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섭단체 요건 완화·한동훈 특검법 등 놓고 온도 차…향후 대선 과정 패권 다툼 벌어질 수도
4월 30일 서울시 여의도 조국혁신당 당사에서 당직자 대상 조회가 열렸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조국혁신당은 창당도 선거도 민주당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서 “우리는 민주당 위성정당이 아니었고, 앞으로도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조 대표는 “진보와 개혁 과제를 위해 민주당과 ‘확고한 협력 관계’이자 ‘생산적 경쟁 관계’임을 유념해 달라”고 당부했다. 향후 조국혁신당이 독자노선을 걸을 가능성을 부각시킨 발언으로 풀이된다.
원내 제3당으로 거듭난 조국혁신당은 제22대 국회가 개원하기 전 마쳐야 할 사전 조율이 몇 가지 있다. 국회 원내 교섭단체 기준 하향 조정, ‘한동훈 특별법’ 발의 관련 민주당 협력 여부 등이 주요 쟁점으로 꼽힌다. 조국혁신당 입장에선 앞으로 민주당과 관계설정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존재감이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총선 기간만 하더라도 조국혁신당과 민주당 관계엔 ‘협력’이라는 키워드가 따라 다녔다. 우군 관계를 형성하며 ‘윤석열 정부 심판론’을 함께 외쳤다. 하지만 총선 성적표가 나온 뒤엔 손익계산이 복잡해졌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은 과반의 거대 야당이 됐지만 비례대표 선거에서 더불어민주연합과 비슷한 성적을 낸 조국혁신당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면서 “민주당으로선 확실한 관계설정이 필요해졌다. 조국혁신당 입장에선 민주당에 꿇리지 않는 관계설정을 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 완성됐다”고 했다.
총선에서 분 바람은 ‘지민비조’였다. 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을 찍겠다는 야권 지지층 표심을 일컫는 단어였다. 한 호남 지역 정치권 인사는 “지민비조 현상은 민주당에게 힘을 실어주되, 민주당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조국혁신당에게도 분산해서 표를 던진 입체적인 민심을 표현한 단어”라면서 “이제는 국회 개원을 앞두고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관계 설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 심판을 원했던 야권 지지층은 민주당 외에 다른 정당에도 ‘분산 투표’를 했다. 야권 한 관계자는 “대선과 달리 총선에서는 유권자 한 명이 지역구와 비례대표에서 각각 한 표씩을 행사할 수 있지 않느냐”면서 “이번 총선 결과를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야권 압승이지만, 이면을 살펴보면 야권에게 표를 준 유권자들의 민심이 얼마나 복합적이고 입체적인지를 유추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이 관계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당권을 쥐고 있는 민주당 외에 다른 세력이 민주당을 견제하는 상태에서 야권이 우위를 점해야 한다는 민심이 투표 결과로 표출됐다”면서 “조국혁신당이 12석을 확보하면서 유의미한 견제세력으로 부상했다”고 했다. 그는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거시적인 노선은 비슷할 수 있어도 구체적인 행동 방향엔 상당한 차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야권 표심은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에 표를 효과적으로 분산했다. 민주당, 더불어민주연합, 조국혁신당 의석수를 모두 합하면 187석이다. 여기에 범진보성향으로 꼽히는 새로운미래와 진보당이 확보한 1석씩을 더하면 진보 성향 국회의원이 189석이다. 거대야당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민주당과 균형추를 맞추는 데 실패하면서 제22대 국회는 범진보진영 교통정리 이슈가 가장 큰 화두로 떠올랐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이 ‘교섭단체’로 거듭날지 여부가 관전 포인트다. 국회법상 교섭단체 기준은 20석이다. 단독으로 과반의석을 확보한 민주당만 동의한다면 교섭단체 기준을 완화할 수 있다.
조국 대표는 4월 29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원내 교섭단체가 맨 처음 만들어졌을 때 시점은 (교섭단체 요건이) 10석이었다”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을 선포하고 난 뒤에 1973년 20석으로 열렸다”고 했다. 조 대표는 “사실 이 20석이라는 기준은 유신 잔재”라면서 교섭단체 요건 완화 필요성을 역설했다.
5월 1일 황운하 조국혁신당 원내대표는 취재진과 만나 “(교섭단체 요건 완화는) 민주당이 총선에서 정치 발전 차원에서 공약으로 약속한 것”이라면서 “결자해지 차원에서 풀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교섭단체 요건 완화와 관련해 민주당은 총선 이후 발을 빼는 분위기다. 민주당 내부에선 교섭단체 요건 완화는 쉽지 않을 것이란 기류가 감지된다. 조 대표가 총선에서 ‘히트’를 치며 대권 잠룡군으로 진화했고, 조 대표가 잠재적으로 이재명 민주당 대표 경쟁자로 떠올랐기 때문에 ‘전폭적 협력’이 쉽지 않다는 판단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동훈 특검법’도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사이 조율이 필요한 사안이다. 조국혁신당은 총선 때 1호 발의 법안은 ‘한동훈 특별법’이 될 것이라고 공약했다. 민주당에선 ‘한동훈 특별법’과 관련해 부정적인 분위기가 흐른다. 민생 법안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조된 까닭이다. 여기다 가만히 있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체급만 올려줄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5월 3일 ‘친명’ 박찬대 민주당 의원이 단독 입후보해 신임 민주당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박 원내대표는 5월 1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한동훈 특검법 관련 발언을 했다. 박 원내대표는 “큰 틀에서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박 원내대표는 “한 전 위원장에 대한 우리 야당 의원들 생각은 거의 일치하지 않을까 생각된다”면서도 “조국혁신당이 1호 법안이라고 하는 데에는 우선순위 등 부분에 대해선 서로 논의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동훈 특검법을 놓고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사이 갈등 불씨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화장실을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총선 전엔 우군이던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총선 이후엔 갈등 리스크 중심에 서 있다. 4월 25일엔 이재명 대표와 조국 대표가 ‘고량주 회동’을 가지며 대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거대 야권을 대표하는 두 당대표는 2시간 30분 동안 만찬을 진행하며 공동법안 및 공동정책 추진, 상시 회동을 통한 소통 지속 등 방안에 합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 대표가 만난 것은 최근 정가 일각에서 불거진 갈등설을 진화하기 위한 차원으로 읽힌다. 이 대표와 조 대표가 만난 뒤에도 ‘미묘한 힘겨루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조국혁신당은 대정부 투쟁의 선명성을 전면에 내걸었다. 하지만 과반 의석의 민주당은 강경 노선 일변도의 행보는 정치적 리스크가 크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관계설정과 관련해 “처음엔 부분 협력 부분 경쟁을 하다가 나중에는 전면적인 경쟁관계로 돌입할 것”이라면서 “대권 경쟁을 앞두고 헤게모니 쟁탈전이 벌어지면 혈투가 펼쳐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채 교수는 “조국 대표가 만만치 않은 경쟁자로 떠오를 것이고 최후의 승리자가 될 가능성도 빼놓고 볼 수 없다”면서 “조국 대표가 사법 리스크를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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