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보증인에게 회수” 의결, 당시 이동걸 산은 회장에 보고…김영모 전 사장 “배임 의심은 매우 잘못”
#17년째 못 받은 대출금
권익위와 금감원은 현재 KDB캐피탈 등 15개 금융기관의 과거 부패 및 배임 여부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들 금융기관은 서울 동작구 상도동 산65-74 일원에 들어선 771가구 규모 '상도 푸르지오 클라베뉴' 개발이 시작된 2007년, 시행사인 '세아주택'에 총 1600억 원을 빌려줬으나 원리금 상당액을 아직 거두지 않았다(관련기사 [단독] 800억 회수 안하나 못하나…'상도동 재개발지' 금감원 타깃 된 까닭).
이번 조사는 KDB캐피탈 등이 대출금을 왜 돌려받지 않고 있는지 확인하는 게 핵심이다. 세아주택은 대출을 받고 2년 뒤 세계금융위기 여파 등으로 파산했다. 그러나 2014년 '수의계약'을 통해 후속 사업자로 등장한 '포스트개발'의 최대주주 2명이 전직 세아주택 핵심 임원들로 밝혀졌다. 이에 두 회사가 실은 같은 곳이라는 논란이 불거지며 대주단이 다시 채권 회수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었다.
특히 이번 의혹은 전 KDB캐피탈 감사위원이 직접 제기해 더욱 주목된다. 그는 권익위와 금감원에 '세아주택이 대출을 안 갚으려고 간판만 포스트개발로 바꿨지만, KDB캐피탈은 특별한 이유 없이 회수를 미뤄 왔다'는 취지로 신고했다. 내용이 사실이라면 KDB캐피탈 등은 배임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대주단 간사이기도 했던 KDB캐피탈은 KDB산업은행(산은)이 99% 지분을 보유한 곳으로 사실상 혈세가 투입된 기관이다.
#KDB캐피탈, 세아주택-포스트개발 특수관계 알았다
일요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권익위와 금감원의 조사는 다소 어렵게 전개되고 있다. 금융기관의 배임 여부 등과 직결된 만큼 아예 수사기관이 다룰 사안이라는 의견이 있었다고 전해졌다. 또 세아주택과 포스트개발 관계자들이 아직도 여러 소송을 진행하고 있어 법적 판단 이전에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KDB캐피탈 등이 대출금 회수에 적극 나서지 않는 구체적 배경은 살펴봐야 한다는 요구도 만만치 않았다. KDB캐피탈이 세아주택 전 대표 A 씨에게 대출금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여전하다는 이유다.
A 씨가 세아주택 대출 당시 '연대보증채무자'였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는 포스트개발 최대주주 가운데 한 명으로서 개발이익의 49.5%를 나눠 받기로 약정했다. 포스트개발의 상도 푸르지오 클라베뉴 개발이익은 약 4000억 원으로 추산된다. 따라서 A 씨는 약 2000억 원 수익이 예상된다.
즉, 대출 보증을 선 A 씨가 돈이 있는 만큼 KDB캐피탈은 그에게 상환을 요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KDB캐피탈은 기본 이자율 8.5%, 연체이자율 25%로 800억 원을 빌려줬다. KDB캐피탈이 이제라도 돌려받아야 할 돈은 이자 포함 1000억 원이 넘는다.
특이한 부분은 KDB캐피탈이 세아주택과 포스트개발의 특수관계, 그리고 A 씨에게 돈을 회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진즉에 알고 있었는데도 이행을 미뤄왔다는 점이다.
해당 재개발 사업이 첫 삽을 뜬 2015년에 검찰은 지역사회 및 개발업자들 사이의 잇단 고발을 접수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이 KDB캐피탈에 '포스트개발이 수의계약을 통해 시행사로 선정된 이유' 등을 확인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서울동부지검의 당시 수사기록 일부를 보면, 검찰은 KDB캐피탈 여신 담당 한 간부에게 '포스트개발은 세아주택 전 대표 A 씨가 지분 약 50%를 보유했는데, 이런 곳과 왜 또 다시 수의계약을 맺었는지'를 물었다. 이에 해당 간부는 "그때는 몰랐었다. 먼저 알았더라면 수의계약은 힘들었을 듯싶다"고 대답했다.
