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권 다툼 불가피, 조국 ‘비명계 구심점’ 될지 주목…이·조 사법리스크 변수, 8월 전당대회가 분기점
#이재명-조국, 묘한 긴장감
3월 5일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예방했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윤석열 정부 심판론’을 같이 외치며 4·10 총선 연대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해찬 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도 기자회견서 “앞으로 저도 그쪽 분들(조국혁신당)과 더 많이 만나 대화도 하고 방향을 조율하는 기회를 갖겠다”고 말했다. 21대 총선 때 이해찬 당시 대표가 민주당 비례표를 노렸던 열린민주당을 향해 거칠게 각을 세웠던 것과 대조된다.
조국혁신당은 출범할 때만 하더라도 ‘조국의 강’ ‘내로남불’ 프레임 안에서 파급력이 미미할 것이란 비관론이 우세했다. 그런데 조국혁신당은 출범하자마자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대표는 조국당) 전략을 앞세워 돌풍을 일으켰다. 조국 대표는 윤석열 정부 심판을 내세우며 민주당 이탈층을 끌어들였다. 조국 대표는 총선 이후 민주당과 합당하지 않겠다고도 수차례 강조했다.
정가에선 윤석열 대통령도, 이재명 대표도 싫은 유권자들이 조국혁신당을 대안으로 선택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친명횡재 비명횡사’라는 공천 파동으로 민주당에 등을 돌린 친문계 포함 비명계 지지층이 ‘조국혁신당’으로 결집하는 양상을 보였다. 조 대표는 문재인 정부에서 민정수석과 법무부 장관을 역임한 만큼 친문계로 분류된다. 조 대표가 민주당 최대주주인 친문계 구심점 역할을 할 수도 있는 셈이다.
민주당 공천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거나 변방으로 밀린 비명계 인사들이 총선 이후 조국혁신당에 대거 합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3월 26일 조국 대표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무소속 분이든, 용혜인 의원이 속해 있는 기본소득당 또는 사회민주당 등과 공동의 교섭단체를 만드는 일은 충분히 가능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친명 진영에선 ‘조국 경계론’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3월 12일 친명계 김용민 의원은 YTN라디오 ‘신율의 뉴스 정면승부’에서 “(지민비조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며 “지역구도 비례도 민주당이 최대한 의석을 확보해서 단독 과반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국과 연대를 시사했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연일 ‘민주당 몰빵론’을 띄우며 견제구를 던졌다. 조국혁신당 출범 직후 우호적이었던 양측 관계에 긴장감이 흐른 것도 이 무렵부터다.
조국혁신당은 22대 국회 캐스팅 보트(승패를 결정하는 정당) 역할을 노린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여야 모두 과반의석을 차지하지 못했고, 제3당이었던 국민의당이 국회에서 주도권을 쥔 바 있다. 민주당이 과반을 확보하더라도 국회 본회의와 상임위 운영에서 조국혁신당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이를 발판 삼아 조국 대표는 정치적 영향력 확대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야권 일각에선 조국 대표를 차기 대선후보군으로 분류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서울경제신문 의뢰로 3월 28~29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11명을 대상으로 차기 대통령감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이재명 대표가 27%, 한동훈 위원장이 20%로 집계됐다. 조국 대표는 4%로 3위를 차지했다. 이낙연 새로운미래 공동대표와 홍준표 대구시장이 각각 2%로 뒤를 이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오세훈 서울시장,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은 각각 1%를 얻었다. 기타는 3%, 없음·모름·무응답은 38%였다(여론조사 자세한 내용은 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총선 후 빅뱅 올까
총선 이후 범야권에서 헤게모니(패권)를 둘러싼 주도권 다툼이 벌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재명 대표 독주체제에 조국 대표가 가세하면서 양측이 파워게임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조국혁신당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전통 지지 기반인 호남에서 선두권을 다퉜다. 호남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6년 총선을 앞두고 “호남이 지지를 거둔다면 정계 은퇴는 물론이고 대선에도 불출마하겠다”고 밝힐 정도로 그 의미가 남다른 곳이다.
