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 공포증 시달렸지만 K1 개발로 퀀텀점프…폴란드에 K2 수출로 전 세계에 우수성 알려
#서울 올림픽 성공 개최 염원을 담다
최초의 K-전차인 K1에는 지금은 잘 쓰지 않지만 88 전차라는 특별한 별칭이 있었다. 여기서 ‘88’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1970년대는 남북한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던 시기로, 북한은 우리보다 더 많은 전차를 보유했고 스스로 전차를 만들어냈다. 반면 당시 전차 공포증에 시달리던 우리나라는 전차 수량 면에서 여전히 북한에 비해 열세였고 미국의 군사원조로 지원받은 미제 전차는 한반도의 전장 환경에 적합하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5년 7월 한국형 전차를 개발하기로 결정한다. 한국형 전차 사업은 방어력, 기동성, 화력 면에서 당시 개발이 진행 중이던 독일의 레오파르트 2나 미국의 M1 전차 수준의 성능을 요구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러한 최신 성능의 전차를 설계할 기술과 경험이 부족했다. 결국, 미국의 손을 빌리기로 한다.
#K1 전차로 주변국보다 기술 앞서
1976년 M1 전차를 만드는 크라이슬러 디펜스(현 GDLS)와 한국형 전차의 설계와 개발에 합의한다. 1984년 4월 2대의 시험용 전차가 제작됐고, 미 디트로이트 셀프릿지 주 공군 기지에서 열린 공개행사에서 첫 모습을 선보이게 된다. 일반적으로 전 세계의 전차들은 개발 시기, 방어력, 기동력, 화력 그리고 사격통제장치의 성능에 따라 세대별로 구분이 된다.
K1의 경우 3세대 전차로 분류된다. 3세대 전차의 특징으로는 우선 장갑판 사이에 복합소재를 채워넣은 복합장갑을 사용해 높은 방어력을 자랑한다. 또한, 컴퓨터화된 사격통제장치와 주야간에 상관없이 목표 탐지와 공격이 가능한 열영상장비를 장착한다. 여기에 더해 K1 전차는 한반도 전장 환경을 고려해, 다수의 표적과 교전이 가능한 헌터-킬러 기능과 전차의 차체 높이를 낮추거나 높일 수 있는 닐링 시스템(Kneeling System)이 추가로 장착되었다. 당시 북한 그리고 주변국인 일본과 중국이 2세대 전차를 운용했던 것을 고려해본다면, K1 전차 개발로 전차 기술면에서 우리나라는 사실상 퀀텀점프에 성공한 것이다.
#미국에 의해 수출 발목 잡혀
K1 전차는 미국의 기술지원을 받은 관계로 수출에 제약이 많았다. 1978년 미국은 우리나라와 한국형 전차 양해 각서를 체결하면서 세 가지 조건을 걸었다. K1 전차 및 그 계열전차를 수출하기 위해선 미국 정부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점과 수출할 경우 완성전차 1대당 5만 달러(약 6893만 원)의 로열티를 지불할 것, 마지막으로는 양해각서의 효력이 영구적이라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몇몇 국가가 K1 전차에 관심을 보였지만 수출로 이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K1 전차의 주포를 105mm 강선포에서 120mm 활강포로 업-건(UP-GUN)한 K1A1을 만들어냈고, 지속적인 기술 내재화를 통해 K2 전차의 개발 기반을 조성해 갔다. 특히, 군 전력 증강과 수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K2 전차는 개념설계에 앞서 세계 유수의 전차 전문가들을 초빙해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2014년부터 전력화된 K2 전차
2014년부터 육군에 배치된 K2는 K1보다 0.5세대 앞선 3.5세대 전차로 55구경장 120mm 활강포를 채택해 공격력을 높였다. 사격 통제장치는 주야간에 상관없이 목표물의 자동획득 및 자동추적 기능을 보유했다. 목표물 탐지 및 선택과 동시에 전차 차체의 움직임과 상관없이 포신과 포탑을 움직여 목표물 조준이 가능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K-전차 최초로 자동장전장치를 도입해 전차 승무원 수를 기존 4명에서 3명으로 줄였다.
