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뱀미디어는 3월 28일 주주총회를 열어 신규 사외이사 3명을 선임했다. 판사 출신인 김영훈 대한변협 회장, 오리온그룹 및 CJ그룹 출신인 신은호 비케이엘 대표, 회계사인 오규태 삼성회계법인 이사다.
상장폐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영권 매각을 추진 중인 초록뱀미디어는 한국거래소 통지에 따라 사외이사를 선임했다는 입장이다. 초록뱀미디어 측은 “대한변협 내부 구성원 중 1인을 추천받고자 대한변협에 공문을 보냈지만, 후보들이 모두 고사했다”며 “이에 김영훈 대한변협 회장이 직접 사외이사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이해충돌 목소리가 나온다. 코스닥시장위원회 위원을 추천하는 권한을 지닌 대한변협 회장이 상장폐지 위기에 놓인 초록뱀미디어 사외이사로 선임됐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 정관 제48조2에 따르면 대한변협은 코스닥시장위원회 위원 9인 중 1인을 추천한다고 명시돼 있다. 코스닥시장위원회는 상장심사, 상장승인, 상장폐지 등의 권한을 지녔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대한변협 회장이 상장폐지 위기에 놓인 초록뱀미디어 사외이사로 선임된 것은 이해충돌 소지가 있어 보인다”며 “대한변협 내부적으로 코스닥시장위원회 위원을 추천하는 절차가 나름대로 갖춰져 있겠지만, 회장이 최종 결정 권한을 갖고 있지 않겠나. 위원 추천 과정에서 회장 의중이 반영된다고 예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사외이사가 공익적 기능도 있지만, 결국 회사 이익을 도모할 수밖에 없는 자리”라고 덧붙였다.
대한변협 대의원인 한 변호사는 “재야 법조계 수장인 대한변협 회장이 일개 민간회사 사외이사를 맡는다는 것부터 부적절하다”며 “특히 초록뱀미디어는 현재 거래정지 및 기업개선 기간에 있다. 이를 심의하는 위원의 추천권을 보유하고 있는 대한변협 회장이라면 이해충돌 소지가 있고, 도의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양태정 법무법인 광야 대표변호사는 “이해충돌 논란의 여지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대한변협 추천을 받은 코스닥시장위원회 위원이 스스로 초록뱀미디어 심의를 회피하거나, 더 공정하게 심사하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초록뱀미디어 측은 “시장에서도 이해충돌 우려가 있었지만, 대한변협이 코스닥시장위원회 위원을 선임한다는 건 공공연히 다 알려진 사실”이라며 “한국거래소도 이 같은 이해충돌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허가해줬다. 대한변협 회장이 사외이사를 할 수 없다는 게 어디에 나와 있는 것도 아니다. 문제가 됐다면 금융감독원(금감원) 등에서 제재하지 않았겠느냐”라고 반박했다.
한국거래소 측은 “사외이사 선임은 회사의 판단이며, 구체적인 사항은 현재 심사 중인 회사이므로 답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편, 대한변협 측은 “김영훈 회장이 2014년 변협 사무총장 시절 세월호 참사 변협 특위 공동위원장을 맡아 유족과 정부를 중재한 적도 있는, ‘중재 전문가’라 직접 나선 것” 이라며 “초록뱀미디어 소액주주들을 위해서 경영진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은 것인데, 어떻게 이해충돌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반박했다.
초록뱀미디어, 상장폐지 위기 놓인 까닭
2023년 11월 20일 코스닥시장위원회는 원영식 전 초록뱀그룹 회장의 배임 혐의를 이유로 초록뱀미디어 상장폐지를 의결했다. 앞서 그해 7월 원 전 회장은 자본시장법 위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조세) 등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이후 원 전 회장은 초록뱀그룹 모든 직위에서 물러났고, 약 5개월 뒤에 보석으로 석방돼 재판을 받고 있다.
원영식 전 회장은 암호화폐(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의 실소유주로 알려진 강종현 씨 등과 함께 2021년 12월부터 2022년 7월까지 빗썸 관계사인 비덴트와 버킷스튜디오가 보유한 전환사채 콜옵션을 원 전 회장 자녀가 출자한 회사에 무상으로 부여해 이들 회사에 약 587억 원의 손해를 입힌 혐의를 받는다. 이 과정에서 원 전 회장이 441억 원의 인수 대금을 대며 ‘돈줄’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2023년 12월 6일 초록뱀미디어는 상장폐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대주주인 씨티프라퍼티가 보유 중인 초록뱀미디어 지분 전량(39.33%)과 경영권을 제한경쟁입찰 방식으로 공개매각한다고 공시했다. 이후 한국거래소에 상장폐지 실질심사에 대한 이의신청서 및 경영 개선계획서를 제출했다.
올해 1월 11일 한국거래소는 코스닥시장위원회가 초록뱀미디어에 개선기간 12개월을 부여하기로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최근 초록뱀미디어 매각 주관사 삼일회계법인은 투자자들에게 티저레터를 배포하고 인수의향서(LOI) 접수를 시작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