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 초반 리그 1위 등극 ‘10년 만의 사건’…팬들은 입장권 매진으로 화답
#개막 전부터 전망 밝았다
올해 한화 주장을 맡은 채은성은 3월 22일 KBO리그 개막 미디어데이에서 "올 시즌 4위 안에 들지 못하면 고참들 모두 태안 앞바다에 뛰어들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임할 것"이라고 진담 반 농담 반의 출사표를 던졌다. 안 그래도 5강 재진입을 목표로 삼았던 한화에 류현진이 가세하면서 선수들의 포스트시즌행 의지가 더 커졌다는 의미다. 한화는 지난해까지 만년 꼴찌 후보였지만, 류현진이 중심을 잡은 올해는 개막 전부터 "포스트시즌 진출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장밋빛 전망이 나왔다.
한화 단장 출신이자 영구결번(23번) 레전드인 정민철 해설위원은 "올 시즌 한화 순위를 4~5위로 예상한다. LG 트윈스, KT 위즈, KIA 타이거즈, 두산 베어스와 함께 5강에 들 것 같다"며 "지난 시즌을 승률 0.420으로 끝냈는데 올해 공격력이 많이 증대됐다. 안치홍이 가세했고, 페라자도 헛방이 아닌 선수로 보였다. 여기에 류현진이 합류하면서 류현진-문동주-김민우로 이어지는 국내 선발진이 아주 잘 갖춰졌다. 외국인 투수 두 명이 평균 이상만 해주면 충분히 5강 전력이라고 본다"고 짚었다.
역시 한화에 영구결번(52번)을 남긴 김태균 해설위원은 더 나아가 "한화는 올 시즌 우승도 가능해 보인다. 류현진이 돌아오기도 했지만, 이미 리빌딩이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했다. 김 위원은 "그동안 젊은 유망주들에게 공을 들였고, 그 선수들이 경험도 많이 쌓아서 이제 전성기로 올라갈 시점이다. 이 상태에서 류현진이 왔기 때문에 엄청난 파괴력이 있을 것 같다"며 "특히 선발투수 5명이 10개 구단 중 가장 안정된 것 같다. 모두 10승 이상 할 수 있는 투수다. 올해 1순위 신인 황준서도 정말 좋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타 구단 출신 해설위원들의 전망도 다르지 않았다. LG 감독 출신인 류지현 해설위원은 "류현진과 문동주가 부상 없이 25~26경기씩 소화한다면 한화는 포스트시즌 진출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했다. 또 "마운드도 강해졌지만, 타선에도 경험이 많은 김강민과 안치홍이 합류했다. 이들의 시너지 효과가 대단할 것"이라고 했다. 투수 출신인 이동현 해설위원도 "한화가 그동안 뛰어난 유망주를 많이 뽑았다. 그러면서 투타 전력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이제 류현진까지 가세하면서 5강 이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고 내다봤다. 외야수 출신인 이택근 해설위원도 "한화의 가을야구 진출은 확실해 보인다"고 확신했다.
#정말 '선발왕국'이 됐다
실제로 한화는 개막하자마자 선발투수들이 잇단 호투로 승리 릴레이를 펼쳐 화제를 모았다. 한화는 한때 '현진 이글스'라는 별명으로 불렸을 만큼 류현진 의존도가 높았던 팀이라서 더 그랬다. 당시엔 류현진이 등판하는 날만 이길 수 있다는 의미로 '류패패패패'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류현진 외에 믿을 만한 선발투수가 없었던 '암흑기'의 현실을 대변하는 단어였다.
올해의 한화는 그렇지 않았다. 개막 후 치른 8경기에 선발투수 6명이 등판했는데, 그중 유일하게 승리를 따내지 못한 투수가 아이러니하게도 류현진이었다. 외국인 선발 리카르도 산체스(26)와 펠릭스 페냐(34), 국내 선발 김민우(28)·문동주(20)·황준서(18)가 각각 자신이 등판한 경기에서 선발승을 따냈다. 한화는 이들의 활약을 발판 삼아 개막전 1패 후 7연승을 달렸다. 늘 최하위권을 맴돌던 한화에 '선발투수 왕국'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선발승 릴레이의 스타트를 끊은 건 한화에서 세 번째 시즌을 맞이한 외국인 투수 페냐였다. 3월 24일 잠실 LG전에 2선발로 출격한 페냐는 지난해 통합우승을 차지한 LG 강타선을 6과 3분의 2이닝 동안 6피안타 1볼넷 4탈삼진 2실점으로 꽁꽁 묶었다. 올 시즌 한화의 첫 번째 승리였다.
