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층 ‘정권심판’ 정서 일관됐으나 정부·여당 오판…‘범야권 200석’ 위기감에 막판 ‘샤이보수’ 역결집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개표 결과 더불어민주당이 지역구 161석, 더불어민주연합이 비례대표 14석을 얻어 총 175석으로 단독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야당이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한 것은 한국 정치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은 지역구 90석에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18석으로 도합 108석을 확보했다. 이른바 ‘탄핵·개헌저지선(100석)’을 지켜내는 데 그쳤다.
조국혁신당은 비례대표로만 12석을 가져갔고, 개혁신당은 지역구 1석·비례대표 2석 총 3석을 차지했다. 새로운미래와 진보당은 지역구에서 각각 1석을 얻었다.
이로써 민주당과 민주연합, 조국혁신당·진보당 등을 더하면 190석에 육박하는 ‘거야’가 탄생하게 됐다. 윤석열 정부 3년 차 중간평가에서 국민들이 투표를 통해 심판을 내린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지난 1년여 동안 공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4월 총선 성격에 대해 ‘정권지원론’과 ‘정권심판론’은 치열하게 맞붙었다. 그러던 중 지난 2월 중순부터 3월 초까지 나온 총선 여론조사에서는 ‘정권 지원론’이 살짝 더 높은 결과로 나오기도 했다. 이에 맞춰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율도 상승세를 타는 양상을 보였다. 윤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가 40% 중반을 기록했고, 국민의힘 지지율이 민주당에 두 자릿수 격차로 앞선 수치가 나왔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공천 과정에서 친명계와 비명계가 내홍에 휩싸인 게 악재로 작용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여권 안팎에서는 국민의힘이 과반 의석을 넘어 180석에 가까운 압승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흘러나왔다.
이러한 분위기에 고무돼 대통령실이 ‘이종섭 당시 호주대사 도피 출국’ ‘회칼테러 발언 황상무 당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거취 시간 끌기’ 등 민심에 반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오판이었다는 신호는 여러 곳에서 감지됐다.
야권 한 관계자는 “당시는 국민의힘이 총선후보 적합도 조사를 진행해 보수층이 과표집된 여론조사였다. 중도층은 지난 1년여 동안 여론조사에서 ‘정권심판론’ 정서가 바뀐 적이 없다. 보수 과표집 됐을 때도 중도층에서는 ‘정권심판’ 여론이 더 높았다. 이런 세부내용을 분석하지 않고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도취감에 집권여당이 국민정서에 반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꼬집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파 875원이면 합리적 가격” 발언도 ‘정권심판론’에 불을 붙였다는 분석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여권에서는 총선을 ‘이재명·조국-한동훈’ 대결구도로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윤 대통령 ‘대파’ 발언이 나오면서, 윤석열 정부의 민생 관리 실책에 따른 심판 여론이 굳어졌다”고 분석했다.
한국갤럽이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자체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에 58%가 ‘잘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잘하고 있다’ 38%). 이어 대통령 직무수행 부정 평가자들에게 선택의 이유를 묻자 ‘경제·민생·물가’가 23%로 1위에 올랐다(여론조사의 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역대 총선 최고치인 사전투표율 31.3%를 두고도 여야는 상반된 해석을 내놨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어제오늘 사전투표율이 올라갔는데 왜 올랐겠는가”라며 “우리가 얼마나 범죄자에 대해 화가 났는지 보여주기 위해 여러분이 사전투표장에 나갔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강선우 대변인은 “윤석열 정권 출범 2년 만에 대한민국은 정치·경제·사회·복지·문화 모든 영역에서 뒷걸음질쳤다”며 “하루라도 빨리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성난 민심을 확인했다”고 평가했다.
지역별 사전투표율을 보면 민주당에 유리한 지역인 전남(41.2%) 전북(38.5%) 광주(38.0%) 세종시(36.8%) 등이 높은 수치를 보였다. 야권 성향의 유권자들이 사전투표에 적극 임했다고 볼 수 있다.
여권 내에서는 선거운동 막판 ‘범야권 200석’ 가능성에 위기감이 감지됐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4월 8일 선대위 회의에서 “이대로 가면 가까스로 지킨 대한민국이 무너질 수 있다”며 “개헌 저지선과 탄핵 저지선을 지켜 달라. 야당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의석을 지켜 달라”고 읍소했다.
‘거대 야당 폭주론’을 부각시키며 ‘샤이 보수’를 투표장에 불러내는 전략은 효과를 봤다. 부산·울산·경남(PK)에서 여권 지지자들이 역결집한 모양새를 보였다. 특히 부산의 경우 민주당은 18석 중 8석을 가져오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총선 결과 1석을 얻는 데 그쳤다. 지난 21대 총선 3석보다도 줄었다.
사전투표율에 이어 최종 투표율은 67.0%로, 1992년 14대 총선(71.9%) 이후 32년 만에 총선 가장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하지만 예상치보다 2~4%포인트(p)가량 낮아, 이를 두고도 해석이 분분했다. 앞서 야권 관계자는 “선거 막판 보수 지지층은 역결집에 성공했다. 반면 중도층은 높은 사전투표율을 보고 이완돼 투표장에 많이 나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에서 집토끼 외에 중도층에 대한 공략이 더 필요했다고 본다”고 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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