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관리에서 우위 확보
꼭 1년 전 같은 장소에서 열린 결승에서 이원영 9단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던 신진서는 이번 우승으로 맥심커피배 2연패와 함께 대회 통산 세 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1국과는 반대로 돌을 바꿔 흑으로 출발한 신진서와 김명훈은 중반까지 유불리를 점치기 어려운 접전을 이어나갔다. 김명훈은 초반 쌓아둔 두터움을 바탕으로 강공을 펼치면서 주도권을 쥐었지만, 공세를 취하던 중 느슨한 수들이 잇달아 등장하면서 균형을 잃었다. 하지만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생각 시간이 부족한 초속기 대국이었던 터라 신진서에게도 두어 차례 실수가 등장했다.
“아마 인공지능(AI)이 보기에는 좋지 않은 내용이었을 것이다. 두면서도 확신이 없었던 장면이 있었는데 시간이 부족한 속기전이고 워낙 어려웠던 장면이 이어져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아 이길 수 있었다”고 신진서가 돌아볼 정도였다.
신진서보다 더 시간에 쫓긴 김명훈은 역전이 유력했던 장면에서 이기는 수순을 찾아내지 못했고, 결국 시간연장책으로 둔 수들의 실책과 끝내기에서 정밀함을 잃으면서 큰 산을 넘을 기회를 잃었다.
이 바둑을 현장에서 지켜본 한 프로 관계자는 “최근 제한시간 방식으로 속속 채택하고 있는 시간누적제의 피셔 방식은 20~30초 이내 초읽기에 몰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 대국에서 김명훈 9단은 110수 무렵에서 30초 이내로 쫓겼고, 마지막까지 시간을 누적시키지 못해 결국 시간 부족으로 자멸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신진서 9단은 마지막까지 10분 정도의 여유 시간을 유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예전 한 인터뷰에서 신 9단이 ‘피셔 방식에선 시간에 쫓기지 않는 것이 제일 큰 과제’라고 했었는데 오늘 대국에서 그 말을 지켜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마 노력의 결과일 것”이라고 평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강자를 상대로 시간을 쓰지 않고 버텨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게 가능하다면 실력이 대등하다는 것이니 김명훈 9단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며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8관왕 유지한 신진서
맥심커피배 타이틀을 지킨 신진서는 세계대회인 응씨배와 LG배, 국내대회 명인전, 용성전, 쏘팔코사놀 최고기사결정전, KBS바둑왕전, YK건기배 등 8관왕을 유지했다. 또한 개인 통산 37번째 타이틀을 획득한 신진서는 조훈현 161회, 이창호 141회, 이세돌 50회에 이어 역대 네 번째 우승 횟수 기록을 달성했다.
신진서는 우승 후 가진 인터뷰에서 “입신(入神) 중에 최고의 입신을 가리는 맥심커피배에서 연패(連覇)를 했기 때문에 굉장히 뿌듯하다. 특히 오늘 바둑은 어려웠기 때문에 더욱 기쁜 것 같다”는 소감과 함께 “올해 시작을 기분 좋게 출발했지만(농심배 우승), 최근 있었던 세계대회에선 졌기 때문에 다시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올해 목표를 전했다.
반면 2015년 12월 렛츠런파크배 결승3번기에서 신진서에 패한 이후 8년 4개월 만에 설욕을 노렸던 김명훈은 상대전적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동서식품이 후원하는 제25기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의 우승상금은 5000만 원, 준우승 상금은 2000만 원. 제한시간은 시간누적방식으로 각자 10분에 추가시간 30초가 주어졌다.
[승부처 돋보기] 제25기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 결승3번기 제2국
흑 신진서 9단 백 김명훈 9단, 235수끝, 흑 불계승
#장면도1(백의 다음 한 수는?)
내내 불리하던 바둑. 하지만 우변에서 흑▲ 두 점을 선수로 품에 넣으면서 백이 따라잡은 장면이다. 여기서 초읽기에 쫓긴 김명훈은 백1로 찌르고(이것도 자충이라 악수다) 3·5로 막았는데 이것이 첫 번째 찾아온 기회를 날린 수. 흑이 6·8로 가운데서 8집쯤 내고 살아버리니 낙이 없는 바둑이 돼버렸다. 그렇다면 백은 어떻게 두었어야 했을까.
#정해도1(AI의 추천수)
지금 장면에서 상변은 크지 않다. 백1이 AI의 추천수. 중앙 흑이 미생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자체로 삶이 불확실한 흑은 상변으로 밀고 들어가겠지만 우상 흑도 경우에 따라 백A로 공격하는 수가 있어 보기보다 흑의 타개가 쉽지 않았다.
#장면도2(백의 마지막 패착)
백에게 찾아온 두 번째 기회다. 백1, 흑2 다음 선수를 백이 둘 차례. 다음 한 수를 잘 두면 반집승부로 이끌 수 있는 장면이다. 여기서 김명훈의 선택은 백3이었는데, 이 수가 이 바둑의 마지막 패착이 됐다. 4·6을 기분 좋게 선수한 신진서는 흑8·10으로 손을 돌렸는데 이 수가 결승점. 승부도 결정됐다.
#정해도2(반집승부를 외면하다)
좌변 백1이 이른바 ‘반상 최대의 곳’이라고 불리는 자리. 이랬으면 눈터지는 반집승부였다. 상변은 보기보다 작은 곳이었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