이때 검찰은 '세아주택의 대출금 탕감을 논의한 적이 있는지'도 물었다. 그러자 KDB캐피탈 간부는 "그런 사실 전혀 없다. 대출금 탕감은 대표이사의 배임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도 "원금 잔액은 세아주택 전 대표 A 씨 등에 채권 행사를 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이 밖에 KDB캐피탈의 감사위원회 역시 A 씨한테서 대출금을 받아야 한다고 의결했다. 그의 채권 소멸시효를 앞둔 2019년 5월 12일 KDB캐피탈 감사위는 '세아주택 및 연대보증 채무자(세아주택 대표 A 씨) 시효 연장'을 일상감사 안건으로 채택했다. 이에 따라 A 씨의 채권 소멸시효는 2024년 5월까지 연장됐다.
KDB캐피탈 이사회는 세아주택과 포스트개발의 특수관계를 알고 있었다. 2019년 6월 25일 이사회에서 한 이사가 "포스트개발 대표가 세아주택의 전 임원이었다"고 지적하자, 또 다른 감사에게서 "알고 있다"는 대답이 나왔다. 심지어 이 사실을 밝힌 감사위원에게는 "대단한 일 하셨다"는 칭찬도 건넸다. 해당 이사회는 포스트개발에 관한 별도 안건을 논의한 자리로, 김영모 당시 KDB캐피탈 사장과 전무·이사 등 총 8명이 참석해 있었다.
#규정은 '즉시 가압류', 무리한 추진 안 된다는 의견 왜?
본사인 산은까지 사안 보고가 이뤄졌다. 2019년 5월 21일 산은은 KDB캐피탈에 보낸 '경영현황 점검결과 통보'에서 포스트개발의 수의계약을 둘러싼 일각의 문제 제기를 소개하며 "세아주택과 포스트개발이 주주관계"라는 내용을 담았다.
결국, 세아주택과 포스트개발의 특수 관계 및 A 씨를 통한 대출금 회수는 KDB캐피탈은 물론 산은에서도 최소 2015년부터 꾸준히 거론돼 온 셈이다. 그럼에도 이행은 약 10년째 지지부진한 상태다. KDB캐피탈 내부규정 제9조는 "채무관계자의 재산 조사를 실시해 실효성 있는 재산을 발견하면, '즉시' 가압류 등의 법적 절차를 취한다"고 명시했다.
물론 KDB캐피탈이 채권 회수 등 절차를 너무 무리하게 추진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존재했다. 이동걸 전 산은 회장이 대표적이다. 이 전 회장이 2019년 5월 23일 KDB캐피탈의 한 감사위원과 대화한 녹취록을 보면, 그는 "상도동 건은 원칙대로 하면 된다"며 "법률적 제약 등 여러 걸리는 사안이 있다고도 들었다"고 격려했다.
이 전 회장은 그러면서도 "마치 범죄조직 집단의 뭔가가 있다고 전제하면 잘못된 일"이라며 "감사위원님에 대한 보고가 많이 들어와 제가 (감사위원 선임·해임 관련) 주주총회를 열자고도 했었다"고 밝혔다. 또 "청와대가 XX하든, 금융위가 XX하든, 나는 주총을 소집할 수 있다"며 "한 식구라는 마음을 심어 달라"고 당부했다.
일요신문은 당시 KDB캐피탈 관계자들을 접촉했지만 별다른 답변은 없었다. 김영모 전 KDB캐피탈 사장은 "워낙 오래되고 쟁점도 복잡한 사건이라 자세한 기억이 안 난다"며 "다만 모든 결정은 법리 검토 및 대주단과의 협의대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이어 "적어도 채권 회수를 포기하자는 결정은 없었다"면서 "회사 차원의 배임 등이 있었다는 의심은 매우 잘못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일요신문은 이사회에서 '대단한 일 하셨다'고 말한 KDB캐피탈 전 이사에게도 연락을 취했으나 "잘 모르는 일"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KDB캐피탈 관계자는 "원칙과 절차에 따라 아직 사안을 관리 중"이라고 전했다. A 씨는 연락이 전혀 닿지 않았다.
한편 KDB캐피탈과 달리 예금보험공사는 대출금 회수 작업에 한창이다. 세아주택에 돈을 빌려줬다가 파산한 솔로몬저축은행·경기저축은행·진흥저축은행 3곳의 파산관재인으로서 세아주택 주식 약 190억 원어치 가압류를 신청해 법원 인용까지 받아내 현재 본안 소송을 진행 중이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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