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처진다’ 비판 딛고 지난해 순이익 창립 이래 최대치…순수전기차 비싼 가격·미흡한 인프라 탓 대중화 지연
#주가 폭등 재평가받는 도요타
‘전기차 개척자’ 테슬라는 지난 수년간 급성장하며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자동차 기업으로 거듭났다. 테슬라의 성공을 보고 제너럴모터스나 포드 같은 자동차 업체들은 ‘많은 소비자들이 배터리 구동 자동차로 갈아탈 준비가 돼 있다’고 판단,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수백억 달러를 전기차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반면 도요타는 회의적이었다. ‘순수전기차(BEV)의 보급이 그렇게 빨리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라 전망하고, 내연기관 엔진과 배터리 모터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차량에 집중했다. 완전한 전기화는 매우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여러 길을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전기차 생산에 올인하지 않고 하이브리드 모델을 풍부하게 선보이며 소비자가 선택권을 갖게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러한 도요타의 전략은 투자자와 환경론자 모두에게 비난을 받았다. “전기차 개발 경쟁에서 한참이나 뒤처졌다” “환경에도 도움이 덜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역전됐다. 세계 친환경차 시장에서 전기차 열풍이 잦아들고 있는 가운데, 도요타를 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소비자들이 순수전기차 구입을 주저할 것이란 도요타의 예상이 적중했다”며 “지난 10년간 자동차업계에서 가장 큰 목소리로 하이브리드 차량을 옹호해온 도요타가 옳았다”고 평가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지난해 도요타는 약 340만 대의 하이브리드 차량을 판매했다. 2022년(260만 대)보다 30.7%가 늘어난 수치다. 반면 테슬라의 판매량은 180만 대에 그쳤다. 믿고 기다려준 도요타의 투자자들은 이미 보상을 받았다. 2023년 초 이후 도요타 주가의 상승률은 80%에 달한다.
전기차 수요 둔화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는 비싼 가격과 미흡한 충전 인프라를 배경으로 꼽는다. 예를 들어 테슬라는 1대당 평균 최저가액이 6000만 원대지만, 도요타의 하이브리드라면 1000만 원대 저가부터 다양하다. 또한 “충전 시설이 부족한 상황이라 차고와 충전기 설치가 가능한 단독주택이 아니면 현실적으로 구입이 어렵기 때문에 결국 전기차 구매층은 한정돼 있다”고 덧붙였다.
모건스탠리의 분석가 아담 조나스는 “정부의 환경규제 강화와 소비자의 전기차 지향으로 하이브리드 시장이 빠르게 사라질 것”으로 자신 있게 전망했으나 올해 2월 “도요타에 사과해야만 한다”며 자신의 주장이 틀렸음을 인정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도 “과거 ‘기름 덜 먹는 차’로만 인식되던 하이브리드차가 지금은 순수전기차를 앞서는 최고 인기 차량으로 떠올랐다”고 보도했다. 하이브리드차의 미국 판매량은 올해 1~2월 5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차 판매량이 13% 늘어난 것에 비해 훨씬 가파른 증가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하이브리드차는 기존 가솔린차보다 연비가 좋고, 친환경적이라는 이점이 있다”면서 “20년 이상 하이브리드의 기술을 축적해온 도요타가 당분간 다른 회사의 추종을 불허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하이브리드차 전성시대 언제까지
물론 자동차업계는 여전히 수익성 높은 전기차 개발을 가장 중요한 장기 목표로 삼고 있다. 전기차가 대세이며, 미래를 이끌어갈 차종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최근 ‘하이브리드 전성시대’가 도래하면서 계획 변경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제는 다른 자동차 업체들이 도요타를 따라가는 상황이 된 셈이다.
2030년까지 완전 전기화 계획을 발표했던 메르세데스-벤츠는 전기차 수요 약세로 인해 전략을 대폭 수정하고, 신형 엔진 개발에 착수했다. 제너럴모터스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 제조를 거의 중단했다가 올해 1월 “순수전기차가 대중화되는 데까지는 예상보다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인정하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기술 재도입을 발표했다. 포드도 향후 5년간 하이브리드 차량 생산을 4배 늘린다는 방침이다.
전기차에 대한 각국의 혜택도 줄어들고 있다. 독일은 2023년 12월 전기차 보조금 지급을 중단했고, 중국도 전기차 구매자에 대한 정부 보조금 제도가 2022년 말 종료됐다. 무엇보다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은 애플의 전기차 개발 철수다. 올해 2월 애플은 지난 10년간 공들여온 자율주행 전기차 개발을 자진 포기했다. 대신 ‘생성형 인공지능(AI)’ 분야에 경영 자원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한다.
짐 팔리 포드 최고경영자(CEO)는 “전기차가 우리의 명확한 목적지이긴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 듯하다”면서 “하이브리드차는 우리 산업의 전환에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당분간 계속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이 하이브리드차의 수명을 좌우할 격전지가 될 것”으로 본다. 다만 장기적인 예측은 어렵다고 덧붙였다. 특히 “11월 미국 대선으로 자동차업계 지도가 새로 바뀔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만약 트럼프가 정권에 복귀하면 바이든 대통령이 통과시킨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대폭 손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 IRA는 전기차, 청정에너지 등 부문에서 3690억 달러(약 498조 원) 규모의 감세·보조금 혜택을 주겠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자동차업계에 ‘폭탄관세’가 예상된다”면서도 “한편으로는 미국 자동차 업체들도 테슬라 외에 다른 선택지를 찾는 고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대중용 전기차를 투입해 나갈 것”이라고 짚었다.
카를로스 타바레스 스텔란티스 CEO는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가 어떻게 되든 하이브리드차 업계가 전기차의 전환기를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완수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아울러 “전기차 소유는 시간이 지나면 더 쉬워질 것이다. 하지만 아직 그 시기가 오지 않았다”라는 소견을 밝혔다. 반면, 맥쿼리증권의 제임스 홍 연구원은 “결국 전기차의 시대가 올 것이다. 기존 하이브리드 모델로 이익을 보고 있는 자동차 회사들은 지금의 시간과 자금을 현명하게 쓰는 게 좋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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