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세라핌 띄우기 위해 뉴진스 뒷전…민희진 “하이브야말로 자회사 배임한 것”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민 대표는 "여러 가지 의혹에 휘말리고 있는 상황에서 대중들이 가진 저에 대한 '마녀' 프레임을 벗겨내는 것이 첫 번째 숙제였고, 두 번째 큰 숙제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말씀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해 이 자리에 섰다"며 "이 사태의 다른 앵글이 있다는 것을 대중들이 모르시기 때문에 그것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이라며 회견을 열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민 대표는 지난 4월 22일 하이브 발로 세상에 알려진 '민희진의 어도어 경영권 탈취 시도 의혹'에 대해 먼저 "처음 경영권 탈취 의혹 이야기가 나왔을 때 와닿질 않더라. 오늘 (하이브가) 저를 배임 혐의로 고발한다고도 하던데 저와 저희 어도어 부대표와 카카오톡 대화를 나눈 것을 포렌식 분석해서 나온 일부 내용을 가지고 이런 저런 정황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며 "제 입장에선 희대의 촌극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내용은 콘텍스트(맥락)가 제외된 것으로 친한 사람들끼리 친분이 있는 상황에서 부드럽게 나눈 대화에 불과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이브가 앞서 이날 오전 공개한 민희진 대표와 어도어 부대표 A 씨 간의 카톡 내용에서 이들은 ▲2025년 1월 2일에 풋옵션 행사 엑시트(Exit) ▲어도어는 빈 껍데기 됨 ▲재무적 투자자를 구함 ▲하이브에 어도어 팔라고 권유 ▲적당한 가격에 매각 ▲민 대표님은 어도어 대표이사 + 캐시 아웃(Cash Out)한 돈으로 어도어 지분 취득 등의 방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민 대표는 이 내용이 경영권 탈취와 관련한 구체적인 계획이 아니라 하이브와 그 경영진에 대한 불만 토로의 일환으로 이뤄졌다는 입장이다.
이 이야기가 이뤄지기 전의 상황도 중요하다는 게 민 대표의 주장이기도 하다. 민 대표는 "내용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하이브와 저와의 사이에 주주간 계약이 체결돼 있는 것이 있다. 이 계약의 불합리한 내용(독소 조항 등)과 관련해 이를 수정하는 방향으로 하이브와 계속 협상 논의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잘 이뤄지지 않았다"라며 "저도 협상을 위해 준비를 해야 하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이브 측은 이 같은 계획을 세웠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구체적인 배임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취지로 주장한 반면, 민 대표 측 법률 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세종 측은 "배임은 예비죄가 없어 회사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가 실재했을 때 성립하는 것이며, 실제로는 민 대표가 그런 행위를 기도하거나 의도 또는 실행에 착수했다는 사실도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라며 "애초에 죄가 성립하지 않는 것에 대해 배임으로 고발하겠다고 입장을 밝힌 데에 저희도 당황스러웠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하이브, 특히 방시혁 의장과 민희진 대표의 사이가 본격적으로 틀어진 시점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2019년 오랜 시간 몸 담았던 SM엔터테인먼트를 떠나 헤드 헌팅을 통해 하이브에 적을 옮기게 된 민 대표는 "뉴진스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방시혁 의장과 굉장히 심하게 의견이 갈렸고, 데뷔를 앞두고는 하이브의 본격적인 훼방이 있었다"고 밝혔다.
민 대표는 "처음 하이브로 들어갔을 때 방 의장이 '(민)희진 님의 뜻을 이뤄봐라. 마음대로 해 봤으면 좋겠다. 민희진 월드를 건설해 봐라'라고 말했다. 당시 방 의장은 팬덤에서 '방시혁이 걸그룹을 잘 만들겠냐'고 의심할 테니 자신이 없다며 제게 전폭적으로 의지했다"며 "제가 아직 어도어 레이블이 없는 상태였는데 방 의장이 빅히트에서는 BTS 때문에 여자 아이돌 그룹을 내게 된다면 자충수가 될 수 있으니 본인과 친한 동생의 레이블인 쏘스뮤직을 사오겠다며, 걸그룹을 만들 때 여기 소속된 연습생을 쓰자고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본래 '민희진 대표의 뜻에 모두 따르겠다'고 말했던 방 의장이 쏘스뮤직을 산하 레이블로 끌어들이면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민 대표, 음악은 방 의장, 그리고 매니지먼트는 쏘스뮤직에 맡기는 식으로 계획을 틀었다는 것이다.
