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 왕이 된 남자’를 제작하고자 결정한 이면에 정치적인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주는 메시지는 진영 논리가 아니다. 이 시대에 진정한 리더는 어떤 사람인지, 진정한 애민사상은 무엇인지 화두를 던지는 것이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관객들과 함께 그 화두에 대해 고민하고 싶었다.
모든 영화가 그렇듯 기획을 하고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은 지난하고 고통스럽다. 수없는 밤을 지새우며 피와 땀으로 고치고 또 고친 시나리오가 완성되고, 제작을 결심할 때 딱 한 가지만 관객에게 전달되길 바랐다. 왕세자보다 왜 광대가 더 백성을 위하고 나라를 생각할까.
왕세자는 당대 최고 학자와 전문가들로부터 다양한 학문과 실무를 배우고, 학문은 물론 예의범절과 국제정세 등 소위 ‘제왕학’을 공부했다. 그에 비해 광대는 글이라고는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고 저잣거리에서 광대 짓을 하며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왔다.
최고 전문가들에게 최고 엘리트교육을 받은 선택된 사람들이 애민사상을 실행하지 못하는 반면, 길거리에서 어렵게 살아오며 글도 못 읽는 하층민이 어떻게 애민사상을 실행하려 했고 어떻게 그것을 알고 있는지를 함께 고민해보고 싶었다.
그것이 욕망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엘리트교육을 받은 선택받은 사람들이 진정 백성을 위하고 국민을 위하는 마음을 먹는다면, 전혀 교육을 받지 않고 어렵게 살아온 사람들보다 더 잘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엘리트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을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에 투영한다면 그 권력은 부패하고 타락한다. 그로 인해 백성과 국민은 고통스러워진다. 이런 내용을 영화에 담고 싶었다.
우리는 정치인들, 권력자들을 공복(公僕)이라 부른다. 공복은 사전적인 의미로 ‘국가나 사회의 심부름꾼’을 의미한다. 그러나 2024년 국민이 국회의원들을 공복이라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국회의원들도 스스로를 사회의 심부름꾼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길거리 광대 ‘하선’은 매우 단순하다. 그는 어떠한 정치적 계산도 자신의 이익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무엇이 백성들에게 유익하며 무엇이 국가를 위해 행하여야 하는 일인지에 대해서 고민하거나 주저하지 않는다.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자신의 욕망을 권력에 투영하지 않는다.
정치란 단순하다고 생각한다. 고차방정식이 아니라, 단순 산수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국민에게 필요하며, 무엇이 국민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계산하는 산수다.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해야 할 사안들이 우리 진영, 우리 당, 우리 편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따지게 되면 고차방정식이 돼 버린다. 그러다 보니 진정한 애민사상은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유·불리를 따지는 것이 더 큰 가치로 자리매김해가는 것처럼 보인다.
다 무너져가는 명나라에 은공을 갚기 위해 수만의 병력을 파병해야 한다는 대신들의 요청에 가짜 광해 하선은 단호하게 말한다.
“도대체 이 나라가 누구의 나라요? 그대들이 말하는 사대의 예보다 나는 내 백성의 목숨이 백 곱절 천 곱절 더 중요하오.”
반역을 도모했다는 의심을 받는 중전의 오라버니를 국문하면서 가짜 광해 하선은 묻는다.
“네가 진정 반역을 꾀했냐? 아니면 무엇을 도모했느냐?”
중전의 오라버니가 대답한다.
“아니오. 나는 반역을 꾀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았소. 그저 주상이 귀를 열고 주상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말을 들으라, 들어보시라고 하였소.”
그러자 가짜 광해 하선이 명한다.
“이자는 아무 죄가 없다. 즉시 풀어주어라.”
이게 길거리 저잣거리에서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온 보통사람들의 상식이고 판단이다. 어떠한 명분과 어떠한 이익보다 내 백성, 내 국민들의 안위가 더 중요한 가치다. 설사 나에게 반대하고 내가 행하고자 하는 일에 이의를 제기하더라도, 지도자는 들어야 한다. 이 단순하고 명료한 가치를 길거리 광대도 알고 있다는 걸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었다.
이제 곧 4년간 우리 지역과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국회의원이 선출된다. 이번에 뽑히는 300명 모두 국민의 공복이며 국민의 대변자로서 애민사상에 입각한 정치인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