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력 강조, 민간 최초 기술연구소 설립…한미 FTA 기여 ‘재계 큰어른’ 평가
고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는 슬하에 3남 2녀를 뒀다. 조석래 명예회장은 1935년생으로 조홍제 창업주의 장남이다. 조 명예회장은 당초 교수를 꿈꿨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경기고등학교 재학 중 유학을 떠나 일본 와세다대학교 이공학부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화학공학과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러나 조 명예회장은 아버지인 조홍제 창업주의 부름을 받고 1966년 효성물산에 입사해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조석래 명예회장은 효성그룹 합류 후 동양나이론 울산공장 건설을 주도했다. 이어 1970년에는 동양나이론 사장과 효성물산 사장에 오르면서 본격적인 2세 경영 시대를 알렸다. 동양나이론의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면서 효성그룹은 국내 대표 섬유 기업으로 거듭났다. 조 명예회장은 이후 동양염공과 동양폴리에스터 설립을 주도했고, 한일나이론과 한영공업 인수 작업에도 참여했다.
조석래 명예회장은 기술력을 강조했다. 효성그룹은 1971년 조 명예회장의 뜻 아래 민간기업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 1978년에는 중공업 기술연구소를, 1983년에는 전자연구소를 추가로 설립했다. 이는 효성그룹 대표 제품인 스판덱스와 타이어코드 등을 개발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조석래 명예회장은 장기적 관점을 중요시 여긴 인물로도 유명하다. 조 명예회장은 1971년 동아일보 기고문을 통해 “비록 긴축으로 인해 한 기업인의 포켓(지갑)은 궁색해졌을지라도 한국경제의 비합리를 정상화시키기 위해서는 (긴축경영이) 꼭 필요한 조치”라며 “기업인들도 감원 등 단기적 안목에서 불황을 타개하려 할 것이 아니라 원가절하 등 체질개선을 위한 적극적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석래 명예회장은 1981년 효성그룹 회장에 취임하면서 1인자로서의 경영을 시작했다. 조홍제 창업주는 조 명예회장에게 효성그룹을, 차남 조양래 명예회장에게 한국타이어(현 한국앤컴퍼니)를, 삼남 조욱래 회장에게 대전피혁(현 DSDL)을 각각 물려줬다. 이 과정에서 형제 간 분쟁이 발생하지 않아 재계에서는 성공적인 승계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그러나 조석래 명예회장도 19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를 피해가지 못했다. 효성그룹은 1998년 당시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면서 효성T&C(옛 동양나이론), 효성생활산업(옛 동양폴리에스터), 효성중공업(옛 동양염공), 효성물산 등 4개 계열사를 (주)효성으로 합병시켰다. 또 효성바스프와 한국엔지니어링플라스틱, 효성ABB 등 비주력 계열사를 매각해 재무 위기에서 벗어났다.
조석래 명예회장은 2000년대 들어 경제 외교 분야에서 존재감을 보였다. 특히 조 명예회장은 한미재계회의 한국 측 운영위원장을 맡으면서 정부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촉구한 바 있다. 조 명예회장은 2007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을 맡으면서 대외 활동에 앞장섰다. 당시 보여준 리더십 덕에 재계에서는 조 명예회장을 ‘재계 큰어른’으로 평가하고 있다.
조석래 명예회장 본인과 달리 자녀들의 사이는 좋지 않다. 차남 조현문 전 사장은 2014년 형인 조현준 회장을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조 회장 역시 2017년 협박을 당했다면서 조현문 전 사장을 고소했다. 법적 다툼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조현문 전 사장은 효성그룹을 떠났고, 현재는 조현준 회장과 조현상 부회장 두 사람이 효성그룹을 이끌고 있다. 효성그룹은 지난 2월 지주사 분할 계획을 밝힘에 따라 조현준-조현상 형제를 중심으로 계열분리될 전망이다.
2010년대 들어 효성그룹 안팎의 우환 속 조석래 명예회장의 건강도 악화된 것으로 전해진다. 조 명예회장이 2010년 전경련 회장에서 사임한 것도 담낭암 말기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조 명예회장은 이후 전립선암, 부정맥 등의 질병이 발견됐다. 결국 조 명예회장은 2017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 최근까지 치료에 전념해왔다.
조석래 명예회장은 최근 건강이 급속히 악화됨에 따라 서울대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다. 효성그룹은 조 명예회장이 3월 29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안하게 영면했다고 밝혔다.
조석래 명예회장의 별세 소식이 알려지자 각 경제단체에서는 애도를 표명하고 있다.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은 “대한민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셨던 재계의 큰어른을 이렇게 떠나보내야 하는 슬픔과 허전함을 이루 표현할 길 없다”며 “언제나 다정하신 모습으로 후배 경제인들을 품어주시던 회장님의 온화한 미소가 벌써부터 그립다”고 전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도 “기업가 정신과 탁월한 경영 능력으로 효성그룹을 이끌어 온 조 명예회장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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