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M·ODM 등 활용해 손쉽게 브랜드 론칭…인수·상장 사례 증가하는 한편 폐업도 속출
#K-뷰티의 어엿한 주연
화장품 인디 브랜드는 최근 크게 늘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화장품 책임판매업체는 2022년 기준 2만 8015개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전인 2019년(1만 5707개) 대비 78% 증가한 수치다. 2013년(3884개)보다는 621%나 늘었다. 화장품 책임판매업체는 화장품을 유통·판매하기 위해 식약처에 등록된 업체다. 화장품 책임판매업체가 만든 화장품 브랜드의 수는 화장품 책임판매업체 수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인디 브랜드의 성장에는 판로 확대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리브영이 취급하는 제품의 80% 이상이 중소 인디 브랜드다. 최근에는 균일가 생활용품점 다이소도 화장품 판매를 늘리고 있다. 쿠팡·마켓컬리·쓱닷컴(SSG닷컴) 등 이커머스 업체와 무신사·에이블리 등 온라인 버티컬 업체들도 화장품 카테고리에 힘을 싣는 추세다.
인디 브랜드 만들기도 과거에 비해 한층 수월해졌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등 화장품 제조업체는 2019년 2911개에서 2022년 4548개로 56% 늘었다. ‘화장품 회사로 살아남기’ 책을 펴낸 최완 중앙대 산학협력중점교수는 “과거에는 직접 제조회사를 차릴 수 있는 사람들만 화장품 브랜드를 만들었다. 그런데 제조업체가 늘면서 화장품 제조가 수월해졌다. 마케팅 능력만 있다면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기 쉬워졌다”라고 설명했다.
국내 대형 OEM·ODM 업체인 코스맥스와 한국콜마 등은 제조업자 브랜드 개발·생산(OBM)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OBM은 제조업체가 브랜드 개발부터 생산, 마케팅 컨설팅까지 지원하는 사업이다. 코스맥스 관계자는 “100개 정도의 화장품 브랜드를 만들었다. 브랜드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도 코스맥스가 만든 브랜드를 양도받으면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수출액 1위 품목 '화장품'
인디 브랜드의 인기는 실적에서도 드러난다. 한방화장품 브랜드 ‘조선미녀(Beauty of Joseon)’를 보유한 구다이글로벌은 지난해 매출 약 1400억 원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다이글로벌의 2020년 매출은 1억 4300만 원에 불과했다. 스킨케어 브랜드 ‘스킨1004’를 선보이고 있는 크레이버코퍼레이션의 지난해 매출은 798억 원으로 2022년(383억 원) 대비 약 2배 뛰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대기업 브랜드가 아니더라도 독특하고 새로운 제품을 찾는 MZ세대의 특성과 잘 맞물린 듯하다”고 했다.
해외에서도 한국 인디 브랜드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2023년 중소기업 수출동향(잠정치)’에 따르면 지난해 중소기업 수출액 1위 품목은 화장품이었다. 화장품의 지난해 수출액은 54억 달러(약 7조 원)로 2022년 대비 20% 증가했다. 중국 자국 화장품 브랜드의 성장과 중국 경기침체로 중국으로의 수출은 감소했지만 미국과 일본, 베트남으로의 수출이 각각 2022년 대비 47%, 13%, 29% 늘었다.
화장품업계 한 관계자는 “소셜미디어(SNS)를 활발히 이용한 국내 인디 브랜드 중에는 해외에서 먼저 좋은 반응을 얻는 브랜드도 적지 않다”며 “미국에서는 아마존에 입점해서 활발히 홍보하는 브랜드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코스맥스와 한국콜마 등을 필두로 국내 제조업체들의 역량이 상향평준화됐고, 이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한국 화장품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인디 브랜드의 인기에 따라 이들의 고객사인 한국콜마, 코스맥스는 지난해 호실적을 기록했다. 한국콜마 지난해 매출은 2조 1554억 원으로 2022년(1조 8657억 원) 대비 16% 늘었다. 사상 처음으로 2조 원을 넘어섰다. 코스맥스의 지난해 매출은 1조 7775억 원으로 2022년(1조 6001억 원) 대비 11% 늘었다. CJ올리브영의 매출은 2022년 2조 7809억 원에서 지난해 3조 8682억 원으로 39% 증가했다.
인디 브랜드를 인수하는 사례도 줄을 잇고 있다. 지난해 9월 LG생활건강은 ‘hince(힌스)’를 보유한 비바웨이브 회사 지분 75%를 444억 원에 취득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10월 아모레퍼시픽은 코스알엑스(COSRX)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지분 57.6%를 7551억 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인디 브랜드 인기에 힘입어 상장에 착수한 기업도 있다. ‘스킨케어 맛집’으로 불리는 마녀공장은 지난해 6월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색조 화장품으로 유명한 삐아(BBIA)는 스팩합병 방식으로 4월 중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다.
#다 잘 되는 건 아니다
성공 사례가 늘고 있지만 동시에 인디 브랜드의 폐업도 크게 늘고 있다. 각 지역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화장품책임판매업체 폐업도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경기북부·강원도 지역에서는 2021년 251개 화장품책임판매업체가 폐업했는데 2022년에는 1197개, 지난해에는 1393개 업체가 폐업했다. 지난해 폐업한 업체가 2021년 대비 455% 늘었다.
다른 지역 상황도 비슷하다. 인천과 경기남부 지역에서는 폐업한 화장품책임판매업체가 2021년 207개에서 지난해 917개로 343% 증가했다. 대전·세종 등 충청 지역에서는 화장품책임판매업 폐업 업체가 2021년 104개에서 지난해 232개로 123% 늘었다. 같은 기간 대구·경북 지역 폐업 업체는 67개에서 193개로 188% 증가했다. 호남·제주 지역에서는 지난해 180개 업체가 폐업했다. 이는 2021년(69개) 대비 161% 늘어난 수치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모든 인디 브랜드의 인기가 좋은 것은 아니다”며 “인디 브랜드 중에서도 브랜드 로열티 파워가 있거나 가성비가 높은 제품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 추세”라고 말했다.
최완 교수는 “ODM 업체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제조가 쉬워지기는 했지만 판매는 브랜드 업체의 몫”이라며 “유통전략에 대한 충분한 준비 없이 제품만 만들어놓고 정작 팔 고민은 나중에 하는 기업들도 많다. 이런 곳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폐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대형 OEM이나 ODM사에 제조를 맡긴 업체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주덕 성신여대 뷰티융합대학원장은 “국내에서는 화장품 제조업체 표기가 필수다. 그런데 가격이나 물량 면에서 중소 제조업체에 제조를 맡기는 브랜드가 많다. 국내 소비자들의 신뢰도를 얻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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