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기획사 구조적 취약점 드러내 투자 경계심 높아져…최근 경영 지표도 악화
연예기획사의 문제는 경영자의 도덕적 해이나 경영의 불투명성으로 직결되는 내부통제 미흡에서 비롯된 것이 대부분이다. 과거 YG엔터테인먼트(YG엔터)는 대주주와 소속 연예인의 일탈이 문제가 됐고, 지난해 SM엔터는 창업자와 회사의 내부계약 논란이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졌다. 이번 하이브 사태 역시 계열사 대표와 모기업 간의 갈등이 발단이다. 단기적인 불안 요인이 아닌 구조적인 취약점이란 점에서 근본적인 해결이 쉽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하이브와 민희진 어도어(ADOR) 대표 간 공방의 시작은 뉴진스의 성공에 따른 보상 문제다. 하이브는 주요 소속 아티스트별로 별도 자회사를 세워 관리한다. 방탄소년단(BTS)은 빅히트뮤직, 세븐틴은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 지코는 케이오지엔터테인먼트, 뉴진스는 어도어 소속이다. 하이브는 자회사에 솔루션을 제공하고 이들의 콘텐츠를 집결해 팬에게 전달한다.
아티스트와 이들을 키워낸 각사 대표들에 대한 보상 수단은 급여와 주식이다. 주식은 하이브뿐 아니라 자회사 발행분도 포함된다. 민희진 대표가 어도어 지분을 20%까지 가질 수 있었던 이유다. 자회사 대표가 20~25%의 지분을 가져도 하이브 지분율이 3분의 2 이상이면 이사 임면권을 통해 경영을 통제할 수 있다. 하이브로서는 당장의 현금 유출 없이 성과 보상이 가능하고 상장까지 성공한다면 아예 그만큼의 비용을 아낄 가능성도 열어두는 선택지다.
비상장인 자회사 주식은 현금화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일정 기간이 지난 후 하이브에 지분을 되팔 수 있는 권리 ‘풋백옵션’(Put back option)을 부여한다. 이때 행사가격은 영업이익에 미리 정한 배수를 곱해 기업가치를 추정하고, 이를 발행주식수로 나눠 주당 가격을 결정한다. 민희진 대표는 2021년 어도어 설립 당시 지분 10%를 받기로 했고 현금 특별상여 명목으로 5% 지분을 추가로 얻었다.
이후 뉴진스의 성공에 따른 특별 보상으로 다시 3%(측근 지분 포함시 5%)을 취득했다. 이 중 15%에 대해서는 풋백옵션이 부여됐다. 지정가격은 어도어의 2년간 영업이익 평균치의 13배가 기준이다. 민 대표 측 지분 비율(15%)를 적용한 약 690억 원이다. 옵션 행사 시점은 2026년 이후다.
지난해 하이브 자회사 가운데 영업이익은 빅히트뮤직이 1776억 원으로 가장 많고, 플레디스가 770억 원, 그 다음이 어도어(335억 원)다.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빅히트뮤직 32.1%, 어도어 30.4%. 플레디스 23.5%의 순이다.
쉽게 말해 하이브 계열에서 가장 유망한 곳이라는 뜻이다. 특히 뉴진스는 올해 새 앨범 발표와 월드투어 공연이 예정돼 실적 성장 기대감이 높다. 뉴진스를 발굴하고 육성한 민 대표 입장에서는 더 높은 성과 보상을 요구하기 좋은 때다. 지난 연말 민 대표는 하이브에 영업이익의 13배에서 30배로 기업가치 산정 기준을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
어도어는 2023년에는 영업흑자를 냈지만 2022년에는 40억 원의 영업적자를 봤다. 2년 치 영업이익 평균치 13배의 20%면 767억 원이다. 30배의 20%면 1770억 원이다. 최근 주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하이브의 지난해 주당순이익(EPS)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은 44배에 달한다. 22배 수준인 JYP엔터테인먼트와 SM엔터보다 훨씬 높다. 블랙핑크가 소속된 YG엔터는 13배에 불과하다. 증권사들의 올해 하이브 예상 EPS 평균은 6726원으로 현 주가는 PER 30배 수준이다.
