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 한 죄” 민희진=나 동일시, 실상은 ‘갑-갑 대결’…쌍욕 생중계 ‘재밌음 그만?’ 우리 시대 자화상
이와 별개로 대중의 더 큰 관심사는 따로 있다. 바로 민희진 대표다. 당초 하이브의 입장 발표 이후 민 대표와 어도어를 향한 대중의 시선은 뾰족했다. 하지만 민 대표가 4월 24일 기자회견을 연 후 여론이 반전됐다. “민희진을 이해한다” “민희진을 지지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왜일까. 민 대표가 논리적으로 하이브의 주장을 깨뜨린 것일까. 그렇진 않다. 사실 기자회견이라기보다는 그의 감정을 담뿍 담은 심경을 일방적으로 토로하는 자리였다. 그렇다면 왜 대중은 마음이 흔들렸을까. 그리고 이런 대중의 판단은 과연 옳은 것일까.
사태의 본질은 ‘경영권 찬탈 시도’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하이브는 △2025년 1월 2일 풋옵션 행사 △권리침해소송 제기 △재무적 투자자 구함 △캐시 아웃한 돈으로 어도어 지분 취득 등 구체적 행동 계획이 담긴 문건을 공개했다. 이외에도 ‘5월 여론전 준비’ ‘어도어를 빈껍데기로 만들어서 데리고 나간다’ 등의 대화가 오간 정황도 전하며 하이브는 “감사대상자 중 한 명은 조사 과정에서 경영권 탈취 계획, 외부 투자자 접촉 사실이 담긴 정보자산을 증거로 제출하고 이를 위해 하이브 공격용 문건을 작성한 사실도 인정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한 민 대표의 답변은 무엇이었을까. 아주 간단했다. 민 대표는 “사담이었다”고 말했다. 동석한 변호사도 “그냥 쓴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하지만 정작 해소된 것은 없다. 향후 법정 다툼에서 이 같은 정도의 답변서만 낸다면 패소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민 대표와 어도어 측은 이런 주장에 대해 ‘의미를 축소’하는 대응 방안을 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대신 민 대표는 이를 지켜보던 대중의 ‘약한 고리’를 건드렸다. 그는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고 외쳤다. 너희들이 골프 치고 술 마실 시간에도 나는 일했다는 식이다. 뉴진스를 향한 애정과 열정은 기자회견 전부터 이미 입증됐다. 이런 외침은 공감을 얻었다. 적잖은 샐러리맨들이 박봉에 시달리고, 죽도록 일하는데 정작 성과는 회사가 다 가져간다고 토로한다. 내가 만든 기획안도 선배, 상사라는 이름 붙은 이들의 공로가 되는 것이 밉고 싫을 수밖에 없다. 민 대표는 바로 이 지점을 내세웠고, 대중은 호응했다. 적잖은 이들이 ‘민희진=나’라고 동일시한 셈이다.
하지만 이는 대단한 착각이다. 민 대표는 박봉에 시달리는 ‘샐러리맨’이 아니라 2021년 기준 연봉이 5억 원이 넘는 ‘대표’이기 때문이다. 그는 2021년 기준, 5억 2600만 원을 수령했다. 이는 그가 ‘X저씨’라 지목한 박지원 하이브 대표의 같은 해 연봉(5억 900만 원)보다 많다. 시기적으로 볼 때 뉴진스가 나오기 전이다. 하이브는 어떤 성과를 내기 전 이미 민 대표에게 ‘업계 최고 대우’를 안겼다.
이게 끝이 아니다. 민 대표는 2023년, 연봉을 제외하고 챙긴 인센티브만 20억 원이 넘는다. 게다가 하이브는 그에게 어도어 지분 18%를 줬다. 이는 현재 가치 1000억 원이 넘는다. 민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가만히 있어도 1000억 원을 번다”는 주장의 근거다. 게다가 하나증권은 2025∼2026년 어도어의 가치를 약 2조 원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른 그의 지분 가치는 약 3600억 원에 이른다.
결국 민 대표는 이 기자회견을 지켜본 대중과 결코 동일선상에 놓인 인물이 아니다. 비유하자면 대기업 그룹 회장과 계열사 CEO 간 다툼이다. ‘갑을 대결’이 아니라 ‘권력자 vs 권력자’ 구도다. 그런데 민 대표는 현란한 언변으로 대중을 품에 안는 데 성공했다.
엄밀히 말해, 민 대표만 탓할 일이 아니다. 여기에 동조한 대중의 반응은 ‘도파민에 중독된 사회’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이날 민 대표는 거침없이 말했다. ‘X저씨’는 약과였다. ‘지X’ ‘시XXX’ 등 평소에도 입에 담기 힘든 말들을 주저 없이 내뱉었고, 생중계인 관계로 이는 여과 없이 전파를 탔다. 동석한 변호사마저 머리를 싸맬 정도였다. 잠시나마 이를 의식한 듯한 민희진의 해명은 “난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 평소에도 이런 사람이니 그냥 인정하라는 식이다. 이를 두고 “걸 크러시하다” “사이다(속시원하)다”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각종 혐오와 증오 발언에 일부 대중이 열광하는 기현상이다.
이는 상식이 통하는 않는 사회상을 반영한다. “재미있으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민 대표의 기자회견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로 퍼져 나갔다. 아직 자의식이 형성되지 않은 10대들도 이를 보고 밈(Meme·온라인상에 떠도는 유행 콘텐츠)처럼 따라 한다. 민 대표의 언행에 열광하는 세태를 보며 과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상식 따위는 저버린 비뚤어진 대인 관계를 당연하듯 받아들이는 사회는 곤란하다. 이는 부도덕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 유튜버들의 기행을 보며 ‘좋아요’를 누르고 후원금을 보내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상식과 기본적인 예의가 상실된 사회, 민희진 사태를 통해 목도하게 된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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