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갈 협박 당한 사건 판결에 ‘사재기’ 사실 엿보여…“불법 아닌 편법이었으면 피해자가 겁먹었을지 의문”
해당 판결은 연합뉴스 등 언론을 통해 ‘방탄소년단 소속사 협박해 돈 뜯어낸 30대 징역 1년 실형’으로 보도됐다. 당시 빅히트는 보도자료를 내면서 “범인의 공갈과 협박에서 언급된 부적절한 마케팅 활동은 범인의 일방적 주장이며, 편법 마케팅은 통상적인 온라인 바이럴 마케팅을 뜻한다”면서 “앞으로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행사나 업무 파트너사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이 사건이 다시 화제가 되는 건 판결문이 나오면서다. 이때는 언론 보도에 그쳤지만, 최근 일부 K팝 팬들이 당시 판결문을 확보해 공개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판결문에 ‘사재기’라는 언급이 나오기 때문이다.
짧게 당시 판결문에 기재된 범죄사실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피고인 A 씨는 2017년 1월 11일쯤부터 2월 초까지 빅히트뮤직 이사인 K, 재무회계팀장 L의 이메일로 ‘소속 연예인 불법 마케팅에 대한 자료를 다 갖고 있다. 3억 3000만 원을 보내주면 관련 정보를 모두 파기하겠다. 돈을 주지 않으면 관련 자료를 모든 언론사와 SNS(소셜미디어)에 유포하겠다’라는 취지 이메일을 보냈다. A 씨는 마치 제3자에게 자신도 같은 내용으로 협박당한 것처럼 빅히트뮤직 이사 K에게 얘기해 겁을 줬다. 이에 이미지 타격을 두려워한 빅히트 이사가 총 8회에 걸쳐 5700만 원을 협박범 중 한 명인 B 씨 동생 계좌로 건넸다.
사재기라는 대목은 B 씨가 A 씨 범행을 알고 통장을 빌려줬는지 여부를 따져보기 위해 등장한다. 판결문에 따르면 “B 씨가 빅히트와 한 거래는 과거 사재기 마케팅해 준 것밖에 없는데, 사재기 마케팅 업무 담당자인 K로부터 거액의 돈이 계속 송금돼 왔다면, 과거 그 업무를 함께했던 피고인 B 씨로서는 피고인 A 씨가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사재기 마케팅을 빌미로 돈을 갈취하는 것임을 미필적으로나마 알았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적혀 있다.
이에 따라 커뮤니티와 K팝 팬들 사이에서는 하이브 반박과 달리 실제로 하이브가 당시 사재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2017년 당시 빅히트는 “부적절한 마케팅 활동을 했다는 범인의 일방적 주장이 사실인 양 보도돼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면 앞으로 이런 공갈 협박 사건에 떳떳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불법적인 마케팅이기 때문에 겁을 먹게 됐다는 추측도 있다.
홍진현 법무법인 청림 변호사는 “공갈죄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겁을 먹도록 하고 이를 빌미로 금전을 갈취하는 범죄다. 애초에 불법적인 마케팅이 아니라 단순히 편법적인 온라인 바이럴 마케팅에 불과하다면 피해자가 겁을 먹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또한 피고인 A 씨의 양형에서 당시 마케팅이 불법이라는 단서를 포착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홍 변호사는 “재판부에서는 공갈을 저지른 피고인 A 씨에 대해, 양형에 유리한 정상으로 ‘피해자가 편법으로 마케팅 작업을 하여 협박의 빌미를 준 잘못도 있는 점’이라고 언급했다. 그 의미는 애초에 피해자인 빅히트 마케팅 방식이 잘못된 것이라는 의미도 담겨있다. 위와 같은 마케팅 방식이 단순히 온라인 바이럴 마케팅이라면 재판부에서 이를 피고인 A 씨에 대한 유리한 정상으로까지 고려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판결문에 불법 마케팅, 편법 마케팅이란 단어가 혼재돼 있다는 점에서 법원 판단이 불확실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에 홍 변호사는 “판결문에는 ‘불법 마케팅’과 ‘편법 마케팅’이라는 표현이 혼재돼 사용되고 있으나, 이는 위 판결의 쟁점이 마케팅 불법성 여부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보인다”면서 “공갈 행위를 직접 자행한 피고인 A 씨가 ‘소속 연예인 불법 마케팅 자료를 다 가지고 있다’라는 내용으로 피해자에게 겁을 줬음이 판결 내용상으로 명백하며, 판결문의 ‘판단’ 부분에서도 피고인들이 ‘사재기 마케팅을 빌미로 돈을 갈취’했음을 명시적으로 기재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당시 법원은 위 마케팅의 불법성에 대한 판단은 차치하고서라도 적어도 위 마케팅이 ‘사재기 마케팅’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았다는 점은 명백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마케팅을 맡겼다는 2015년 당시에는 음악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음악산업법)이 개정되기 전으로 당시에는 불법이 아니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에 홍 변호사는 “음원사재기의 경우 통상 매크로 프로그램 및 타인의 아이디 등을 이용해 수차례 음원을 다운로드하는 등의 행위를 지칭하기 때문에 이러한 행위는 과거에나 지금이나 모두 형법상 업무방해죄로 처벌될 수 있는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면서 “다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위 판결 당시에는 위와 같은 음원 사재기 행위의 불법성 여부는 쟁점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 법원에서는 굳이 그 불법성 여부까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방탄소년단 팬덤인 아미(ARMY)들은 이번 하이브 대응에 3일 중앙일보에 ‘성명문’을 전면광고로 내고 “우리는 하이브가 아닌 방탄소년단을 지지한다”면서 “현 사태와 무관한 방탄소년단이 거짓뉴스, 루머로 지대한 피해를 입고 있는데 소속사로서 방관하는 하이브를 규탄한다”고 했다.
구체적인 해명 대신 하이브는 “당사는 아티스트와 관련된 허위사실 유포를 통한 악의적 루머 조성 행위가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해, 별도의 법무법인을 선임해 엄중 대응할 것임을 알려드린 바 있다”면서 “당사는 앞으로도 아티스트의 권익 보호를 위해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다”라고만 답변했다.
한편 5월 2일 ‘스포츠경향’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방탄소년단의 음원 사재기 의혹을 조사해달라는 민원을 접수해 문체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해당 민원에 대해 사실관계를 파악한 뒤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한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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