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현상은 특히 ‘이북(전자책)’ 시장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처음 ‘이북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었던 것처럼 수작이건 졸작이건 가리지 않고 에로틱 소설이라면 무조건 인기를 얻고 있는 것.
그런데 최근 이런 트렌드를 조롱하듯 만들어진 이른바 ‘엉터리 에로틱 소설’이 아이튠즈 스토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어 화제다. 내용이 어떻건 상관없이 일단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풍의 소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조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는 웃지 못할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NSFW 팟캐스트의 인기 진행자들인 브라이언 브러쉬우드와 저스틴 영은 어느 날 아이튠즈 전자책 순위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상위 10위권 안에 든 소설이 죄다 에로틱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이들은 흥미로운 실험을 한 가지 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이들이 직접 에로틱 소설을 써보기로 한 것이다. 물론 소설을, 그것도 에로틱 소설을 써본 경험이 없는 그들에겐 무모한 도전이었던 것이 사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0.99달러(약 1090원)짜리 이북 소설인 <다이아몬드 클럽>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방법은 간단했다. 우선 책표지를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분위기로 그럴싸하게 만든 다음 무조건 ‘섹스 장면’을 많이 삽입했더니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던 것. 이 책의 내용이 엉터리란 점을 생각하면 이런 현상은 놀라울 따름이다. 책의 내용은 모두 팟캐스트 청취자들이 써보내온 문단을 이어 붙여 짜깁기한 것들이었으며, 등장인물들의 이름이나 직업도 모두 청취자들이 지어준 것들이었다. 차고 넘치는 난잡한 정사 장면들 역시 청취자들의 작품이긴 마찬가지였다.
이렇듯 엉터리지만 표지만큼은 그럴듯하게 만들었으며, 파트리샤 하킨스-브래들리라는 가상의 작가 이름을 사용했다. 그리고 이들의 예상은 적중했다. 독자 후기라곤 별 한 개를 준 혹평 하나밖에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내 아이튠즈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4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브러쉬우드와 영이 벌어들인 돈은 무려 2만 달러(약 2200만 원). 그야말로 요즘 대세는 에로틱 소설인 것이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