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민심, 타협 없다” 민주당 포문에 국민의힘 반발…김진표 법제-사법 분리안 통과 가능성은 낮아
#‘사실상의 상원’ 법사위
총선 직후 여야는 법사위원장 자리를 두고 신경전을 시작했다. 포문은 민주당이 열었다. 홍익표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는 4월 17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법사위원장은 다수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맡는 게 맞고 그게 이번 총선의 민심”이라며 “운영위도 역시 다수당이 책임지는 게 맞다”고 말했다. 홍 원내대표는 “미국은 상·하원 상임위원장 모두를 다수의석을 가진 정당이 다 가져간다”며 “그야말로 책임정치”라고 덧붙였다.
다음날인 18일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서 “법사위뿐만 아니라 중요한 상임위들을 좀 더 갖고 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얘기하는 의원들이 많다”며 “공식적으로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의원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민주당은 특히 법사위원장에 대해서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입장이다. 박찬대 신임 민주당 원내대표는 5월 6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법사위원장 자리를 반드시 가져오겠다며 “(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 180석의 거대 의석수를 가진 1당이었는데 운영위·법사위를 양보하다 보니 법사위원장이 의견 자체를 상정하지 않으면 국회법으로 돌파할 방법은 패스트트랙밖에 없었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발끈했다. 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는 4월 17일 페이스북에 “법사위를 다시 민주당이 가져가겠다고 하는 것은 여당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오만함의 발상이며, 입법 폭주를 위한 모든 걸림돌을 제거하겠다는 무소불위의 독재적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윤핵관’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5월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법사위와 운영위 독식 선언도 문제다. 행정부와 입법부 간 견제도 중요하지만, 국회 내 여야 균형도 중요하기에 법사위원장을 국회의장과 다른 소속으로 임명해 온 관례는 이러한 취지를 반영한 것”이라며 “4년 전 21대 국회 개원 당시 민주당은 법사위를 비롯한 여러 상임위를 독식했고, 그 결과 상당 기간 국회는 공회전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고 적었다.
여야가 공방을 벌이는 이유는 법사위의 막강한 권한 때문이다. 법사위는 법무부·법제처·감사원 소관 업무, 헌법재판소 사무, 법원·군사법원의 사법행정, 탄핵 소추, 체계·자구 심사 등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 특히 체계·자구 심사권은 법사위의 핵심 권한으로 꼽힌다. 체계 심사는 법안의 위헌 소지나 다른 법률과의 충돌 여부 등을 살피는 절차다. 자구 심사는 법률 용어를 다듬는 단계다. 법사위는 제출된 법률 문구가 정확하고 이해하기 쉽게 서술됐는지 따진다.
이 체계·자구 심사 권한 때문에 법사위는 다른 상임위의 권한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국회는 ‘상임위 중심주의’로 운영되고 있다(국회법 제36조·제37조). 각 상임위는 국회법에 따라 의안(법률안·예산안·동의안 등)을 심의·의결할 권한을 가진다. 원칙적으로 다른 상임위는 관련 위원회 자격으로 의견을 제시할 수 있지만, 해당 상임위 결정을 뒤집을 수는 없다. 본회의는 상임위에서 올라온 법안을 표결만 한다.
그러나 법사위는 체계·자구 심사권을 통해 다른 상임위의 법안 통과 과정에 개입할 수 있다. 위원회 중심주의와 충돌하는 지점이 있는 셈이다. 각 상임위를 통과한 법률안은 본회의에 오르기 전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를 받는다.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법안은 본회의에 오를 수 없다. 법사위가 ‘소국회’ 또는 ‘사실상의 상원’으로 불리는 이유다.
이를 우회하는 방법으론 ‘안건신속처리제도(패스트트랙)’이 있다. 그러나 처리 과정이 지난하다. 안건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려면 재적 의원 과반수가 서명한 동의서를 의장에게 제출하거나 상임위 소속 위원 과반수가 서명한 동의서를 해당 상임위원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동의서가 제출되면 곧바로 무기명 표결이 시작된다. 표결에서 재적 의원의 또는 상임위 재적 위원의 5분의 3 이상이 찬성해야 패스트트랙 법안으로 지정된다. 지정된 법안은 상임위 심의(180일 이내),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90일 이내), 본회의 부의(60일 이내)를 거쳐 자동 상정된다. 최장 330일이 소요된다.
#법사위 쟁탈전의 역사
여야는 매 국회마다 법사위원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줄다리기를 했다. 15대 국회까지는 원내 1당이자 여당이 법사위원장직을 가져갔다. 노태우·김영삼 정부 때 여당과 원내 1당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16대 국회 들어서 상황이 변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원내 1당은 야당인 한나라당(국민의힘의 전신)이었다. 16대 국회 법사위원장 자리는 1당인 한나라당이 가져갔다.
노무현 정부 시기인 17대 국회부터 법사위원장 자리는 원내 2당이 가져가도록 하는 관행이 생겼다. 국정 운영의 균형을 고려한 관행이었다. 하지만 법사위원장직을 차지하려는 다수당의 시도는 끊이지 않았다. 18대 국회 때 다수당인 한나라당은 법사위원장 자리를 가져가려 했다. 그러나 결국 2당인 민주당(더불어민주당 전신)에서 법사위원장을 배출했다.
