 기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장 주관사였던 미래에셋증권을 제외하면 일진하이솔루스 관련 보고서를 내는 증권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과거 일진하이솔루스 보고서를 발간했지만 지금은 들여다보지 않는다고 밝힌 한 증권사 연구원은 “최소한 지금은 수소라는 것이 주가 상승 재료로 작동하지 않는다”며 “무엇보다 실적이 좋지 않아 중장기적으로 추천 의견을 내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그나마 기대해 볼 수 있는 부분은 수소버스다. 국내에서 운영되는 수소버스는 지난해 500대 수준이었다. 올해는 1500~1700대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의 목표는 2000대 도입이다. 버스는 1대당 수소 연료탱크가 5개가량 필요하고, 개당 부피도 일반 차량보다 크다. 정부 목표대로 수소버스를 도입하면 일진하이솔루스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일진하이솔루스는 지난해 9월 상용차용 수소 연료탱크 생산능력을 키우기 위해 87억 원을 투입했고, 오는 6월 말까지 증설 작업을 마칠 계획이다.
#"수소차 분야 속도전 펼치기 어려울 것"
문제는 일진하이솔루스가 언제까지 버티기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경쟁사들은 대부분 전폭적으로 연구개발(R&D)에 나설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큰 기업들이다.
일진하이솔루스가 만드는 연료 탱크는 금속을 사용하지 않고, 고밀도 플라스틱에 탄소섬유를 감아 만든 ‘타입 4’ 방식이다. 타입 4를 만들 수 있는 곳은 노르웨이 헥사곤퓨루스, 프랑스 플라스틱옴니움, 일본 도요타 정도가 꼽힌다. 그러나 다른 글로벌 주요 부품사들도 타입 4에 대해 준비가 완료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진하이솔루스 R&D 부문에서 일한 적이 있는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잃어버린 2~3년’을 보내는 사이 어지간한 글로벌 부품사들은 대체로 기술력을 따라잡은 것으로 안다”며 “지금은 시장이 크지 않아 나서지 않을 뿐, 일진하이솔루스가 글로벌 톱3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에너지업계 다른 관계자는 “현대차그룹도 현대위아 등을 통해 내재화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수소경제 로드맵을 발표할 때만 해도 글로벌 수소 강국을 표방했다. ‘2022년 경제정책방향’만 봐도 그해 수소차 공급 목표치가 무려 5만 4000대에 달했다. 2050년까지 연간 2790만 톤(t)의 수소를 모두 그린수소와 블루수소(천연가스 추출 후 탄소 포집)로만 공급하겠다는 일정을 법정 계획에 담았을 정도다.
하지만 불과 2~3년 새 분위기가 바뀌었다. 나승두 SK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11월 보고서를 통해 “수소강국임을 자부했던 우리나라지만 수소 에너지원에 대한 주도권은 이미 놓쳤다고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수소 사업 부진이 국내에 국한된 이야기도 아니다. 지난해 이후 주요 국가들은 친환경 규제를 완화하는 추세다. S&P글로벌이 지난 3월 18일 주최한 ‘세라위크’에서 아민 나세르 아람코 최고경영자(CEO)는 ‘탈석유의 환상을 버려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고, 참석자들이 손뼉을 치며 환호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그만큼 기존 에너지 구세력의 힘이 막강하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라며 “당분간은 전기차, 수소차 분야 모두 속도전을 펼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 일진그룹 관계자는 “충전소 증가가 계획 대비 지연되면서 일반 소비자 대상 승용차 매출은 줄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각 지자체별로 친환경버스 도입을 위해 거점 중심의 수소출하센터 및 충전소 건립을 추진하고 있어 2분기부터 상용차(버스) 관련 매출은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일진하이솔루스는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하고 있으며 수소 튜브트레일러 매출을 확대하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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