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규 대세론’ 비토 나오면서 본격 눈치싸움…박대출 성일종 등 거론되는 가운데 추경호 급부상
제22대 국회 제1야당 첫 원내사령탑으로 ‘찐명’ 박찬대 전 최고위원이 선출됐다. 민주당은 5월 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4·10 총선 당선자총회를 열고 22대 국회 첫 원내대표를 뽑는 선거를 실시했다. 이날 선거에는 박찬대 전 최고위원만 단독 입후보해 무기명 찬반 투표가 진행, 과반의 지지를 얻었다. 찬반 구체적 득표수는 공개되지 않았다.
박찬대 신임 원내대표는 수락연설에서 “원내대표에 당선돼 기쁜 마음보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의 무게감, 국민들이 주신 숙제를 잘 풀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다. 그러나 어려운 숙제라도 171명의 힘과 지혜를 모은다면 능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22대 국회가 실천하는 개혁 국회가 될 수 있도록 신발 끈 꽉 매고 있는 힘껏 뛰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투표 전 정견발표에서는 “일하면서 싸우는 민주당, 행동하는 민주당이 돼 국민께서 정치 효능감을 느끼도록 하겠다”며 “책임 있는 국회 운영을 위해 법사위와 운영위를 민주당 몫으로 확보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초 원내대표 후보군으로 김민석 총선 상황실장, 서영교 최고위원, 김병기 전 수석사무부총장, 김성환 인재위원회 간사, 김영진 전 당대표 정무조정실장 등이 꼽혔지만 출마의 뜻을 접으면서 사실상 박 원내대표 추대 형식을 갖추게 됐다. 정가에선 친명계가 ‘박찬대 원내대표’로 교통정리 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재명 대표 의중도 박찬대 원내대표에 실렸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친명계로 분류되는 한 당선인은 “이재명 대표와 박찬대 원내대표는 지난 대선 민주당 경선 캠프에서부터 손발을 맞춰왔다. 이후 당대표와 최고위원으로도 함께했다. 이 대표가 최근 당내에서 가장 믿고 의지하는 의원이라는 평가가 많다”며 “22대 국회 초반이 중요하다. 주요 상임위원회 배분부터 시작해, 각종 특검법과 개혁입법 등을 신속하게 진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이 대표의 뜻을 가장 잘 알고, 개혁의지가 있는 원내대표가 필요하다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관심은 박찬대 신임 원내대표 카운터파트너로 누가 선출되느냐로 쏠리고 있다. 국민의힘도 신임 원내대표를 5월 3일 뽑기로 예정했다. 하지만 4월 30일 당 원내대표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회의를 통해 9일로 미뤘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변경 사유에 대해 “당선자 총회에서 후보의 정견과 철학을 알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초선 당선인들을 중심으로 선관위에 같은 요청이 다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5일 후보 등록을 받고, 닷새간 선거운동을 거쳐 9일 새 원내대표를 선출할 계획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이 원내대표 선거를 미룬 이유가 ‘구인난’ 때문이라는 얘기가 적지 않다. ‘친윤’ 체제를 구축하려 했는데, 당 안팎에서 비토 목소리가 나와 차선으로 믿고 맡길 후보를 찾느라 고민에 빠졌다는 내용이다.
처음에는 ‘찐윤’ 이철규 의원이 22대 국회 첫 원내대표로 출마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이 의원은 공식적으로 출마 의사를 밝힌 적은 없다. 다만 4월 28일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어떤 상황이 되면, 할 사람이 없으면 누군가는 악역을 담당해야 할 것이고 할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하면 된다”고 말해 출마의 뜻을 간접적으로 내비친 것으로 해석됐다.
유력 후보군으로 거론된 4선 김도읍 의원과 3선 김성원 의원 등이 원내대표 불출마 선언을 하며, 이 이원이 단독 추대되는 형식이 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렸다. 여권 한 관계자는 “이철규 의원은 윤 대통령의 후광을 업은 ‘찐윤’이다. 이 의원이 원내대표 선거에 나선다면 대통령실과 교감이 있었다고 해석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원내대표 선거에 이 의원 경쟁자로 출마하면 윤 대통령에 맞서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 22대 국회 시작부터 ‘비윤’ 이미지가 굳어질 수 있는데 누가 출사표를 던질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당 안팎에서 ‘이철규 대세론’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최근 연이은 선거 패배 책임에서 친윤계와 이 의원이 자유로울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 실제 이 의원이 당 사무총장으로 공천을 주도했던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와, 당 인재영입위원장 및 공천관리위원을 맡은 4·10 총선 모두 국민의힘 참패로 끝났다.
