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배우자 처벌하는 규정 없어…법조계 “적극 수사 후 불기소” 관측
이원석 검찰총장이 대내외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사건에 대해 ‘신속 수사’를 거듭 언급하고 있다.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에 특수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들을 충원해 힘을 실어주는 한편, 취재진에게는 “신속하고 엄정하게 수사하겠다. 지켜봐 달라”며 수사 의지를 거듭 내비치고 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 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을 놓고 2023년 연말 갈등이 불거졌던 만큼, 이번 수사가 ‘검찰의 반란’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원칙론자인 이원석 검찰총장이 ‘결과를 정해놓지 않고 시작하는 수사’를 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하지만 법리적으로 대통령의 배우자를 처벌하는 규정은 없기 때문에, 적극적인 수사를 하되 소극적인 법적용을 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검찰총장 “수사 결과 지켜봐달라”
이원석 검찰총장은 5월 7일 서초동 대검찰청 출근에 앞서 만난 기자들에게 “오로지 증거와 법리에 따라서만 신속하고 엄정하게 수사하고 또 처분할 것”이라며 “앞으로 수사 경과와 수사 결과를 지켜봐주길 부탁드린다”고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에서 “특검 무마용 수사”라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는 “추후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이에 앞선 2일 이원석 검찰총장은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와의 정례 보고 자리에서 전담수사팀 구성과 신속 수사를 지시했다. “증거와 법리에 따라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사하여 진상을 명확히 규명하라”라고 지시한 것. 이후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김승호)에 공정거래조사부 김경목 검사(사법연수원 38기), 범죄수익환수부 권영주 검사(40기), 반부패3부 안성민 검사(41기) 등 특별수사 검사 3명을 파견했다. 모두 이명박 전 대통령,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굵직한 사건을 경험했던 검사들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원석 총장이 털고 가겠다는 의지가 상당하다’는 평이 나오는 대목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총선 이후 민주당을 중심으로, 검찰개혁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검찰 조직을 위해 김건희 여사를 수사해야만 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며 “검찰총장의 임기가 4개월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예민하다는 이유로 더 이상 묵혀두지 않고 원칙대로 수사하겠다는 의지가 드러난 것 아니겠냐”고 귀띔했다.
대통령실 안팎에서 여러 말들이 나오는 이유다. 신속 수사 지시 이후 대통령실의 공식적인 입장이나 인사 움직임이 전혀 없기 때문에 수사 방향을 큰 틀에서는 대통령실과 공유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검찰이 시점이나 속도를 자기 마음대로 치고 나간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검사 출신으로 윤석열 캠프에 근무했던 한 법조인은 “5월 검찰 인사설이 총선 전만 해도 얘기가 나왔었는데 지금은 그런 얘기가 전혀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수사에 대해 어느 정도 조율은 이뤄졌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면서도 “다만 검찰이 수사 도중 소환 시도나 압수수색 등으로 치고 나갈 경우 다시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고 관측했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원래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 당시에도 문제가 되지 않았던 도이치모터스 사건을 취임 후 빠르게 털어내기를 원했지만 시간을 끌었던 것은 이원석 검찰총장”이라며 “결국 본인이 제대로 털어내지 못한 것을 임기 종료 전 끝내겠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원본 확인부터 시작하겠다는 검찰
검찰은 논란이 된 영상의 진위여부부터 확인하겠다는 방침이다. 논란이 된 영상을 촬영한 재미교포 최재영 목사와 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한 인터넷 매체 서울의소리 측에 원본 영상을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최 목사가 손목시계에 내장된 초소형 카메라로 촬영했고, 전달된 명품 가방은 서울의소리가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상과 가방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동시에 편집·발췌본이 아닌 최 목사와 김 여사가 나눈 전체 대화 내용을 들여다보겠다는 취지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백은종 대표와 최 목사를 조사한 뒤 이르면 5월 중 김 여사에게 출석을 통보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건희 여사를 고발한 서울의소리 측은 윤 대통령이 통일운동가인 최 목사를 대통령 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으로 위촉할 권한이 있는 만큼 직무 관련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처벌 가능성이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청탁금지법에는 공직자의 배우자를 처벌하는 조항이 명시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직무와 관련해 배우자가 금품을 받은 사실을 알고도 이를 제대로 신고하지 않은 공직자 본인을 처벌하는 규정만 있다.
검찰 출신으로 특수 사건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조항만 보면 대통령이 처벌을 받아야 하는데, 이를 적용하려면 대통령이 선물을 받은 사실을 사전에 알고도 묵인했어야 하고 아예 몰랐다고 하면 청탁금지법 적용은 어렵다”며 “법리적으로 처벌이 불가하다고 보고 적극적 수사 후 불기소하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이를 입증하려면 대통령과 영부인의 휴대전화와 컴퓨터 등을 모두 압수수색해야 하는데 물증도 없이 이게 가능하겠냐”고 덧붙였다.
특검 필요성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배우자 처벌 조항이 없더라도 대통령 부인도 예외 없이 수사해야 한다는 모습을 보여주되, 법리적인 한계를 지적하는 수사 결과로 마무리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도이치모터스 의혹 사건도 함께?
일각에서는 중앙지검 형사1부에서 진행 중인 명품백 수사가 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검사 최재훈)에서 진행 중인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 사건과 연결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현재 검찰은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에 대한 2심 판결에 따라 향후 수사 방향을 결정한다는 방침인데 2심 판결은 8월 중 나올 것으로 보인다.
김건희 여사에 대한 소환조사 역시 두 사건을 합쳐서 한꺼번에 처리하는 방식 등이 거론되는 대목이다. 대통령 부인을 검찰 포토라인에 여러 차례 서게 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만큼 명품백 사건과 도이치모터스 사건을 합쳐 한 차례 소환해 ‘망신’을 주고 불기소로 마무리하는 그림이다.
앞선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정치인에게는 본인이나 가족이 검찰 포토라인에 선다는 것 자체가 큰 망신이자 정치적 리스크”라며 “김건희 여사가 검찰 포토라인에 서서 국민들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윤석열 정부가 가장 큰 리스크를 털어내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 아니겠냐”고 내다봤다.
이원석 검찰총장과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 조직의 존폐가 위기라는 얘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이원석 검찰총장은 검찰과 윤석열 정부 모두를 위하는 선택을 해야 하는 게 쉽지 않아졌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며 “이를 염두에 두고 풀어나가려 할 것이고 중간에 변수가 발생한다면 ‘검찰을 위한 선택’을 하려 하지 않겠냐”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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