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진, 경영권 뺏으려” vs “하이브, 뉴진스 죽이기”…민희진 폭로에 방시혁 ‘입꾹닫’ 역풍 가능성
민희진 대표의 주장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2002년 SM엔터테인먼트(SM엔터)에 공채로 입사해 소녀시대, 샤이니, 에프엑스, 엑소, 레드벨벳 등 소속 아이돌의 비주얼 디렉터를 맡아 앨범 콘셉트 등을 총괄해 온 그는 2018년 SM엔터를 퇴사하고 이듬해 헤드헌팅을 통해 하이브(당시 빅히트엔터테인먼트)로 이적했다. 그의 이적에는 하이브 방시혁 의장의 뜻이 강하게 담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방 의장은 이미 K팝계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유명한 민 대표를 내세워 ‘하이브 최초 걸그룹’을 제작하고자 했다. 당시 민 대표에게 “마음대로 해 봤으면 좋겠다. ‘민희진 월드’를 건설해 봐라”라고 할 정도로 전폭적인 지지를 해줄 것처럼 보였지만, 제작 방향을 두고 곧바로 민 대표와 의견이 엇갈리기 시작했다. 새 걸그룹 제작은 전적으로 민 대표에게 맡기기로 한 당초 계획에서 방 대표가 걸그룹 여자친구의 소속사인 쏘스뮤직을 자신의 산하 레이블로 두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민 대표, 음악은 방 의장, 매니지먼트는 쏘스뮤직이 하는 ‘삼자 제작’ 형태로 가자고 말을 바꿨다는 것이다.
계획이 일부 틀어지긴 했어도 이 당시 하이브는 ‘민희진 걸그룹’이란 브랜딩은 유지하고 있었다. 민 대표는 “그때 저희가 내걸었던 타이틀이 ‘하이브의 민희진 걸그룹’이었고, 하이브로 옮긴 민희진이 뭘 할지 궁금증을 유발하는 식으로 브랜딩을 했었다. 이 조합을 대중들이 당연히 궁금해 할 테니 합작(민희진+하이브+쏘스뮤직)도 의미 있다고 생각해 참여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추가 오디션 역시 민 대표의 주도로 홍보부터 제작이 이뤄졌고 그렇게 다섯 멤버(민지, 하니, 다니엘, 해린, 혜인)가 데뷔 조로 꾸려졌다. 이들은 모두 ‘민희진 걸그룹’이라는 타이틀과 동시에 ‘하이브가 만든 첫 번째 걸그룹’으로 내부적으로 잠정 결정이 돼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데뷔만을 바라보고 있던 민 대표에게 갑작스럽게 박지원 하이브 CEO(최고경영자)가 “(최초의) 하이브 걸그룹으로 나가는 애들은 쏘스뮤직 소속으로 나가야 할 것 같다. 사쿠라와 김채원(현 르세라핌 멤버) 그룹으로 나가는 것으로 결정됐다”고 통보했다는 것. 이 과정에서 자신에게 양해를 구하거나 일정 변경과 관련한 일언반구 자체가 없었다고도 덧붙였다.
민 대표는 “뉴진스 멤버들은 모두 ‘하이브의 첫 번째 걸그룹’ ‘민희진의 걸그룹’이란 타이틀만 보고 여기에 들어온 애들이다. 제가 따져 물으니 ‘다음 그룹으로 또 내면 되지 않냐’고 하더라. 연습생들의 나이가 있고 데뷔의 적기가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럼에도 쏘스뮤직과 하이브가 ‘하이브의 첫 걸그룹’ 데뷔를 강행하려 하자 결국 민 대표가 하이브 산하 새 레이블 어도어를 만들어 이곳에서 뉴진스를 데뷔시키게 된 것이다. 하이브의 전폭적인 지지와 PR을 받으며 ‘하이브의 첫 걸그룹’ 타이틀을 거머쥔 르세라핌은 쏘스뮤직 소속으로 2022년 5월 2일에, 뉴진스는 이보다 두 달 늦은 같은 해 7월 22일 어도어 소속으로 각각 데뷔하게 됐다.
어도어가 만들어지게 된 계기에 대해 민 대표는 “당시 (방 의장이) 지분 100%를 주지 않으면 아이들(뉴진스 멤버들)을 제게 주지 않겠다고 했다. 어도어를 만드는 데만도 3개월 넘게 언쟁해야 했는데 거기에 지분 싸움까지 가면 아이들은 또 방치된다. 그래서 아이들을 받기 위해 제가 지분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2021년 11월 2일 설립된 어도어는 모회사 하이브가 100% 지분을 가졌고 2023년에서야 민 대표가 우선매수권(콜옵션)을 행사해 하이브로부터 지분 18%를 11억 원가량에 매입, 2대 주주가 됐다.
하이브와 어도어, 정확히는 방 의장과 민 대표가 본격적으로 틀어진 시기도 르세라핌과 뉴진스 데뷔 및 활동 초기 시기와 맞물리는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시점 두 그룹의 데뷔를 앞두고 하이브가 민 대표에게 “르세라핌이 데뷔할 때까지 절대로 뉴진스를 홍보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는 것. 이미 외부에 ‘민희진 걸그룹’이란 타이틀이 유명해진 상태이니 르세라핌이 민희진이 제작한 걸그룹인 것처럼 헷갈리게 만들자는 게 당시 하이브의 홍보 방향이었다는 것이다.