하이브 입장은 민희진 대표와 다르다. 빅히트뮤직은 하이브의 100% 자회사다. 플레디스는 하이브의 지분율이 85%에 달하고 한성수(10%), 소니뮤직(5%)이 나머지를 보유 중이다. 하이브 입장에서 가장 많은 성과보상 부담을 가진 곳이 어도어다. 무엇보다 어도어에만 30배의 배수를 허용하면 다른 계열사 대표들이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하이브가 민희진 대표의 기업가치 산정 방식 변경 요구를 거절하자 민 대표 측은 올해 초 이사회를 거치지 않고 대표이사 단독으로 ‘뉴진스의 전속계약을 해지할 수 있게 하는 권한’을 주주 간 계약서에 담도록 요구했다. 음악 기획사에서 소속 가수의 전속계약권은 경영 핵심 사안이다. 이사회 동의가 보편적이다.
어도어의 소속 아티스트는 뉴진스뿐이다. 민 대표가 뉴진스에 대한 이사회의 권한을 자신에게 넘기라고 요구한 것은 주주인 하이브 입장에서 경영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일 만한 사안이다. 현재 어도어 이사진은 모두 민 대표의 측근으로 구성돼 있다. 이사회를 통해 전속 계약 해지를 추진할 수 있지만 대주주인 하이브의 이익에 반하는 만큼 배임 소지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결국 민 대표가 뉴진스와 함께 독립하려면 대표이사가 전속계약에 관한 권한을 가지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어도어 이사회가 뉴진스와의 전속계약을 해지하지 않는다면 하이브가 임시주주총회를 통해 민 대표 등 이사회를 전면 개편할 수 있다. 상법 상 주주총회 소집 권한은 이사회에 있다. 현재 민 대표 측은 하이브의 임시주총 소집 요구를 거절한 상태다. 상법은 지분율 3% 이상의 주주에도 주총 소집요구권을 부여한다. 다만 이 같은 요구를 이사회가 거부하면 주주는 법원의 허가를 얻어야만 주총을 열 수 있다.
투자자들의 관심은 향후 주가 방향성이다. 일단 증권가에서는 뉴진스의 새 앨범 판매 추이가 나쁘지 않다면 하이브 실적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민희진 대표가 뉴진스와 함께 독립해 떠난다면 하이브 실적에 타격이 되겠지만 그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민 대표 입장에서도 지금 회사를 떠나면 풋백옵션 행사가 불가능하다. 뉴진스가 하이브라는 든든한 배경을 잃고 새 앨범 활동과 월드투어를 성공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민 대표 본인도 전속계약 권한을 요구한 이유가 불합리한 간섭을 해결하고, 독립적인 레이블 운영을 위한 요청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지배구조 관점에서 바라보면 얘기는 조금 달라진다. 최근 수년간 하이브의 연결기준 경영실적을 보면 매출과 이익은 증가했지만 투자활동 등으로 현금흐름은 악화됐다. 2023년 초 6800억 원에 육박하던 현금성 자산도 지난해 말 3600억 원 수준으로 줄었다. 2023년 유동자산은 2조 1158억 원에서 1조 8887억 원으로 줄었고 유동부채는 8495억 원에서 1조 7722억 원으로 2배 이상 급증했다.
특히 자회사를 제외한 하이브의 단독 기준 경영실적은 더 심각하다. 금융자산 평가손실이 급증하며 지난해 1900억 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보유한 유동자산(7164억 원)보다 갚아야 할 유동부채(1조 910억 원)가 더 많다. 보유 현금은 고작 270억 원뿐이다. 1년 전(740억 원)의 3분의 1 수준이다.
2026년부터 보상 차원에서 지급한 주식들의 풋백옵션이 하이브를 상대로 행사되면 막대한 현금이 필요할 수 있다. 이를 감당하기 위해 빅히트뮤직 등 알짜 자회사들을 상장시킨다면 하이브 주주는 그만큼 핵심 지식재산권에 대한 지배력이 약화된다. 2022년 11월 5일 발행한 3587억 원 규모의 전환사채(CB) 조기상환 요구도 올해 11월 5일부터 가능하다. 주당 전환가격이 38만 5230원이다. 현재 주가가 20만 원대인 것을 고려하면 현금 상환 요구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한편 하이브 주가가 재무구조 악화에 내홍까지 겹쳐 주저앉으면서 주요 주주인 두나무의 투자 손실은 더욱 커지고 있다. 두나무는 2021년 11월 하이브 유상증자에 7000억 원을 투입해 주식을 1주당 30만 4008원에 매입했다. NFT(대체불가토큰) 부문 협력을 위해서다. 하지만 현재 두나무 보유 하이브 지분 가치는 30% 이상 하락한 상태다. 하이브는 수혈한 7000억 원 가운데 5000억 원으로 두나무 지분 2.47%를 매입했는데 가상자산 시장의 열기가 가라앉으며 지난해 말 현재 지분가치가 1370억 원대로 쪼그라들었다.
최열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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