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후보는 슬슬 피하면서 가끔씩 거부의 어퍼컷을 날리고 있다. 그가 단일화를 거부하는 것은 당연하다. 단일화는 본선에서 승리의 가망성이 낮은 후보 군에서 좀 더 우세한 후보 쪽으로 세를 몰아주는 절차다. 여론조사가 들쭉날쭉이기는 하나 안 후보는 새누리당의 박근혜,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3자 대결을 해도, 박-안 양자대결을 해도 우세하게 나올 때가 많다. 그에겐 단일화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그는 ‘무소속 대통령’이라는 정치 실험을 하러 나왔다. 대의정치 역사에서 무소속 대통령은 없었다거나, 무소속 대통령으로는 혼란뿐이라고 말해봐야 그의 귀에 잘 들리지 않을 것이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정수장학회, NLL 문제와 같은 과거사에 얽매어 있다. 과거로부터 자유로운 안 후보는 박·문 후보보다 상대적으로 미래를 말하는 것처럼 보여 어부지리도 상당하다. 정당들의 구태의연이 그의 완주 의지를 더욱 확고히 하고 있는 셈이다.
안 후보는 단일화를 한다 해도 자신이 후보가 되는 단일화를 상정할 것이다. 지는 단일화는 ‘실세 총리’와 같이 지분보장의 조건이 달린 것이라고 해도 15대 대선 때 김대중·김종필 후보 간의 ‘DJP’ 꼴이 되기 십상이다. 당시 김종필의 요구 조건인 내각제 개헌은 문서로 담보됐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그것을 휴지로 돌렸다.
안 후보가 단일화에서도 이기고, 본선에서도 이겨 민주당의 ‘안철수 대통령’이 탄생한다면 새누리당의 반대에 앞서 민주당과의 요란한 지분 다툼에 직면할 것이다. 민주당에 얹혀 대통령이 되든, 총리가 되든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이 안 후보를 완주의 길로 내모는 또 다른 원인이다. 지더라도 그것이 지지자들에게 떳떳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방법이 된다.
허나 그가 완주해서 이길 생각이라면 사상 초유의 무소속 대통령으로서 그에게는 비장한 각오가 있어야 한다. 정당의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정책을 설명해서 동의를 구하겠다는 각오다. 여야 모두와 등거리에서 소통하는 민주적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무소속 대통령이 아무리 합당한 의제를 내놓아도 파당적 이해에 매몰된 정당들은 거들떠 보려하지 않을 것이다. 무소속 대통령이 성공하는 것은 정당 무용론을 입증하는 결과가 된다. 무소속 대통령의 성공을 막는 일이라면 정당들은 쌍수로 의기투합할 것이다.
이것을 돌파한다고 의원 몇 명을 빼내어 정당을 급조하거나, 여론에 직접 호소하는 방법을 쓰고 싶겠지만 그것은 이미 노무현 정부가 써먹은 방식이다. 그런 낡은 방식으론 그의 정치실험은 시작과 동시에 좌초할 것이다. 무소속 대통령, 그것은 전인적 고뇌, 인내와 지혜를 필요로 하는 험난한 길이 될 것이다. 안철수 후보는 과연 그 길을 갈 준비가 돼 있는가.
한남대 교수 임종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