기동성도 좋아졌다. 우선 반능동형 암 내장형 유기압 현수장치를 채택했다. 암 내장형 현수장치는 기존 현수장치와 비교하여 가볍고 공간을 덜 차지하는 장점이 있다. 특히, 지형을 감지하는 센서를 장착하고, 바퀴를 지형에 맞게 제어함으로써 주행 중 차체의 충격을 줄일 수 있게 설계되었다. 이를 통해 전차 승무원의 피로도를 최소화시켰다.
#폴란드 수출로 K-전차 위상 알려
K2 전차는 1500마력 엔진을 장착해 험준한 산악지형에서의 기동력도 향상했다. 그동안 K2 전차는 중동 등 몇몇 국가에 수출을 추진했지만 어려움을 겪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기회가 찾아왔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폴란드는 안보불안 및 전력공백이 심화되자 급하게 최신 전차 도입 사업을 진행했고 K-전차를 선택했다.
2022년 7월 폴란드 군비청과 K2 전차 긴급소요 및 폴란드형 K2 전차 수출 기본계약을 체결하고 이어 8월에는 K2 전차 1차 인도분인 180대에 대한 수출 실행계약을 맺으며 사상 첫 K-전차 수출이 성사됐다. K2 전차 폴란드 수출은 한국형 전차의 기술력과 품질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대한민국에서 전차 완성품을 수출하는 첫 사례가 됐다. 또한 계획 대비 3개월 앞당겨 K2 전차를 납품해 폴란드 정부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폴란드에 이어 루마니아, 이집트 등도 K2 전차에 도입에 관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전해진다.
#무용론 나오지만 여전히 지상전의 왕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과 대전차 미사일로 공격으로 인해 전차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1915년 전장에 처음 등장한 이후,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상전에 널리 활용된 전차는 이전만큼의 명성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나온다. 반면, 지난해부터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전차의 중요성을 재인식 시키고 있다. 특히, 전차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심지역에서 이스라엘의 전차는 능동방호체계 즉 전차를 향해 날아오는 대전차 미사일 및 로켓 등을 탐지해 파괴하는 장비를 사용해 생존성을 높였다. 움직이는 벙커가 되어 이스라엘군의 지상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군도 미래전에 대비해 K2 전차 성능개량을 추진 중이다. 적 대전차 미사일, 드론 공격 등에 효과적 대응이 가능한 복합능동방호장치와 도시지역 및 산악지역에서 작전수행 간 승무원 관측능력 향상을 위한 360도 전장상황 인식장치를 추후 K2 전차에 장착할 예정이다. 또한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접목해 인공지능 기반 원격사격통제체계 장착을 통한 전투력 향상을 꾀하고 있다.
#병력부족 대응 및 수출확대 위해 추가 양산 필요
군 일각에서는 출생률 하락에 따른 병력 감소에 대비해 K2 전차의 추가 양산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K1, K1A2 전차의 경우 운용에 4명이 필요하지만 K2 전차는 3명이면 가능하고 전투력도 월등히 뛰어나다.
향후 무인지상차량을 활용한 유무인복합체계로의 전환을 위해서도 K2와 같은 디지털 기반 전차가 필요하다. K1, K1A2 전차의 경우 아날로그 기반 전차로 유무인복합체계로의 전환에 어려움이 있다. 추가양산을 통해 현재 일선의 K1, K1A2 전차를 동원사단으로 돌릴 경우 육군의 예비전력도 자연스럽게 강화시킬 수 있다.
특히, 2030년 후반 전력화될 차세대전차 즉 K3 도입 때까지 K-전차의 명맥을 유지하려면 지속적인 양산 체제 구축이 필수적이다. 수출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 측면에도 추가양산은 중요하다. 양산 수량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가격경쟁력 확보가 가능해져 경쟁 전차들에 비해 해외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대영 군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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