‘전원 신인인 걸그룹’이라고 언급하면 아이즈원으로 활동한 김채원, 사쿠라가 속한 그룹이 아니란 게 들통나니 그 말을 쓰지 말라고 구체적으로 요구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뉴진스 발표를 미루라는 압박도 있었다. 민 대표가 약 3~4개월 동안 이어진 이 같은 요구를 따르지 않고 ‘유퀴즈’ 등에 출연하는 등 홍보 활동을 하자 하이브에 제대로 ‘미운털’이 박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데뷔 과정이 르세라핌에게 밀린 것도 모자라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둔 뒤에는 후발주자인 아일릿에게 견제를 받게 됐다는 게 민 대표의 또 다른 주장이다. 데뷔 직후부터 공룡급 대형 신인으로 주목받으며 불과 1년 차에 K팝 최정상 걸그룹의 반열에 오른 뉴진스로 인해 어도어의 매출은 186억 원에서 1년 만에 1103억 원까지 늘었다. 이처럼 하이브가 원하는 걸그룹 이미지와 정반대였던 뉴진스가 성공을 거두자 하이브가 이들의 콘셉트와 유사한 이미지의 신인 아일릿을 제작해 곧바로 데뷔시킨 것이란 의혹이 제기됐다.
3월 25일 데뷔한 하이브 산하 빌리프랩 소속 5인조 걸그룹 아일릿은 르세라핌과 마찬가지로 하이브가 직접 제작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브 막내딸’이란 타이틀을 내세운 이들은 데뷔 전 해외 패션위크에 초청받은 최초의 K팝 아이돌 그룹으로 주목받은 바 있다. 민 대표는 이 지점을 특히 지적하며 단순히 ‘긴 검은 생머리를 가진 청순한 소녀들’이라는 콘셉트의 유사성 이상으로 이들의 행보가 뉴진스를 빼닮았다고 주장했다.
민 대표는 “뉴진스가 (음악 방송이 아니라) 샤넬 행사로 데뷔하게 됐었는데 그건 하이브가 마련해 준 자리가 아니었다. 관계자분들이 다 저와 친한 분들이어서 의도와 다르게 첫 방송보다 쇼에 참석하는 일정이 먼저 잡힌 것인데 그때 ‘이렇게 나가는 것도 이색적이고 재밌겠다’싶어서 진행한 것이었다”라며 “그런데 아일릿도 똑같이 데뷔 전에 아크네 스튜디오 패션위크에 참여하지 않았나. 이런 포뮬러의 흐름이 비슷해져 버리는 것이야말로 의도적인 게 아니냐”고 짚었다.
그러면서 “(산하 레이블에서) 카피가 나오면 오너가 지적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제 살 깎아먹기다. 저는 솔직히 (아일릿이 나오고) 뉴진스를 죽이려고 하는 줄 알았다. 이건 단순히 따라 한 게 아니라 저희의 브랜딩이, 유니크함이 기성화가 되는 것”이라며 “그래서 제가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밖에서 우리 브랜딩을 따라 해도 열 받는데 그걸 안에서 하냐'고 이의제기를 한 것인데 솔직히 이런 상황에서 반기를 안 드는 게 역적이다. 이건 하이브로부터 모든 수혜를 받은 것처럼 포지셔닝 되는 아일릿도 망치는 일”이라고 강하게 말했다.
멀티 레이블을 표방하는 초대형 연예기획사에서 산하 레이블 소속 그룹을 겨냥한 ‘불공평한 경쟁’이 벌어졌다는 폭로가 나온 것은 한국 연예계 역사를 살펴봐도 이번 사태가 최초다. 계약 분쟁으로 좋지 않은 감정이 생긴 연예인들에게 소속사 차원의 부당·부정 행위가 드러나 질타를 받은 적은 있어도 현재 소속돼 있는 그룹, 심지어 남은 계약 기간 동안 압도적인 활약이 예상되는 그룹에게 하이브 급의 회사가 이 같은 입장을 취해왔다는 것 역시 충격적인 주장이다.
가요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두고 “하이브에게 어마어마한 역풍이 불 만한 폭로”라는 기류가 강하다. 익명을 원한 한 가요계 관계자는 “배임이 실재했는지는 수사기관이나 법정에 가서 따질 문제라더라도 뉴진스에 대한 홀대는 하이브가 제대로 반박하지 않는다면 엄청난 역풍이 불 수도 있다. ‘답변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하기엔 이미 너무나 큰 사태가 된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민 대표의 배임은 개인에게 책임을 지우면 해결되겠지만 이 폭로의 진실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뉴진스, 르세라핌, 아일릿 세 그룹은 물론이고 장기적으로 하이브의 경영 능력을 불신하게 되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민 대표와의 대화의 장을 마련하든 적극적인 수습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앞서 민 대표는 방 의장과의 대화할 의사가 있다고 여지를 열어둔 반면, 하이브는 “이미 경영자로서 자격이 없음을 스스로 입증한 만큼 민희진 대표는 어도어의 정상적 경영을 위해 속히 사임해 달라”는 입장만을 밝힌 상태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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