김태흠 충남지사는 5월 1일 자신의 SNS에 “총선 내내 인재영입위원장·공천관리위원으로, 총선 직전엔 당 사무총장으로 활동한 의원의 원내대표설이 흘러나오지 않나, 자숙도 모자랄 판에 무슨 낯으로 원내대표설인가”라며 “그렇게 민심을 읽지 못하고 몰염치하니 총선에 대패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친윤계로 분류되는 배현진 의원도 4월 30일 “이철규 의원이 불출마 선언할 것을 촉구한다. 또한 3선 이상 중진 의원들께서 어려운 길이라고 사양마시고 적극 나서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더 이상 민심을 등지고 지탄받을 길을 일부러 골라가지 말자”고 호소했다.
당내 논란이 거세지자 대통령실도 거리두기에 나섰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5월 3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국민의힘 원내대표 선출 관련해 “(윤 대통령이) 의심 살 일은 하지 마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 후 이철규 의원이 원내대표 불출마로 가닥을 잡았다는 전언이 쏟아졌다. 이 의원은 5월 2일 ‘원내대표 출마 고심’을 묻는 기자 질문에 “내가 무슨 결정 장애냐. 왜 고심하느냐”며 “내 의지는 이미 진작에 확고히 서있다. 다만 내 생각을 표현하지 않은 것일 뿐”이라고 신경질적 반응을 보였다. 이어 ‘출마 결정’에 대해 묻자 “그런 거 어떤 것도 없다는데 왜 자꾸만 그렇게 강요하나”라며 “내 말이 다른 걸로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말을 못하는 것이다. 이해해 달라”고 덧붙였다. 원내대표에 출마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 발언으로 받아들여졌다.
일정이 연기되고 가장 유력한 후보가 사실상 출마를 포기하는 등 원내대표 선거가 새 국면을 맞이하자, 당내 본격적인 눈치 싸움이 시작됐다.
3선 송석준 의원이 포문을 열었다. 송 의원은 2일 기자회견을 통해 “총선 패배의 원인은 어느 한 사람의 책임이 아닌, 국민적 신뢰를 저버린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며 “철저한 반성과 성찰을 통한 분골쇄신의 노력으로 당의 환골탈태 변화와 혁신을 이뤄낼 각오를 갖고 있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공개적으로 출마 의사를 밝힌 첫 사례다.
송 의원이 물꼬를 트면서 다른 중진 의원들의 출마 선언도 이어질 전망이다. 하마평에 올랐던 4선 이종배 박대출 의원과 3선 성일종 추경호 의원이 출마를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도읍 의원과 김성원 의원 등이 불출마 의사를 번복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추경호 의원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추 의원은 2일 “지금은 드릴 말이 없다”면서도 “더 생각해 보겠다”고 여지를 남겼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출마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했다. 추 의원은 윤석열 정부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를 지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추경호 의원이 계파색이 옅다고 하지만 윤석열 정부 국무위원으로 일했기 때문에 윤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잘 이해하고 있다. 당정 간 소통에도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22대 국회 첫 해는 여야가 강 대 강으로 대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추 의원이 전투력이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찐윤’ 이철규 의원이 원내대표에 출마하지 못한다 해도 결국 신임 원내대표는 ‘친윤계’ 인사가 맡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번 원내대표는 총선 참패 분위기를 수습하고, 190석이 넘는 범야권과 맞서야 한다. 민주당은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방송3법·양곡관리법·간호법 및 김건희 특검법 등 재입법을 예고하고 있어, 이를 막아내야 한다.
야권 관계자는 “22대 국회 국민의힘 첫 원내대표는 범야권의 거센 공세를 직접적으로 막아서야 한다. 그렇다고 여당이 명분과 정당성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레임덕에 빠진 윤석열 정부와 함께 진흙탕에 빠질 수 있다”며 “비윤계 의원이 이런 ‘독이 든 성배’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 결국 돌고 돌아 친윤계에서 자원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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