3월 27일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신율의 뉴스 정면승부’에서 “(조국 대표의) 야권 주자 1위 등극은 시간문제”라며 “조국 대표가 각광을 받는 것은 야권 재편, 그러니까 총선 이후에 본격적으로 야권 재편의 시간이 올 가능성이 있는데 주도권을 이미 확보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4월 3일 유승찬 정치컨설턴트는 ‘신율의 뉴스 정면승부’에서 “(민주당이 총선에서 압승하더라도) 그 성과가 조국 대표한테 공이 돌아갈 가능성이 되게 높다”며 “윤석열 정권 심판에는 동의하지만 이재명 대표가 싫었던 사람들이 뭔가 선택지를 만난 것이다. 그 흐름 때문에 선거 끝나고 이 공을 둘러싼, 그리고 이후에 리더십을 둘러싼 굉장히 민감한 (조국 vs 이재명) 대결 국면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다만, 이재명 대표와 조국 대표는 사법리스크라는 약점을 안고 있다. 이 대표는 현재 대장동·성남 FC·백현동 사건 외에도 대북 송금 사건 관련 제3자 뇌물죄 혐의, 2018년 허위사실공표 혐의 재판 관련 위증교사 등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2월 8일 조 대표는 자녀 입시비리 혐의 등으로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징역 2년의 실형과 함께 600만 원의 추징을 명령받았다. 조 대표가 대법원에서 실형을 확정받을 경우 피선거권이 5년간 박탈돼 2027년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관련기사 법원의 시간 째깍째깍…조국·이재명 사법리스크 ‘선고 시점’ 주목 까닭).
그럼에도 조국 대표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그가 비명계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전망과 무관하지 않다. 이번 총선에서 컷오프(공천배제)된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당에 남아 전국 유세를 돌며 훗날을 도모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총선 지원 유세에 나서고 있다. 김부겸 전 총리는 이재명 대표 측에서 어떤 요구도 들어주지 않았음에도 공동상임선대위원장으로 합류했다. 이들과 조국 대표가 함께 비명계 결집을 도모한다면 이재명 대표로선 큰 위협이 될 가능성이 높다.
4월 3일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이 선거가 민주당에 불리했으면 (김부겸, 임종석, 박용진, 문재인 등이) 나섰겠습니까”라며 “두 가지 아니겠습니까. 포스트 이재명 이후에 누가 이 당의 주도권을 가져갈 것이냐. 이재명 대표는 사법리스크 기다리고 있는데 결국 그걸 다 넘어서지 못할 거다. 그러니까 우리가 탈당도 안 하고 이 안에 당을 지키면서 기회를 보자, 이렇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는 8월 전당대회가 분기점으로 꼽힌다. 2023년 12월 민주당은 전당대회에서 대의원과 권리당원 표 비중을 현행 ‘60 대 1’에서 ‘20 대 1’ 미만으로 줄였다. 대의원 권한을 대폭 줄이고, 이 대표의 강성 지지 성향을 보이는 권리당원 힘을 키워줬다. 이를 두고 비명계에선 이 대표가 총선에 이어 8월 전당대회서도 ‘친명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 아니냐며 거세게 반발했다. 정가에선 이재명 대표가 다시 전당대회에 출마할 것이란 게 중론이다.
‘이재명 대세론’도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이재명 대표는 2017년과 2022년 대선에 두 차례 도전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이재명으로 정권 교체할 수 있겠냐는 ‘이재명 불가론’은 여전히 민주당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피로감도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국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비명계 인사들이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가 8월 전대의 변수다.
실제 이낙연 새로운미래 공동대표는 문재인 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내며 압도적인 차기 대권 주자로 꼽혔으나, 이재명 대표에게 대권 후보 자리를 내줬다. 당시 역대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운 이낙연 대표는 지지도 선두 자리를 줄곧 지키며 ‘어대후’(어차피 대통령 후보는 이낙연)라는 말을 탄생시켰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민주당 180석 확보에 핵심 역할을 하면서 ‘대세론’을 이어갔다. 이후 고심 끝에 당권까지 도전하며 당대표로 선출됐다. 하지만 이낙연 대세론 장기화는 피로감으로 이어졌고, 당시 경기지사였던 이재명 대표에게 차기 대권 주자 지지율 1위 자리를 내주게 됐다.
이들 이외에 새로운 누군가가 유력 대권주자로 올라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앞서 한국갤럽 차기 대통령감 여론조사에서 ‘없음·모름·무응답’은 38%에 달했다. 새로운 인물이 떠오를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이 충분하단 뜻이다. ‘변방의 장수’에 불과했던 이재명 대표도 2016년 총선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촛불 정국을 발판 삼아 중앙으로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김동연 경기지사, 이탄희 민주당 의원 등이 야권 잠룡으로 거론된다. ‘노무현의 오른팔’ 이광재 경기 성남시 분당갑 민주당 후보가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을 누르고 당선된다면 정치적 체급을 올릴 수 있다. 민주당 한 재선 의원은 “이재명 대표가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친명 체제 구축을 위해 공천을 밀어붙였던 것도 총선 후를 염두에 뒀기 때문 아니겠느냐”면서 “지금으로선 이재명 체제가 공고해 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대선까지 남아 있는 시간은 많다”고 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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