인천으로 자리를 옮겨 치른 3월 26~28일 SSG 랜더스와 3연전에서는 김민우-산체스-문동주가 차례로 시즌 첫 승리를 신고했다. 김민우는 첫 경기에서 5이닝 2피안타 3볼넷 6탈삼진 무실점으로 역투해 2021년 14승 투수의 부활을 예감케 했다. 다음 날엔 산체스가 5와 3분의 2이닝 3피안타 1볼넷 8탈삼진 1실점으로 잘 던져 시범경기 때 부진과 걱정을 완벽하게 씻어냈다. 지난해 신인왕 문동주는 3연전 마지막 경기에서 5이닝 6피안타 2볼넷 5탈삼진 2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됐다. 한화는 이날 승리로 6524일 만의 인천 원정 3연전 스윕을 기록했다. 주자가 없을 때는 힘을 빼고 던지다가 위기 때는 최고 시속 158㎞ 강속구를 뿌리는 문동주의 완급 조절에 SSG 타선은 맥을 못 췄다.
이뿐 아니다. 올해 신인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한 '수퍼 루키' 황준서는 3월 31일 대전 KT전에서 승리투수가 되면서 주말 3연전까지 싹쓸이하고 7연승을 이어가는 '화룡점정' 역할을 했다. 황준서는 원래 선발 등판 예정이던 투수 김민우가 가벼운 등 통증으로 로테이션을 거르면서 이날 예상보다 빨리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이제 갓 고교를 졸업한 그는 만원 관중 앞에서 주눅들기는커녕 더 씩씩하게 공을 던졌다. 실점 위기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KT 베테랑 타자들과 정면 승부를 했다. "웬만한 팀 선배 투수들보다 배짱이 좋다"던 최원호 감독의 평가 그대로였다. 황준서는 5이닝 3피안타 5탈삼진 1실점으로 첫 승리를 거둬 역대 10번째 고졸 신인 데뷔전 승리 기록을 남겼다. 한화 소속 선수로는 2006년의 류현진(4월12일 잠실 LG전) 이후 18년 만이다.
KBO리그 최정상급 라인업을 구축한 한화 선발진은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그들의 앞과 뒤에 우뚝 서 있는 류현진은 그들의 무게감을 더 묵직하게 만드는 존재다. 프로 3년 차가 된 문동주는 "류현진 선배님이 오신 뒤 대화를 많이 나눴고, 많은 것을 배웠다. 비밀이라 공개할 순 없지만, 정말 도움이 되는 조언도 들었다"며 "산체스, 페냐와도 지난 1년을 함께 보내면서 더 친해지고 루틴도 배우게 됐다. 서로에게 긍정적인 효과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막내 황준서도 "동주 형이 경기 전 '나는 데뷔전에서 3분의 2이닝밖에 못 던졌다. 넌 1이닝만 던져도 나보다 훨씬 나은 것'이라 말해줘서 긴장이 풀렸다"며 "선배님들이 이어온 좋은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 열심히 던졌다. 앞으로 류현진 선배님께 많이 배워서 (한화의 왼손 에이스) 계보를 이어갈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한화가 1위에 올랐다
연승 행진의 열매는 달콤했다. 한화는 6연승이 끝난 3월 30일부터 순위표 맨 윗자리로 치고 나갔고, 7연승으로 그 자리를 거듭 지켜냈다. 한화가 시즌 도중 1위에 오른 건 2014년 3월 30일 이후 정확히 10년 만의 '사건'이다. 심지어 개막 후 7경기 이상 치른 시점에 1위에 이름을 올린 것은 2009년 4월 14일 이후 15년 만이다. 한화가 두 번의 3연전(주중 SSG전, 주말 KT전)을 연속으로 스윕한 것 역시 18년 만에 나온 성과다. 이전까지는 2006년 5월 12~14일(대전 롯데 자이언츠전), 16~18일(인천 SK 와이번스전)이 마지막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화가 개막 8경기에서 7승을 거둔 건 1992년(7승 1패) 이후 무려 32년 만의 기록이다. 매 시즌 초반 순위 싸움에서 밀리면서 어려움을 겪던 한화가 올해는 시작부터 선두 경쟁에 '참전'하는 모양새다.
그러자 대전의 야구 팬들도 뜨거운 열기로 화답했다. 홈 개막 3연전이었던 KT와의 3월 29~31일 경기가 모두 매진됐다. 한화는 "인터넷 예매분은 일찌감치 다 팔렸고, 시야 제한 등의 문제로 사전 고지가 필요한 현장 판매분만 경기당 100장가량 남아 있었다. 이 잔여분도 판매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두 동났다"고 전했다. 한화의 홈 개막 3연전 매진은 구단 창단 후 최초 기록이다. 한화 관계자는 "대전 홈 경기 3연전 시리즈 매진도 2018년 6월 15일~6월 17일 두산 베어스전 이후 2114일 만"이라고 덧붙였다.
주말에만 야구장이 문전성시를 이룬 것도 아니다. 4월 2일 롯데 자이언츠와 홈 3연전 첫 경기 입장권 1만 2000장도 경기 시작 1시간 39분 만인 오후 8시 9분에 모두 팔렸다. 한화의 평일 야간 경기가 매진된 건 화요일이었던 2010년 3월 30일 대전 롯데전 이후 5117일 만이었다. 심지어 그 경기는 그 시즌 홈 개막전이라 팬들의 주목도가 높았고, 한화 류현진과 롯데 송승준이 선발 맞대결을 벌였다. 그 후 14년 만에 대전구장이 평일 밤에도 가득찬 것이다.
