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비위 예방’ 연구용역 발주…채용 단계 ‘인성 검사’ 강화 가능성
#경찰청장 경고에도 잇단 일탈
"경찰의 비위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지휘관을 중심으로 경찰 구성원 모두가 기본 업무에 충실해 '기본과 원칙 중심의 조직문화'를 구현해 달라."
윤희근 경찰청장은 2023년 5월 전국 지휘관 화상회의 때부터 잇단 경찰의 비위 행위에 대해 경고했다. 서울 성동경찰서 소속 한 경위가 성매매 업소 단속 과정에서 현행범으로 적발되고, 비슷한 시기 같은 경찰서 소속 한 순경이 여중생과 성관계를 맺고 성착취 영상을 촬영한 혐의가 적발된 데 따른 조치였다.
윤 청장은 그 뒤로도 무려 1년 동안 같은 말을 몇 차례 반복했다. 최근에는 4월 15일 기자들이 모인 정례 간담회에서도 "13만 5000명의 조직이 사소한 의무 위반 없이 가야 하는 게 궁극적인 목적이고 방향인 점은 틀림없는데, 그렇지 못해 안타깝고 국민께 송구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경찰에서 소위 '넘버2'로 꼽히는 김수환 경찰청 차장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최근 경찰들의 비위 행위를 언급하며 "조직문화 전반을 면밀히 분석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조지호 서울경찰청장도 4월 기자간담회에서 "경찰 비위는 횟수와 유형을 떠나 국민께 예의가 아니"라며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진 않는 모양새다. 경찰 수장들의 다짐을 비웃기라도 하듯 일선에서는 경찰관들이 일으키는 각종 사건·사고가 계속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뇌물수수나 인사청탁 등 중대 범죄는 물론 성추행과 폭행 및 음주운전 등의 사례까지 쏟아지고 있다. 단순 '말썽' 정도로 넘기기 힘든 수준이다.
대표적으로는 광주·전남에서 지역 유지에 돈을 건네 승진 등을 청탁한 이른바 '사건브로커' 사건에 연루된 경찰관 5명이 전부 실형을 선고 받은 일이 있었다. 광주지법 형사 7단독 김소연 부장판사는 4월 25일 제삼자 뇌물교부 등 혐의를 받는 퇴직 경찰 정 아무개 경감 외 현직 경감~경정급 경찰 4명에 전부 징역 6개월~1년을 선고했다.
이들 현직 경찰관들은 2021년 초 경찰 인사권자와 친분이 있는 지역 사업가와 정 아무개 경감 등에 승진 등을 부탁하며 1500만~3000만 원가량을 건넨 혐의를 받았다. 피의자들은 전부 심사에서 승진 가능성이 큰 편은 아니었다고 드러났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범행으로 경찰 인사의 신뢰는 물론 경찰의 명예도 훼손됐다"고 꾸짖었다.
해당 선고가 내려진 당일 서울남부지법에서는 형사2단독 한정석 부장판사가 뇌물 등 혐의를 받는 서울 서초경찰서 소속 권 아무개 경감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영장실질심사를 열고 "도주 및 증거 인멸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권 경감은 라임 펀드 자금이 투입된 한 업체 관계자한테 3000만 원을 받았다.
이게 끝이 아니다. 서울 강북경찰서는 동네에서 만취 상태로 노상방뇨를 하고 길을 걷던 시민에 고함을 지른 경찰관을 적발했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만취해 택시 기사를 때린 경찰관을 붙잡았고,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분실물로 접수된 지갑에서 20만 원을 가로챈 경찰관을 검찰에 송치했다. 전부 2024년 4월 한 달 동안 벌어진 사건이다.
그 외에도 △가정폭력(경기 고양경찰서) △음주운전(광주경찰청) △도박 사이트 운영진으로부터 뇌물수수(대구경찰청) △수사정보 유출(충북경찰청) △뇌물수수(강원경찰청) △교통사고 사망(전북 군산경찰서) △부하직원 성추행(전북경찰청) 등 2024년 1~4월 전국에서 발생한 경찰관들의 사고는 일일이 나열하기 힘든 수준이다.
물론 약 14만 명이 속한 경찰 조직에서 크고 작은 일탈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도를 넘어선 현실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비위 등으로 경찰에 징계가 내려진 횟수는 총 2304건에 달한다. 연도별로는 2019년 428건, 2020년 426건, 2021년 493건, 2022년 471건, 2023년 486건 등으로 증가 추세다.
