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조계 소신맨’ 김용준 전 헌재 소장이 박근혜 캠프에 합류해 주목받고 있다. 연합뉴스 |
김용준 전 헌재소장이 등장하면서 새누리당 안팎에서는 “2040세대를 잃었다”는 푸념이 나온다. 지난해 말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때 20대 이준석 비대위원의 깜짝 등장으로 ‘서프라이즈 임계치’를 가지게 된 새누리당 지지세력으로서는 김 전 헌재소장,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4인 체제’는 식상해 보인다. 한 정치권 인사는 “‘노회함, 가진 자, 갈등세력, 무능’을 뭉뚱그려 놓은 것처럼 보인다”며 실망감을 표출했다. 그나마 김 전 헌재소장이 지체장애인이라서 소수자를 대변하는 ‘헌법 가치의 구현자’라고 위로하는 언론보도가 있었지만 크게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긴말 필요 없이 ‘김용준’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 대중적 인지도가 전무한 외부인사는 아무리 진정성이 있더라도 ‘표 확장’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비판이 무게를 갖는 이유다.
김 전 소장은 부친이 6·25전쟁 당시 납북돼 생사조차 모르는 가운데 소아마비를 앓았다. 그가 세 살 때다. 몸이 불편한 그는 그때부터 소수자를 위한 삶을 각오했다고 전해진다. 어머니와 친구들이 업어서 그의 통학을 도왔으니 꼭 갚아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각오가 있었다. 그는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이다.
서울고 2학년 재학 중 그는 검정고시를 쳤는데 서울대 법대에 입학할 만큼 뛰어난 머리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나이 만 19세, 그러니까 법대 3학년 때 사법고시를 수석으로 합격했다. 당시에도 장애를 딛고 일어선 위대한 도전이라는 이야기가 꽤 회자했다고 한다. 1960년 대구지방법원 최연소 판사로 법조계에 입문한 그는 그 뒤 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가정법원장을 거쳐 1994년 대법관에서 퇴임했으며 같은 해 제2대 헌법재판소 소장으로 취임해 2000년 임기 만료로 물러났다. 1988년에는 지체장애인 최초의 대법관 임명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법조계에서 그는 ‘헌법 가치의 구현자’였다. 박 후보가 그를 이런 이유로 삼고초려했다고 밝힌 것을 두고 정치권은 ‘과거와의 화해’로 해석한다. 유신이 헌정유린임을 인정하며 대국민 사과기자회견을 연 박 후보로서는 김 전 헌재소장 영입으로 ‘진정성’을 알리겠다는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박 후보가 집권한다면 고 박정희 대통령 시대 같은 유신은 없을 것이며, 그의 딸로서 헌법을 수호하는 지도자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김 전 헌재소장은 판사재임 중이던 1963년, 박정희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선 출마를 반대하는 글을 써 구속된 송요찬 전 육군 참모총장을 구속적부심에서 석방했는데 김 전 소장을 두고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신 판결’ 사례다. 그가 헌법재판소장일 때에는 과외 금지, 군 제대자 가산점, 동성동본 혼인 금지, 영화 사전검열, 미결수 수의 착용 사건 등의 판결에서 기본권을 침해하는 각종 제한을 철폐, 위헌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 박근혜 후보가 지난 12일 당사에서 김용준 등 공동선대위원장 4인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요즘 ‘참여정치’라는 말이 유행인데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기 어렵다. 그리고 지난해 대선 당시 유력한 후보자 두 명이 모두 법률가 출신이어서 누가 당선되더라도 법치주의가 실현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지금은 노 대통령이 과연 법치주의를 확고하게 구현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당시 노 전 대통령과 언론의 적대적 관계에 대해서도 “언론의 보도태도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언론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비판이다. 밀턴은 ‘언론의 자유가 사라지면 진리가 죽게 된다’고 했다. 노 대통령을 비판하는 신문의 독자가 얼마나 많은가. 그처럼 많은 독자가 보는 신문이라면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2010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광우병 사태’에 관해 “고등법원이 MBC 광우병 보도의 상당 부분이 허위였다고 판결했고, MBC 스스로도 정정보도를 한 바 있는데 대법원이 덮어놓고 모두 허위가 아니었다고 판결한다면 국민이 납득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그가 만약 ‘소신 판결’의 주인공이 아니었더라면 당시 이야기는 설득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조선일보에도 쓴소리를 했는데(김 전 헌재소장은 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요즘은 언론이 너무 미지근해서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때도 있다. 얼마 전 고객이 호텔 엘리베이터에 몇 시간 동안 갇혔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그 호텔 이름을 끝까지 밝히지 않더라. 흉악범의 신원을 공개하는 문제도 그렇고”라거나, “나는 조선일보가 젊은이들에게 쓴소리는 하지 않고 아첨하려고 하는 게 불만이다. 책도 안 읽고, 신문도 안 읽고 그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에서 얻은 쪼가리 지식이 전부인 줄 아는 일부 젊은이들에게 따끔하게 실력을 키우라고 왜 얘기 못 하나, 공부를 잘하든지, 아니면 스스로 학비를 벌라고 해야지, 노력도 안 하는 대학생들에게 국민이 세금으로 등록금을 대신 내줘야 하나?” 등등 반값등록금 문제가 한창일 때 그는 여전히 쓴소리를 질렀다. 김 전 소장은 헌법재판소장 퇴임 후엔 청소년 참사랑운동본부 명예총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등을 맡았고 현재는 법무법인 넥서스의 고문변호사다.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지만 사실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인선안 발표는 11일이 아닌 10일이었다. 하루 밀린 것이다. 일각에서는 황우여 대표가 아니라 진념 전 부총리, 김 전 헌재소장이 함께 명단에 올랐다고도 한다. 황 대표는 최근 불거진 ‘친박계와 당 지도부 2선 후퇴’의 대상이었고, 당 안팎에서도 ‘황우여 리더십’을 두고 “이해찬 민주당 대표에게 당하지 못한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이 나오고 있어서다. 하지만 진 전 총리의 영입은 실패로 돌아갔다.
새누리당이 김 전 헌재소장 영입을 어떻게 포장할지 알 수 없다. 언론이 얼마나 우호적일지도 예측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김 전 헌재소장이 법조계에 있을 때처럼 ‘소신’을 갖고 발언하고 평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최기서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