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조차 없는 낙후한 교도소로 유명…한국 경찰, 교도소에 탈옥 가능성 경고했지만…
‘김미영 팀장’으로 악명이 높았던 박 씨는 과거 도피생활을 이어가다 2021년 10월 검거됐다. 경찰은 필리핀 수사당국과 공조해 현지에서 박 씨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지만 2년 넘게 국내 송환이 이뤄지지 못했다.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로 도주한 범죄자들은 현지에서 검거돼 국내로 송환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보통 현지에서 추가 범죄를 저지른다. 일종의 ‘보험’인데, 필리핀 현지에서 지은 범죄 행위로 형을 선고받아 수감되면 국내 송환이 지연되기 때문이다. 필리핀 현지에서 검거된 이후 한국 송환이 임박하면 조력자에게 본인 관련 다른 현지 사건을 신고하라고 지시하는 사례도 많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 추산 필리핀 현지 교도소에 수감 중인 한국인은 80여 명으로,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국내 송환을 피하려 현지에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다.
이들 가운데에는 현지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며 탈옥을 시도하려는 노림수를 갖고 있는 이들도 많다. 이런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경찰은 외교부를 통해 필리핀 교도소에 이미 두 차례나 박 씨의 탈옥 가능성을 경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씨가 수감돼 있던 필리핀의 카마린스 수르 교도소는 낙후한 시설로도 유명하다. 필리핀에서도 시설 노후 정도가 가장 심각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해당 교도소 수감시설에는 CCTV조차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보니 탈옥 사실을 즉각 확인하는 게 불가능하고 탈옥을 인지한 뒤에도 탈옥 시점이나 경로를 특정하기 어렵다.
박 씨는 철저하게 탈옥을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필리핀 현지에서 인신매매와 불법고용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박 씨는 재판을 받기 위해 2023년 11월부터 카마린스 수르 교도소로 이감됐다. 이감 소식을 접한 한국 경찰이 12월에 바로 탈옥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를 전달했을 만큼 허술한 교도소였다.
경찰이 주목한 또 한 가지는 카마린스 수르 교도소에 함께 수감돼 있는 신 아무개 씨(41)의 존재였다. 신 씨는 사기 등의 혐의로 인터폴 적색수배 중인 인물인데 이미 2017년 9월에도 필리핀에서 호송 중 탈주한 전력이 있다. 탈주 성공 경험이 있는 신 씨가 박 씨를 도와 함께 탈옥할 가능성에 주목한 것이었는데, 실제로 박 씨는 신 씨와 함께 탈옥했다.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가 한국 범죄자들의 도피처가 된 결정적 이유 가운데 하나도 이런 현지 교도소의 허술한 관리 감독 탓이다. 교정시설 보안이 철저하지 않아 탈옥이 용이하다는 점을 악용하는 범죄자들이 많은 것.
대표적인 필리핀 교도소 탈옥 사건은 이미 드라마를 통해 소개된 바 있다.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카지노’의 실제 모델인 ‘마약왕’ 박왕열이다. 국내에선 ‘사탕수수밭 살인사건’으로 알려진, 2016년 10월 필리핀 바콜로시 외곽 사탕수수밭에서 한국인 남성 3명이 살해된 사건의 범인이다. 피해자는 모두 머리에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결국 박왕열은 한 달 만에 현지 경찰에 붙잡혀 살인죄로 수감됐지만 2017년 3월 탈옥했다. 그러다 다시 필리핀 수사당국에 체포됐지만 2019년 10월 탈옥했고 2020년 9월에 체포됐다. 필리핀 교도소 수감 생활과 도주 생활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박왕열은 마약 불법 유통에 손을 대며 ‘마약왕’이라 불리게 됐다. 현재는 필리핀 법원에서 단기 57년, 장기 60년 형을 받고 수감 중이다.
이번에 필리핀 교도소에서 탈옥한 ‘김미영 팀장’ 박 씨 사건에는 또 다른 영화적 요소도 있다. 바로 그가 전직 경찰이라는 점이다. 박 씨는 2012년부터 필리핀에 콜센터를 개설하고 ‘김미영 팀장’이라고 사칭하며 수백억 원을 가로챈 1세대 보이스피싱 조직의 총책이다. 이들 조직은 ‘김미영 팀장’이라는 이름의 문자메시지를 불특정 다수에게 대량으로 보낸 뒤 자동응답전화(ARS)로 대출 상담을 하는 척 접근해 피해자 개인정보를 빼내 돈을 가로챘다. 밝혀진 피해액만 80억 원으로 총 피해 추정 금액은 무려 400억 원에 달한다.
박 씨는 경찰관으로 근무하다 2008년 뇌물수수 혐의로 해임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재직 당시 서울경찰청 소속 사이버수사대에서 근무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당시 수사 노하우가 보이스피싱 조직을 만드는 데 악용됐다.
경찰은 2013년 11월 당시 34세이던 2대 총책 김 아무개 씨를 검거하는 데 성공한다. 충남 천안동남경찰서는 김 씨 등 28명을 구속하고 백 아무개 씨 등 1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 과정에서 전직 경찰인 총책 박 씨의 존재가 드러났고 박 씨 등 조직의 주요 간부들은 필리핀에서 잠적해 도피생활을 시작했다.
박 씨는 8년여의 도피 생활 끝에 2021년 10월에 검거됐다. 경찰은 필리핀 코리안데스크, 현지 수사기관과 공조해 마닐라에서 남동쪽으로 약 400km 떨어진 거주지에서 박 씨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박 씨는 가명을 2개나 사용하는 등 치밀하게 도피생활을 이어왔지만, 경찰청 인터폴국제공조과가 수집한 첩보를 바탕으로 필리핀 코리안데스크는 박 씨를 집요하게 추적해 피의자 동선 등 주요 정보를 확보했다. 코리안데스크는 한인 관련 사건을 전담하는 현지 경찰 부서인데 한국 경찰이 파견을 나가 도피사범 송환, 범죄수사 등을 공조한다. 필리핀에는 2010년 처음 설치됐고 2015년에는 베트남에도 설치됐다.
박 씨가 탈옥하면서 현지 경찰도 검거에 주력하고 있지만 코리안데스크 등 한국 경찰도 다시 수사력을 집중할 계획이다. 필리핀 교도소에서 탈옥하는 한국 범죄자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한국 경찰과 필리핀 경찰의 공조로 대부분 다시 검거되고 있다.
전동선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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