19대 국회에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은 원내 1당이 된 다음 다른 상임위원장 자리를 넘겨주는 조건으로 법사위원장 자리를 요구했다. 이는 관철되지 못했다. 협상 끝에 민주통합당(민주당 전신)이 법사위원장 자리를 가져갔다.
20대 국회에서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원내 1당 자리를 확보했다. 민주당 계열 정당이 맡아왔던 법사위원장 자리를 새누리당에 양보하는 대신 국회의장직을 요구했다. 그 결과 민주당은 국회의장직을 확보했고, 새누리당은 법사위와 운영위를 가져갔다.
문재인 정부 시기인 21대 전반기 국회 때 다수당인 민주당은 18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모두 가져갔다. 당시 국민의힘은 민주당에 항의하는 뜻으로 모든 상임위원장을 포기했다. 이를 두고 민주당 역시 ‘의회 독재’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었다. 이후 민주당은 20대 대선(2022년 3월 9일)·8회 지방선거(2022년 6월 1일) 등의 선거에서 연달아 패했다.
21대 후반기 국회에서는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 의원이 맡기로 합의됐다.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이 위원장이 됐다. 민주당은 김 위원장과 국민의힘이 법사위 파행을 만들어 법안 통과를 지연시켰다고 주장한다. 민주당이 추진한 노란봉투법, 간호법, 방송법, 양곡관리법 등의 법안이 법사위 문턱에 걸려 처리가 지연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민주당에선 ‘법맥경화’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민주당이 법사위원장 자리를 두고 타협할 수 없다고 못 박은 것은 소위 ‘이채양명주’ 특검과 무관하지 않다. 이채양명주는 이태원 참사, 해병대 채 상병 외압 사건, 양평-서울 고속도로 의혹,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및 주가조작 의혹 등의 줄임말이다. 민주당은 22대 국회 때 특검 등을 통해 이 5가지 사건을 규명하면서 국정 주도권을 쥐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원활히 다루기 위해선 법사위원장 자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저지할 마땅한 수단이 없어 난감해하는 분위기다. 국회법은 본회의 무기명 투표를 통해 각 상임위 구성원 중에서 위원장을 선출하도록 정한다(국회법 제41조·제17조). 과반 의석을 확보한 민주당이 밀어붙이면 모든 상임위원장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막을 방법이 없다. 새 원내대표가 선출되면 전략을 수립할 예정”이라고 했다.
민주당이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상임위원장 선출을 강행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상임위원장은 1992년 14대 국회 때부터 의석수에 따라 배분하는 관행이 있었다. 민주당은 21대 전반기 국회 때 모든 상임위를 가져가고 상임위 배분에 반발한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본회의 도중 퇴장하면서 ‘반쪽 개원’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야당 몫인 국회부의장 자리도 공석으로 유지됐다. 주요 법안 처리 때마다 ‘야당 패싱’ 논란이 일었다.
#법사위 개혁 약속 깨지나
역대 국회에서 법사위를 두고 여야가 파행을 거듭하자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권을 개정하려는 시도가 나왔다. 2006년 주호영 의원은 이 권한을 폐지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18~20대 국회에서도 유사한 취지의 개정안이 나왔다. 이 같은 개정안은 법사위에 회부된 이후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2021년 7월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21대 국회 정상화에 합의했다. 특히 법사위원장 자리는 전반기 2년은 민주당이, 후반기 2년은 국민의힘이 맡기로 했다. 법사위 개혁도 약속했다. 윤호중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와 김기현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체계·자구 심사를 제한하기로 약속했다. 21대 국회에서 여러 의원이 앞서의 법안과 유사한 내용의 개정안을 냈다. 현재 통과된 법안은 없다.
김진표 의장은 4월 16일 체계·자구 심사를 분리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체계·자구 심사에 관한 사항은 신설되는 국회 법제위원회에서 담당한다. 나머지 법무부·법원·헌법재판소 등과 관련된 업무는 사법위에서 담당하도록 했다. 김 의장의 법안이 통과되면 현재의 법사위의 힘은 약화한다. 여야가 위원장 자리를 두고 대립할 이유가 사라진다.
김 의장의 개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낮다. 법사위 내부에서조차 반대하는 기류가 높다. 법제위에서 체계·자구 심사를 하게 되면 국회의 입법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법사위가 심사를 하지 않게 된다면 법체계가 엉망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법사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의 법안 심사는 완전하지 않다. 정부에서 올라오는 법안이 막히면 의원 입법으로 요청이 들어온다. 이 경우 예산, 부처 간 협의나 예산도 조정되지 않은 법이 거의 무조건 이견 없이 통과된다. 반대 측 의견이나 다른 의견은 고려되지 않는다. 다른 상임위에 뭐라고 하면 법사위에서 알아서 하라고 한다. 체계·자구 심사 권한만으로는 보완할 수 없는 경우다. 여러 이견을 종합해 최종 조정하는 역할을 법사위에서 한다.”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김진표 의장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의) 통과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며 “(김 의장이) 해외 순방이 끝나고 돌아오면 직접 설득에 나서실 것”이라고 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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