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연인관계’ 이유로 공개 안 했지만 검찰에서 결정…법조계 “자수 참작하더라도 중형 불가피”
#화성 흉기살해범 김레아
수원지방검찰청은 경기 화성시 봉담읍 자신의 거주지에서 여자친구 A 씨(21)와 그의 어머니 B 씨(46)에게 흉기를 휘둘러 A 씨를 살해하고 B 씨에게 전치 10주의 중상을 입힌 혐의(살인 및 살인미수)를 받는 김레아(26)의 신상정보를 4월 22일 지검 누리집에 공개했다. 이름, 나이와 함께 올라온 김레아의 머그샷은 오는 5월 21일까지 누리집에 공개된다.
수사기관이 중대 범죄 피의자의 얼굴을 강제로 촬영해 공개할 수 있도록 한 이른바 ‘머그샷 공개법’(특정 중대범죄 피의자 등 신상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른 조치로, 국내 첫 사례다. 머그샷 공개법은 2023년 10월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돼 2024년 1월 25일부터 시행됐다. 피의자 신상정보 공개 시 결정일로부터 30일 이내의 얼굴을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김레아는 평소 “A 씨와 이별하면 A 씨를 죽이고 나도 죽겠다”고 하는 등 여자친구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레아는 같은 대학에 다니던 A 씨와 교제하면서 A 씨의 휴대전화를 수시로 확인하기도 했다. 또한 A 씨와 다투던 중 휴대전화를 던지거나 주먹으로 A 씨의 팔을 때려 멍들게 하는 등 폭력적인 성향도 보인 것으로 파악됐다.
김레아는 A 씨가 그동안의 잦은 폭력 행위에 항의하며 이별을 통보하려고 하자 이런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사건 당일인 3월 25일 A 씨는 혼자 힘으로 김레아와의 관계를 정리할 수 없자 어머니 B 씨와 함께 김레아의 오피스텔을 찾아갔다. 이에 불만을 품은 김레아는 자택에 있던 흉기를 이용해 A 씨의 배와 가슴을 찔렀고, B 씨의 옆구리에도 흉기를 휘둘렀다.
피범벅이 된 김레아는 범행 직후 오피스텔 1층으로 내려와 경비원에게 “112에 신고해달라”고 부탁했다. 곧바로 출동한 경찰은 김레아를 체포했고, A 씨는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결국 사망했다. B 씨 역시 중상을 입었다. 당시 김레아는 술을 먹거나 마약을 투약하지 않은 상태였으며, 검거되는 과정에서 별다른 저항이나 도주 시도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경찰은 “묻지마 범죄도 아니고 가해자가 피해자와 ‘연인관계’였다”는 이유로 신상을 공개하지 않은 채 김레아를 검찰에 송치했다(관련기사 ‘엄마까지 찔렀는데…’ 화성 여자친구 흉기 살해범 신상정보 공개 안 된 내막). 하지만 수원지검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는 4월 5일 ‘모친 앞에서 A 씨가 살해당한 범죄의 잔인성·피해의 중대성’ ‘김레아의 자백 등 인적·물적 증거의 충분한 확보’ ‘교제 관계에서 살인으로 이어진 위험성 등을 알려 교제폭력 범죄 예방 효과 기대’ ‘피해자 측의 신상정보 공개 요청’ 등을 고려해 신상정보 공개 결정을 내렸다.
김레아는 수원지검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의 신상정보 공개 결정에 불복해 취소 소송과 집행정지 가처분을 법원에 제기했으나, 법원이 이를 기각했다. 법원은 “피해자들의 극심한 피해와 사회에 미치는 고도의 해악성 등을 고려하면 국민의 알 권리 보장, 동일한 유형의 범행을 방지·예방해야 할 사회적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김레아의 신상이 공개되자 온라인에서는 “(공개를) 잘했다” “얼굴 보니 분노가 치민다”며 검찰의 결정을 지지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다양한 반응이 등장하고 있다. 한 누리꾼은 “(김레아가) 평범하게 생겨서 오히려 불쾌하다. 머그샷은 궁금하지 않으니 사형해 달라”는 의견을 밝혔다. 다른 누리꾼은 “아직 명확하게 유죄로 판명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얼굴을 공개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라는 누명을 쓴 윤성여 씨가 생각난다”고 주장했다.
경찰과 검찰의 다른 행보와 관련해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재판에서 1심과 2심의 결과가 다를 수 있듯이, (신상정보 공개 여부를 두고) 경찰과 검찰의 결정이 다를 수 있다”고 답했다. 이어 오윤성 교수는 “앞으로 중대 범죄자 신상공개가 더 활성화 될 것으로 보인다. 공개된 범죄자 사진이 현재 모습과 너무 다르다는 지적에 따라 등장한 것이 머그샷 공개법이다. 수사기관이 국민 정서를 살필 수밖에 없다. 결국 김레아에 적용된 기준과 똑같이 향후 등장하는 사건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신상정보공개위원회가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법조계 “중형 불가피”
김레아의 범행은 2022년 1월 12일 충남 천안시에서 미리 준비한 흉기로 전 여자친구를 수차례 찔러 사망케 한 조현진(27)의 범행과 유사하다. 조현진은 김레아와 마찬가지로, 피해자의 모친이 함께 있는 집에서 피해자를 무자비하게 살해했다. 충남경찰청은 일주일 뒤인 1월 19일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조현진의 신상공개를 결정한 바 있다.
조현진은 1심에서 징역 23년과 보호관찰명령 5년을 선고 받았다. 당시 검찰은 조현진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이에 조현진은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지만 2심에서 오히려 7년이 늘어난 징역 30년을 선고받았다. 더불어 1심에서 기각됐던 15년 동안의 위치추적전자장치부착을 명령 받았다.
법조계는 조현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김레아 역시 높은 형량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변호사는 “검찰 측은 김레아에 사형을 구형하고,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고할 것 같다”면서 “최근 법무부가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을 검토 중이고 국민 법 감정 역시 범죄자에 대한 ‘강한 처벌’을 원하는 분위기다. 검사는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김레아를 향해 높은 형량을 구형할수록 박수 받는 입장이고, 재판부도 이러한 여론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4월 22일 YTN24에 출연한 김성수 법무법인 강남 변호사는 “김레아의 경우 비난동기 살인으로 볼지, 보통동기 살인으로 볼지가 쟁점이 될 것”이라면서 “보통동기 살인(7년 이상 12년 이하)이라고 하더라도 만약 가중이 되면 상당히 무거운 형(15년 이상에서 무기징역)이 취해질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살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살인미수까지 죄명이 2개라서 경합범 처벌에 대한 부분까지 감안하면 중형이 선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김레아가 범행 직후 제3자를 통해 자수했고 조사 과정에서도 자백을 한 것으로 나타나 정상 참작의 여지도 존재한다. 범죄의 계획성 입증 여부 등에 따라 양형 수준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곽준호 변호사는 “재판부가 자백 등을 참작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형량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분석했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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