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옥 비대위 시즌2’ 우려 속 “외유내강” 구원투수 제격 평도…‘당심 100%’ 개정 논의 과정 갈등 조정 과제
#구인난 끝, 황우여 등판
총선 패배 책임을 지고 물러난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 자리를 황우여 상임고문이 물려받았다. 황 위원장은 5월 2일 당 전국위원회 의결을 통해 취임했다. 총선에서 참패한 국민의힘이 정치권을 떠난 지 10년 가까이 된 노장에게 당을 맡기며 노마지지(老馬之智·늙은 말의 지혜)를 기대한 것으로 풀이된다.
경험 등을 운운하는 것은 겉포장이고 워낙 맡을 사람이 없어서 삼고초려 끝에 모셔왔다는 게 정가의 일반적 해석이다. 국민의힘은 일찌감치 관리형 비대위로 방향타를 잡았다. 그리고는 윤재옥 원내대표 겸 대표 권한대행에게 관리형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겨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지도체제를 정비, 당의 새 출발을 빨리 준비하자는 목소리가 가장 컸다.
하지만 윤 권한대행은 “비대위원장을 맡을 의사가 없다”는 분명히 했다. 이를 두고 한 초선 의원은 “잘해야 본전도 못 찾을 상황에서 비대위원장을 맡으려 하겠느냐”고 했다. 결국 새 비대위원장을 찾아야 했다. 윤 권한대행은 당내 여러 다선 중진들을 중심으로 구인에 나섰지만 녹록지 않았다. 한시적인 비대위원장 자리가 빛이 나기는커녕 욕만 먹을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에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국민의힘 5선 이상 당선인은 모두 8명이다. 6선 조경태 주호영 의원, 5선 권성동 권영세 김기현 윤상현 의원과 나경원 조배숙 당선인이다. 4선까지 포함하면 중진 당선인은 19명에 이른다. 전방위 접촉이 이뤄졌지만 다들 고사하는 분위기였다는 게 당내의 전언이다. 조경태 의원의 경우, 본인이 맡을 의사가 있었지만 당내에서 제기되고 있는 영남 일선 후퇴론에 걸려 불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역 중진 의원들이 막히자 윤 권한대행은 일부 낙선한 중진 의원도 접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총선에 출마하지 않거나 낙선한 4선 이상 중진은 박진 서병수 홍문표 이명수 김학용 의원 등이다. 이 중 서울 서대문을에서 낙선한 외교부 장관 출신의 박진 의원은 “최근 비대위원장 제안을 받았으나 정중히 사양했다”는 말을 일부 기자들에게 직접 내놨다.
구인난 끝에 황우여 고문 인선을 발표했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총선 민심에서 드러난 변화와 혁신 요구를 이뤄낼 적임자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주를 이뤘다. 여당 내부에서조차 ‘감동 없는 인선’이라는 혹평이 곳곳에서 나왔다.
당 지도부가 일찌감치 비대위를 한시적 관리형으로 규정한 것도 구인난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아무런 권한 없이 자칫 욕만 먹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혁신형 비대위 구성을 주장했던 윤상현 의원은 비대위원장 인선 결과가 나온 직후 기자들에게 “총선에 나타난 민의를 받들고 어떤 혁신의 그림을 그려나갈지 잘 모르겠다”며 “관리형 비대위 자체가 무난하게 가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고 쏘아붙였다.
친정을 향해 날 선 비판을 계속하고 있는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도 황우여 위원장 인선 발표 직후 “국민의힘이 지난 총선 패배 이후에 도대체 무엇을 깨닫고 느끼고 바뀌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알 수가 없다”며 “여권이 선거 이후 풀어내야 할 사안들을 하나도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상당히 안타깝다”고 때렸다.
일부 당내 인사들은 황 위원장이 ‘어당팔(어수룩해 보이지만 당수가 팔단)’이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외유내강형이라는 반론도 제기한다. 약해 보이지만 이해관계를 중재·조정하는 실력이 수준급이라는 것이다. 그는 5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박근혜 정부 시절 여당 대표와 부총리 겸 교육장관을 역임한 바 있다.
황 위원장과 함께 의정활동을 한 전직 국민의힘 의원은 “황 위원장은 항상 허허 웃는 모습이지만 정치 경험이 많아 갈등 조정 능력이 뛰어나다”며 “짧은 이닝을 던지는 구원투수로는 아주 제격”이라고 했다.
#관리형 비대위의 악몽
일부 호평도 있지만 국민의힘은 관리형 비대위로 출범했던 2016년 ‘김희옥 혁신비상대책위원회’의 나쁜 기억을 자꾸 떠올리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2016년 봄 총선에서 참패한 국민의힘은 그해 6월 2일 김희옥 위원장을 간판으로 내세운 비대위 체제를 출범시키고 전당대회 준비에 나섰다. 하지만 내홍만 더욱 키웠고 결국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라는 치명타를 맞은 뒤 정권을 더불어민주당에게 내줬다.
김희옥 비대위 체제는 지금 상황과 여러모로 닮았다. 2016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은 야권이 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분열돼 질 수 없는 선거였는데도 총선에서 참패, 원내 과반 획득에 실패했다. 심기일전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당시 여당은 차기 전당대회 준비를 위해 관리형인 ‘김희옥 비대위’를 출범시켰다.
최근 국민의힘이 구인난을 겪은 것처럼 그때도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김희옥 위원장에 앞서 비대위원장에 내정됐던 김용태 당시 의원은 당내 주류였던 친박(친박근혜)계 반발 속에 사퇴했다. 때문에 정치 경험이 없는 김 위원장이 들어왔다. 김 위원장은 검사 출신으로서 헌법재판소 재판관과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 동국대 총장 등을 역임했다.