민 대표는 "처음엔 싫었지만 첫 이직한 것이다 보니 협조적으로 있고 싶어서 최대한 맞췄다"라며 "그때 저희가 내걸었던 타이틀이 '하이브의 민희진 걸그룹'이었고 하이브로 옮긴 민희진이 뭘 할지 궁금증을 유발하는 식으로 브랜딩을 했었다. 이 조합을 대중들이 당연히 궁금해 할 것이라 생각해 합작도 의미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오디션 역시 민 대표의 주도로 홍보부터 제작이 이뤄졌고 그렇게 뉴진스의 다섯 멤버(민지, 하니, 다니엘, 해린, 혜인)가 최종적으로 꾸려졌다는 것이다.
그렇게 데뷔조를 꾸리고 트레이닝을 이어가던 중 갑작스럽게 박지원 하이브 CEO가 자신에게 "(최초의) 하이브 걸그룹으로 나가는 애들은 쏘스뮤직 소속으로 나가야 할 것 같다. 사쿠라와 김채원 그룹으로 나가는 것으로 결정됐다"고 통보했다는 게 민 대표의 주장이다. 민 대표는 "그 말에 제가 '너네 양아치냐, 내 이름을 팔아서 민희진 걸그룹이라고 붙였으면서 왜 나와의 약속을 깨냐'고 욕을 했다"며 "처음부터 뉴진스 멤버들은 '하이브의 첫 번째 걸그룹' '민희진의 걸그룹' 이걸 보고 여기 들어온 애들이다. 그렇게 뽑아놓고 갑자기 말이 달라지면 아이들 부모님에게 어떻게 말할 거냐고 묻자 '그건 희진님이 상관할 바가 아니고 쏘스뮤직에서 알아서 할 것'이라고 말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애초에 민희진은 김채원, 사쿠라가 새롭게 영입될 것이란 사실 조차도 이때까지 알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 대표는 "제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고, 양해도 구하지 않고 갑자기 쏘스뮤직에서 먼저 그룹을 내겠다고 해서 '너희 같은 양아치와 같이 일 못하겠다. 회사를 나가 기자회견을 하겠다'라고 했더니 저를 붙잡으며 '다음 그룹으로 또 내면 되지 않겠냐'고 하더라"라며 "연습생들의 나이가 있고 데뷔의 적기가 있는데 어떻게 그러냐? 우리 멤버들에게 '하이브 첫 번째 그룹이다'라고 들어오게 해놓고 아이들 부모님에게 양해나 사과 한 마디가 없었다. 부모님들도 불만이 많았다"고 말했다.
민 대표는 뉴진스를 어떻게 해서든 약속대로 데뷔시키기 위해 어도어 레이블을 만들고, 이마저도 방 의장이 지분 100%를 요구해 울며 겨자먹기로 만든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지분 100%를 주지 않으면 아이들(뉴진스 멤버들)을 주지 않겠다고 했다. 어도어를 만드는 데만도 3개월 넘게 언쟁해야 했는데 거기에 지분 싸움까지 하면 아이들은 또 방치되는 게 아니냐. 그래서 아이들을 받기 위해 제가 지분을 포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이후 데뷔 과정은 험난했다고 했다. 뉴진스의 제작부터 데뷔까지 하이브가 민 대표에게 "절대 홍보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는 것. 민 대표는 "박지원 CEO가 제게 '르세라핌이 나올 때까지 뉴진스를 홍보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했다. 왜 하면 안 되냐고 물었더니 르세라핌을 '민희진 걸그룹'인 것처럼 헷갈리게 만들자는 것이다"라며 "뉴진스 멤버는 전원이 신인인데 제가 홍보할 때 '전원 신인인 그룹'이라고 말하면 김채원과 사쿠라가 속한 그룹이 아니란 게 드러나니까 말하지 못하게 했다. 이런 (회사 차원의) 보이콧을 3~4개월간 받았다"고 폭로했다. 공식 홍보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억울했던 민 대표가 직접 '유퀴즈'에 나가 홍보하게 됐다는 것이다.
민 대표는 "방 의장은 이미 팬덤을 가진 멤버를 당시 활동하던 아이브의 대항마로 내보내려 했는데 우리는 신인이니까 기대가 없었던 거다. '우린 방해할 거니까 너 혼자 잘 해봐, 우리가 이러는데 민희진 네가 어디까지 하나 보자'하는 식이었다"라며 "그래서 제가 뉴진스를 만든거다. 제가 이런 말도 했다. '계모와 언니들이 나를 너무 핍박하고 있다. 하지만 늘 콩쥐가 이겨'." 이처럼 자회사를 차별하고 신인 홍보를 막는 것이야말로 '하이브의 배임'이라는 게 민 대표의 주장이다.