#채용 때 '거짓말 탐지기' 도입?
더 큰 문제는 경찰 조직 안에서 켜켜이 쌓인 불신이다. 예컨대 광주·전남에서 불거진 '사건브로커' 사건을 두고 경찰 노조 격인 전국 경찰직장협의회는 "간부들의 부패"를 비판하는 기자회견까지 열었는데, 간부들 사이에서는 "내부 비위의 절대다수가 경위 이하 계급에서 불거진다"며 못마땅해 하는 분위기가 퍼져 있다고 한다.
결국 경찰은 내부단속이 힘들다고 판단한 듯 외부기관에 원인 분석 등을 의뢰했다. 4월 22일 '경찰 비위 예방 진단' 연구용역을 발주한 것. 용역 제안서에는 "그동안 비위 발생 요인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없었다"며 "비위 행위가 발생하면 엄벌하는 사후적 방식으로 이뤄져 왔다"는 반성도 담았다.
경찰 안팎에서는 하위직에서 간부에 이르기까지 채용과 승진 등 인사시스템 등을 크게 개선하는 내용이 나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경찰이 내부 비위 문제로 연구에 돌입한 적이 이번이 처음은 아닌데, 모든 연구 결과가 이 지점에서 공통된 결과를 내온 까닭에서다. 하위직은 단순 필기시험, 고위직은 속칭 '카르텔'을 통해 영전한다는 문제의식이었다.
이 같은 지적은 20년 전인 2004년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2004년 경찰대에서는 '하위직 경찰공무원 부패 통제 방안 연구'가 이뤄졌다. 연구진은 경찰관 부패 요인으로 필기 위주의 채용 및 승진 시험을 문제로 지적했다. 경정 이상이야 면접으로 승진이 결정되긴 하나 심사 과정의 불투명성이 문제로 제기됐다. 이때는 '인맥' 혹은 '처세'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흔하다는 것이다.
2005년 경찰대 부설 치안정책연구소가 내놓은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뜩이나 처우가 열악한 현실 속 폐쇄적인 승진 구조가 무사안일주의를 일으켜 금전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게 만들고 일탈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을 냈다. 특히 이 보고서는 당시 채용·인사 시스템이 '미래의 부패 경찰관을 뽑아 양성하고 있다'고도 꼬집었다.
이에 경찰대는 2009년 '경찰 윤리 교육프로그램' 개발에도 나섰으나 결과적으로 실효성은 입증하지 못했다. 국가경찰위원회는 2018년 발간한 백서에서 "경찰 비위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며 "적발되면 처벌을 강화함은 물론 윤리교육 프로그램 등도 대대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이러다 보니 이번 연구용역에서도 채용 등 인사 과정의 변화 필요성은 담길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된다. 채용 때 인성 검사를 강화하는 방안을 기본으로, 비위행위가 적발된 이후 감찰 등의 절차 또한 바뀔 수 있다는 관측이다. 실제 경찰 용역 제안서에도 "계량적·과학적 분석에 따른 비위 위험 진단 모델 마련이 필요하다"고 명시됐다.
해외 사례를 참고하면 미국의 경우 각 주마다 다르지만 일부 지역은 채용 및 비위행위 적발 때 거짓말 탐지기까지 동원한다. 영국은 금융신용도는 물론 부모나 친척 가운데 누군가 불법 유흥주점을 운영한다면 경찰 지원 자체를 금지했다. 그러고도 비위 행위가 발생하자 경찰의 사기진작을 위해 연봉을 20%가량 올리기도 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미국 일부 지역에서 도입한 거짓말 탐지기의 경우 채용 혹은 승진 지원자의 허위 이력을 적발하는 데에도 효과적인 역할을 하곤 한다"며 "자신의 과거를 속이는 자는 진실하지 못하다는 게 상식인 점에 견줘보면 국내에서도 한 번쯤 도입을 검토해 볼만 하지 싶다"고 말했다.
이웅혁 교수는 이어 "다만 가장 중요한 과제는 조직문화의 획기적 변화"라면서 "썩은 사과 몇 개 끄집어내는 정도로 문제 해결을 기대해선 안 되고, 이를 담은 상자에 문제가 없는지까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바라봤다. 그러면서 "조직 관리자 역시 함께 책임지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결국 조직문화 자체를 통째로 개선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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