한화는 이날 롯데에 0-1로 일격을 당해 8연승 도전에 실패했지만, 1위 자리는 유지했다. 때마침 3일 경기를 앞두고 대전에 폭우가 내리면서 연승 기간의 피로도를 달래고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할 시간도 벌었다. 그렇게 하루 만에 재개된 4월 4일 롯데전은 또 다시 만원 관중의 물결로 뒤덮였다. 이번엔 평일 야간경기인데도 경기 시작 30분 전에 전 좌석 입장권이 모두 팔려나갔다. KT와의 홈 개막 3연전과 4월 2일 롯데전에 이어 구단 사상 최초의 개막 5경기 연속 매진을 달성한 것이다. 지난 시즌 최종전이었던 10월 16일 롯데전까지 포함하면 최근 6경기 연속 매진 행진을 이어가면서 종전 대전구장 최다 연속 매진(2015년 4월 25일~5월 5일)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한화는 이날 롯데에 6-5로 역전승을 거둬 연승이 끊긴 후유증 없이 곧바로 반등에 성공했다. 올 시즌 첫 10경기를 8승 2패로 마쳐 선두 자리도 유지했다. 1986년 빙그레라는 구단명으로 KBO리그에 뛰어든 한화가 개막전 포함 10경기에서 8승을 거둔 건 올해가 처음이다. 종전 개막 10경기 최고 성적은 1992년 작성한 7승 1무 2패였고, 한화가 유일하게 우승한 1999년에도 개막 후 10경기 성적은 7승 3패로 올해보다 낮았다.
선발 문동주가 5이닝 4실점으로 다소 고전했지만, 끝내 승부를 뒤집은 뒤 근소한 리드를 지켜냈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었다. 1-4로 뒤진 4회 노시환이 좌중간 솔로홈런을 터트렸고, 5회 1사 1·3루에서 페라자가 4-4 동점을 만드는 3점 홈런을 날렸다. 주장 채은성은 7회 역전 결승 적시 2루타를 날렸고, '남우주현상'이라는 별명을 얻은 불펜 주현상은 또 다시 무실점 역투로 승리의 징검다리를 놓았다. 한화 타자들이 양손으로 독수리 날개를 펄럭이는 안타 세리머니를 할 때마다 만원 관중의 열광적인 함성이 쏟아졌다.
#한화의 흥행 열기는 계속된다
이쯤 되면 한화의 한 시즌 역대 최다 매진 기록에도 도전해볼 만하다. 한화는 11년 만의 가을야구 진출 꿈을 이뤘던 2018년 총 20번의 홈 경기 매진을 이뤄내 자체 최다 기록을 세웠다. 그해 총 관중 73만 4110명을 모아 유일하게 경기 평균 관중 1만 명(1만 196명)을 넘기기도 했다. 한화가 상위권 성적을 유지한다면, 2018년의 기록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크다. 온 도시가 한화를 향한 열기로 들끓고 있어서 더 그렇다. 대전에서 택시기사로 일하는 김경수 씨는 "야구할 시간만 되면 그 일대가 교통 지옥이 된다. 나도 야구를 좋아하는데, 주변에서도 만날 '살맛 난다'며 하루 종일 야구 얘기로 꽃을 피운다"며 "이 기세라면 야구장 관중석이 10만 석이라도 다 채울 거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특히 대전으로 돌아온 류현진의 인기는 그라운드 밖에서도 한화의 돌풍에 불을 붙이고 있다. 한화는 개막 후 치른 홈 5경기 기간 동안 류현진 관련 상품 매출로만 벌써 4억 원을 훌쩍 넘는 수입을 올렸다. 한화는 3월 30일부터 4월 2일까지 대전구장 외야에 류현진의 복귀를 기념하는 '몬스터 이즈 백(Monster Is Back)' 팝업 스토어를 운영했다. 한화 관계자는 "오픈 기간 동안 3000여 명이 현장을 방문했고, '몬스터 콜렉션' 상품은 2억여 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밝혔다.
류현진의 유니폼을 찾는 팬들의 수요도 높다. 올해 구단 전체 유니폼 판매량 중 70%가 류현진의 유니폼이라는 후문이다. 한화 관계자는 "홈 개막 3연전 때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간 류현진 전용 어센틱 유니폼 판매 부스를 마련했는데, 류현진 마킹 유니폼이 현장에서만 2억 원 이상 팔렸다"고 전했다.
'몬스터 트럭'이라는 새로운 시도도 큰 호응을 얻었다. 류현진 관련 이미지로 디자인한 트럭이 지난 주말 갤러리아 타임월드, 근현대사 전시관 등 대전 시내 주요 장소를 활보하면서 류현진 리미티드 티셔츠를 무료로 배포했다. 한화 관계자는 "게릴라 팝업 공지 후 준비된 티셔츠가 30분 만에 동났을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고 귀띔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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