4월 26일 컴백 콘텐츠 공개를 앞두고 있는 뉴진스의 활동은 이번 사태에 맞물려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사태의 여파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속 민 대표는 "일정은 그대로 소화할 것이다. 우리가 왜 하이브 때문에 손해를 봐야 하나"라며 "오히려 어도어 입장에서 하이브에 업무방해 혐의로 손해배상 청구를 하고 싶다. 하이브가 대기업 네트워크로 이렇게 전방위 언론에 PR하던데 뉴진스 홍보도 그렇게 해주시는지 꼭 보시라"라며 비꼬았다.
그러면서 뉴진스 멤버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민 대표는 "엄청 말이 없는 해린이가 오밤중에 제게 영상통화를 걸어서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전화했다'고 하고, 혜인이는 20분 내내 나보다 더 울었다"라며 "어머님들도 제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하이브에 직접 '제발 언론 플레이 좀 그만해라, 아이들도 상처를 받는데 뭐하는 거냐'고 항의했더니 박지원 CEO가 '뉴진스는 언급 안 한다. 민희진만 언급하는 것'이라고 하더라. 인간이 맞나? 그러면서 어떻게 뉴진스를 생각한다고 하냐"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하이브가 본격적인 '고발전'에 나선 상황에서 민 대표의 앞으로의 대응에도 관심이 모인다. 이에 대해 민 대표는 "경영권 탈취 이런 건 관심 없고 그 사람들이 반성했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그쪽에서 제게 사임 요구 메일이 온 것도 없다. 저에게 중요한 건 뉴진스 뿐이다. 만일 대승적 차원에서 방 의장님이 이야기를 해보자고 하신다면 뉴진스를 생각한다면 해야 한다. 의장님이 얘기를 안 하니까 일이 이렇게 된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다들 제 고통스러운 상황을 모르지 않았나. (주주간 계약으로 인해) 회사에 평생 묶여있는다 생각하면 누구나 답답할 것"이라며 "그 상황에서 내게 어떤 옵션이 있는지를 생각했을 뿐인데 그것을 탈취(시도)라고 말하더라. 그런데 제가 멍청하지 않다. '피프티피프티' 선례가 있는데 그런 걸 제가 왜 만들겠나"라고 하소연했다.
내부고발을 포함한 하이브의 전반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짚었다. 민 대표는 "저는 방 의장이 손을 떼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장은 두루 보셔야 하는데 어도어, 플레디스, 코즈 외에 빌리프랩과 쏘스뮤직, 빅히트 뮤직은 방 의장이 프로듀싱 하다 보니 의장의 주도대로 그에게 골대를 자꾸 몰아주는 일이 생긴다"라며 "그런 문제가 생기지 않으려면 최고 결정권자가 위에 떠 있어야 자율경쟁하고 건강하게 크는 것인데, 최고 결정권자가 '내 새끼가 첫째'라고 하고 다니면 밖에서는 누가 서자고 누군 적자냐 하는 쓸데없는 논의가 나오지 않냐"고 짚었다.
이어 "그러니 (아일릿 같은) 카피가 나오면 이런 제 살 깎아먹기를 오너가 지적해야 하는데 저는 솔직히 (하이브가) 뉴진스를 죽이려고 하는 줄 알았다"라며 "그래서 제가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밖에서 우리 브랜딩을 따라 해도 열받는데 그걸 안에서 하냐'고 이의 제기를 한 것인데 솔직히 이런 상황에서 반기를 안 드는 게 역적이다. 이건 하이브로부터 모든 수혜를 받은 것처럼 포지셔닝 되는 아일릿도 망치는 일"이라고 짚었다.
이수균 변호사도 "아일릿의 데뷔가 (사태의)기폭제가 된 것"이라며 "사실 이 문제를 이의제기하려면 주주 간 계약의 협상이 이뤄지지 않을 게 너무 뻔했기 때문에 저희가 우선 협상을 해야 하니 내부고발하려는 민 대표를 말렸다. 그런데 대표님이 '계약 고치지 않아도 되니까 나는 이것부터 해결해야겠다'며 하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하이브는 민 대표의 기자회견에 대해 "사실이 아닌 내용이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라며 "모든 주장에 대해 증빙과 함께 반박할 수 있으나 답변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거론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경영자로서의 자격이 없음을 스스로 입증한 만큼 어도어의 정상적 경영을 위해 속히 사임할 것을 촉구한다"고 일축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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