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콤처럼 쉽고 빠르게 소비하는 시청자 행태 정확히 읽었지만 한국 대표 작가의 완성도로는 헐거워
박지은 작가는 이름값을 증명했다. 4월 7일 방송된 ‘눈물의 여왕’ 10회는 전국 시청률 19%를 기록했다. 이제 tvN 드라마 중 ‘눈물의 여왕’보다 시청률이 앞선 작품은 ‘도깨비’와 ‘사랑의 불시착’뿐이다. 현 추세라면 두 드라마를 넘어 역대 tvN 최고 흥행작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높은 인기만큼 혹평도 거세다. 기존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에서 본 듯한 장면을 모아 놓은 ‘클리셰 덩어리’라는 질타가 이어진다. 게다가 개연성 없는 전개에 대해 “실망했다”는 반응도 적잖다.
찬찬히 뜯어보자. 배우 김수현, 김지원이 주연을 맡은 ‘눈물의 여왕’은 퀸즈그룹을 운영하는 재벌가 3세인 홍해인과 시골에서 나고 자란 서울대 법대 출신 백현우가 주인공이다. 둘은 부부고 결혼 3년 차에 이혼의 위기를 맞는다. 백현우는 이혼을 결심하지만 홍해인이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아내를 간호하겠다는 애틋한 마음은 아니다. 재벌가를 상대로 위험한 이혼 소송을 벌이는 것보다는 사별을 통해 자연스럽게 헤어지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다.
재벌가를 배경으로 한 신데렐라 스토리, 점차 상태가 악화되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주인공 등 익숙한 소재가 범람한다. 물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소재가 식상하다고 마냥 탓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개의 허술함은 민망한 수준이다. 홍해인이 사는 재벌가는 허점투성이다. 누군가 몰래 철조망을 뜯고 접근해도, 도청기와 감시카메라를 설치해도 모른다. 게다가 8회에서는 모슬희와 윤은성 모자의 계략에 속아 그룹의 운영권까지 빼앗긴다.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고 했는데 내로라하는 재벌이 몰락하는데 채 3일이 걸리지 않는다. 게다가 그 재벌가는 평소 무시하던 사위인 백현우의 시골집으로 향한다.
물론 이 과정은 코믹하다. 극적인 입장 전환과 이런 상황을 경험하며 보다 인간적으로 변모해가는 재벌가 식구들의 모습을 통해 ‘눈물의 여왕’이 보여주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철저히 판타지다. 하지만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헛웃음이 나올 수준이다. 게다가 남은 삶이 3개월밖에 안 된다는 홍해인의 외모는 지나치게 빛이 난다. 물론 간간이 망각의 단계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도무지 아픈 사람이라 보기 어렵다.
차별화된 지점도 있다. 그동안 드라마는 재벌가에 들어간 ‘며느리’의 이야기에 집착했다. 하지만 ‘눈물의 여왕’은 재벌가에 입성한 ‘사위’에 초점을 맞춘다. 남부러울 것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학벌까지 갖춘 사위들이 제사상을 차리면서 푸념을 늘어놓는 장면은 시집살이를 하는 며느리라는 설정에서 벗어난 멋진 전복이다.
“홍 씨 조상 제사인데 준비하는 사람은 김 씨, 유 씨, 조 씨, 백 씨다. 뼈 빠지게 전 부친 건 우린데, 절하는 건 자기들끼리”라고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담배 연기가 손가락에 밸까 봐 나무젓가락으로 담배꽁초를 잡고 있는 모습도 흥미롭다.
이런 ‘눈물의 여왕’을 두고,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박지은 작가가 펼쳐놓는 세계관에 동참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이들이 있는 반면, 작품성 측면에서 앞선 드라마보다 못하다는 지적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눈물의 여왕’이 박 작가가 빚어놓은 거대한 판타지 세계관의 붕괴라는 의견과 강화라는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모양새다.
이런 반응은 최근 작품을 대하는 대중의 소비 방식 변화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OTT 플랫폼이 생기며 대중의 조바심은 더 강해졌다. 빨리 보기, 건너뛰며 보기 등의 시청 행태가 비일비재해지면서 긴 호흡의 작품을 견디지 못하는 이들이 늘었다. 이런 시청 행태를 보이는 이들은 작품의 디테일보다는 전체 줄거리와 비주얼을 중시한다. 스마트폰으로 콘텐츠를 즐기며, 잠시라도 지루하면 채널을 돌려버리는 행태와 맞물린다. 이런 이들에게 끊임없는 에피소드의 나열인 ‘눈물의 여왕’은 쉽고 빠르게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인 셈이다. 마치 시트콤처럼 자잘한 사건들이 이어지고, ‘농담 따먹기’식 대화가 거듭된다.
이런 드라마의 특징은 진입이 쉽다는 것이다. 1회부터 줄곧 내러티브를 따라가지 않아도 된다. 전체 배경과 각 캐릭터만 알고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에 동참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박 작가는 이런 요즘 시청자들의 소비 행태를 정확히 읽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드라마 작가인 박 작가가 내놓은 작품의 완성도가 이처럼 헐거운 것은 아쉽다. 시청률이라는 달콤한 성과가 있다손 치더라도, 작품의 개연성과 완성도 면에서는 호평을 얻기 힘든 탓이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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