2016년 8월 8일 60여 일간의 활동을 마무리 지을 때가지 김희옥 체제에 대한 평가는 혹평 그 자체였다. 총선 참패에 따른 위기를 극복하고 혁신과 화합의 기틀을 다지겠다며 야심차게 출범했지만 계파 간 갈등과 분열로 가득 찬 당내 현실의 벽을 뛰어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른바 공천 개입 녹취록 파동이 터지면서 당은 위기를 맞았는데도 김희옥 체제는 해결 능력이 부족했다. 친박계 중진 등이 20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한 예비후보에게 지역구 변경을 요구하는 내용의 전화통화 녹취가 공개돼 정치권이 발칵 뒤집어졌지만 비대위는 청와대 눈치만 본다는 지적을 받으며 회초리를 들지 못했다. 지나치게 몸 사리기를 하고 있다는 통렬한 비판이 꼬리를 물었다.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를 명분으로 내놓은 세비동결 방침은 ‘정치 쇼’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고, 대선후보 컷오프제 도입 발표 또한 ‘뜬금포’라는 비판에 휩싸였다. 인선단계에서부터 계파 문제로 진통을 겪으면서 절반 이상을 정당 경험이 없는 외부위원으로 채우고 출범한 비대위라 애초부터 기대는 무리였다는 얘기도 나왔다.
권위가 무너진 김희옥 비대위는 임기 내내 “한가해 보인다”는 지적에 시달렸고, “도대체 위기감이 없다”는 날선 비판과 마주했다. 대선을 불과 1년여 앞둔 상황에서 무기력한 비대위 활동이 드러나자 여권 지지자들은 “무기력” “무능”이라는 단어를 끊임없이 소환했다.
김희옥 위원장도 비대위 마지막 회의에서 “부족하고 잘못됐던 점은 제 부족함으로 인한 것이니 너그러이 이해해 달라”면서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김 위원장의 고백처럼 여당은 비대위를 내세우고도 제자리를 잡지 못했고 민심이 떠난 줄도 모른 채 그해 8월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복심 이정현 당 대표가 선출됐다. 그리고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졌고 박 대통령은 탄핵을 맞이했다.
20대 국회의원을 지낸 한 전직 정치인은 “반성과 쇄신의 시간이 닥치면 두리번거리고 머뭇거리면 안 된다”며 “그런데 국민의힘은 지금도 2016년처럼 눈치를 보면서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는데 매를 맞을 때는 화끈하게 맞고 가야 한다. 황우여 위원장은 김희옥 비대위 기억을 되살려 속전속결의 쇄신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황우여, 뇌관 건드릴까
‘황우여 비대위’는 당 대표 선출을 위한 6월 전당대회 개최 준비에 일단 전력을 기울일 가능성이 크다. 출범 취지에 맞게 ‘관리형’에 충실할 것으로 점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준비 작업이 만만치 않다. 전당대회 룰이라는 뇌관을 건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당 대표를 뽑는 경선 방식과 관련, ‘당원투표 100%’로 규정된 기존 전대 룰에 국민여론조사를 상당 부분 반영하도록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이 논의 과정에서 친윤·비윤계 간 갈등이나 영남-수도권 그룹 간 대립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룰을 놓고 집안싸움을 벌이면 민심이 더 떠나갈 수 있다는 우려도 뒤를 잇는다.
국민의힘은 2023년 3·8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념과 정체성이 같은 당심 반영 비율을 끌어올려야 한다”며 당원투표 70%, 일반국민 여론조사 30%였던 것을 당원투표 100%로 바꿨다. 그 당시 친윤계는 당 대표를 선출하는 만큼 당원들만 투표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정가에선 당 대표 선출에 ‘윤심’을 반영시키기 위한 행보로 받아들였다.
이번 총선에서 민심을 잃었다는 비판이 강하게 나온 후 국민의힘 내부에선 일반 국민여론조사를 일정부분 반영하는 방향으로 규칙을 재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게 나온다. 원외 조직위원장 160명은 4월 22일 윤재옥 권한대행에게 혁신 비대위를 꾸리고 당 대표 선거 때 여론조사를 반영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4·10 총선에서 드러난 정권심판론 민심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당이 국민 앞에 거듭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당 대표 선출에 민심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류인 친윤계를 중심으로 전당대회 규칙을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잖다. 역선택 우려가 적잖은 데다 당원의 뜻이 곧 국민의 의견이라는 이유에서다. 국민 여론조사를 30∼50%는 반영해야 한다는 비윤계 뜻과 대치된다. 친윤과 비윤 간 충돌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따로 선출하는 방식에 손을 댈지 여부도 관전 포인트다. 국민의힘은 과거 전당대회 득표 1위가 당 대표, 2위 이하는 최고위원을 맡는 집단지도체제를 운영하다가 2016년부터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따로 뽑았다. 국민의힘이 집권한 상황에서 현재의 여당 지도부 구성 방식이 수직적 당정 관계나 당정 갈등의 구조적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기도 해 이를 반드시 고쳐야 한다는 의견이 수면 위로 부상 중이다.
국민의힘 한 현역 의원은 “황 위원장이 화끈한 성격이 아니어서 전당대회 룰을 두고 분란이 커지면 그냥 덮고 갈 가능성이 있다”며 “덮고 가도 걱정이고 룰을 고쳐도 근심이 없는 것은 아닌데 결론적으로 여당의 간판인 대통령 지지율을 이른 시일 내에 끌어올리는 것이 당의 복원력 회복 열쇠”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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