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 넘도록 처장·차장 없이 직무대행 체제, 수사 지지부진…2월 말 처장 후보 2인 선정에도 지명은 하세월
하지만 여전히 대통령의 최종 후보자 1인 지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한 상황에서 국무총리 등 더 중요한 보직 인사가 산적해 공수처장 임명이 늦어질 가능성이 높다.
‘일부러 비워놓고 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오는 지점이다. 5월 초까지 지명 절차가 이뤄지지 않으면 제21대 국회에서는 인사 청문회 개최가 어렵다. 22대 국회가 개원하더라도 6월 초까지는 원 구성에 정신이 없는 점을 감안할 때, 보름여 안에 임명하지 않으면 공수처장 공백은 최대 6개월 이상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공수처 내부가 흔들리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다.
#인사청문회 7월로 밀릴 수도
1월 20일 공수처장과 공수처 차장이 모두 임기 만료로 자리를 비우면서, 현재 공수처장 역할은 김선규 수사1부장이 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잡음’이 있다. 개인정보 유출 혐의로 2월 유죄를 선고받자 3월 초 사표를 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아직도 사표를 수리하지 않아 직무대행직을 유지하고 있다.
차기 처장 후보군이 있지만 대통령이 낙점을 하지 않은 것도 문재인 정부 때와 비교된다. 앞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후보 추천 이틀 만인 2020년 12월 30일 김 전 처장을 지명한 바 있다. ‘공수처 무용론’을 대선 캠프 때부터 주장했던 이들이 다수 포진했던 윤석열 정부인 만큼 공수처장을 공석으로 놔둬, 힘을 빼려 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지점이다.
실제로 국회 일정을 고려할 때 5월 초까지 공수처장 후보자 1명을 선택하지 않으면 인사청문회 일정은 6월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 5월 29일 임기가 끝나는 21대 국회에서 공수처장 인사청문회를 진행하려면 늦어도 5월 초까지는 처장이 지명돼야 한다.
22대 국회로 넘어간다면 인사청문회 일정은 한참 더 뒤로 밀린다. 새 국회가 문을 열더라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등 상임위원회 구성을 둘러싸고 여야 간 긴 줄다리기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21대 국회 때도 원 구성을 놓고 여야 간 신경전 속에 47일이나 지각 개원을 했던 것을 감안하면 7월 초나 중순 즈음에나 인사청문회가 열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분위기에 밝은 한 법조인은 “현재 대통령실의 최대 관심사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의 영수회담과 그를 통해 어떤 이슈들을 우선적으로 국회 협조를 받아 처리할 것인지에 쏠려 있다”며 “공수처장 후보가 2명으로 추려졌을 때 임명할 것이었다면 이미 진작 하지 않았겠냐”고 설명했다.
#'채 상병 의혹' 수사에 쏠린 눈
그러다 보니 공수처는 처장과 차장 없이, 주요 사건들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해병대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 사건이 대표적이다. 대통령실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호주 대사에 임명한 뒤 논란이 불거지자 “법적으로 문제될 부분이 없었다”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내린 상황이다.
하지만 민주당 등 야권은 채 상병 특검을 추진하고 있고, 국민의힘에서는 “먼저 공수처 수사 결과를 보고 특검을 해도 늦지 않다”고 맞서고 있다. 피의자로 입건된 이종섭 전 호주 대사 역시 “신속한 수사로 논란을 불식시켜 달라”는 입장이다.
문제는 공수처에 수사를 실질적으로 지휘할 이들이 없다 보니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실질적인 피의자 조사나 자료 정리는 평검사와 부장검사만 있어도 가능하지만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건의 경우 수사 지휘 라인이 어디까지 수사를 할지, 어느 영역은 수사를 하지 않을지 정리를 해줘야 한다”며 “그런 부분이 없다 보면 팀 전체가 하나처럼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공수처 소식에 정통한 한 변호사는 “수장이 없다 보니 정치적인 사건 처리를 놓고 ‘강하게 수사를 하자’는 쪽과 ‘정부의 입장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쪽으로 분위기가 나뉘었다고 한다”며 “공수처를 제대로 활용하려 했다면 정부가 일찌감치 공수처장을 임명하고 힘을 실어줬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다 보니 사건들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공수처의 눈치보기?
그러다 보니 공수처는 ‘불기소 처분’만 잇따라 내놓고 있다. 최근 공수처는 골프 등 접대 의혹을 받은 이영진 헌법재판관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이 재판관이 사업가 B 씨의 이혼소송을 알선해준다는 명목으로 골프·만찬 비용, 현금 500만 원, 골프 의류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아 왔다. 공수처는 골프장 등에 대한 압수수색까지 진행했지만 핵심 인물의 진술들이 엇갈려 신빙성이 없다고 보고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또, 김기현 전 울산시장(현 국민의힘 의원) 사건 관련해 동생 등을 봐주기 수사한 의혹에 따라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발된 울산지검 송인택 전 지검장, 황의수 전 차장, 배문기 전 형사4부장 등 전·현직 검사 5명을 4월 4일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했고, 2월에는 이성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의 공소장 내용을 언론에 유출한 혐의를 받은 검찰 관계자도 불기소 처분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법무부 장관 시절 국회에서 민주당 노웅래 의원의 혐의 사실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도 지난 2월 ‘위법한 피의사실 공표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한 전 위원장이 2022년 12월 피의사실 공표와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고발된 지 1년 2개월 만에 나온 불기소 처분 결정이었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공수처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다 보니 공수처를 만든 민주당조차 채 상병 사건을 ‘특검으로 하자’고 얘기를 하는 상황이 된 것 아니겠냐”며 “결국 공수처도 검찰이나 경찰처럼, 인사권이 있는 정부나 국회의 눈치를 보면서 사건을 정치적으로 처리하는 기구가 되어 버린 셈”이라고 비판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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