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안후이성(安徽省) 허페이(合肥)시가 주최하는 루양배는 2013년 창설됐다. 이후 매년 개최되어 오다가 2019년 코로나로 인해 한동안 중단되었다가 올해 다시 시작된 국제 대회다. 중국이 주최하는 대회로는 유일하게 혼성페어 방식으로 진행된다. 남녀가 한 팀이 되어 여자기사가 돌을 가린 뒤 착수는 ‘흑 여자→백 여자→흑 남자→백 남자’의 순서로 하게 된다.
주최 측이 초청하는 이번 대회 한국 대표로는 박정환-최정 9단과 이창호-박지은 9단 팀이 출전했다. 최정은 1회 대회 때 유창혁 9단과 팀을 이뤄 준우승을 차지했었고, 5회 때는 조한승 9단과 함께 우승을 합작한 바 있다. 이창호는 4회 때 권효진 6단과 팀을 이뤄 준우승을 차지했었고, 5회 때는 오유진 5단과 함께 준우승을 차지했었다. 박정환과 박지은은 첫 출전.
이 밖에 중국에서는 커제-위즈잉, 양딩신-저우홍위, 리쉬안하오-리허, 뤄시허-장쉬안이 출전했고, 일본은 이치리키 료-후지사와 리나, 다카오 신지-셰이민이 초청받았다.
박정환과 최정은 국제 페어대회의 단골 파트너다. 2016년 엘리트마인드게임 혼성페어전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일본이 주최하는 페어월드컵에서는 2018년, 2019년, 2022년 우승을 합작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대회 여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8강에서 만난 양딩신-저우훙위와의 대국은 AI(인공지능)로부터 중반 일찌감치 회생불능 판정을 받았으나 역전에 성공했고, 4강전 커제-위즈잉과의 대국도 중반 한때 승리 확률 3%를 딛고 거둔 어려운 승리였다.
중국 리쉬안하오-리허와의 결승전은 오히려 쉬웠다. 이번 대회 들어 처음으로 백을 쥐었고(중국 덤은 7집반이라 백이 유리하다는 평이 많다) 초반 우하 공방에서 우위를 확보한 다음부터는 일방적인 흐름이었고 특별한 긴장감도 없었다. 불과 122수 만의 불계승. 결국 박정환-최정 팀은 중국 최강 3팀을 차례로 물리치고 최종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대국이 끝난 후 박정환은 “원래 페어로 두는 것을 좋아해 연습도 많이 했다. 페어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둔 덕분에 우승할 수 있었던 것 같다”는 소감을 전했다. 또 최정은 “지금까지 페어 대회 중에서 이렇게 강한 선수들이 참가했던 건 처음 같다”며 “그래서 더 재미있게 잘 둘 수 있었다”고 전했다.
루양배 우승 상금은 20만 위안(약 3800만 원), 준우승 상금은 15만 위안(약 2800만 원)이다.
[승부처 돋보기] 제8회 루양배 한중일 명인 페어전 결승전
흑 리쉬안하오-리허(중국) 백 박정환-최정(한국) 122수끝, 백 불계승
[장면도] 중반의 초입에서
박정환-최정 조가 어려운 승부 끝에 결승에 올라왔다면 리쉬안하오-리허도 8강전에서 이창호-박지은 조에 다 진 바둑을 뒤집고 올라왔다. 피장파장이랄까. 백이 약간 앞선 가운데 맞은 중반의 초입. 흑이 1로 젖혀왔는데 여기서 다음 몇 수가 사실상 승부를 갈랐다.
[실전진행1] 백6, 비수 같은 수
백2의 단수에 무심코 나간 흑3이 이 바둑의 패착이라 해도 무방한 수. 단수에 돌이 나간 것은 당연해 보이는데 무엇이 문제였을까. 박정환의 다음 백6이 비수 같은 수. 흑은 응수가 끊겼다.
[참고도1] 안성맞춤의 끊음
백1에 흑은 2로 연결할 수 없다. 백3의 단수에 이은 5가 안성맞춤의 끊음. 우측 흑 4점이 잡힌다.
[실전진행2] 백, 실리가 크다
결국 백1에 흑은 바로 응수하지 못하고 2로 손을 돌렸는데 이렇게 되면 백3으로 흑 2점이 백의 수중에 들어가 버렸다. 이 그림은 우변 백의 실리가 커서 흑의 실패.
[참고도2] 아직 긴 바둑
‘괴로우면 손 빼라’는 바둑 격언대로 백1에 흑은 2로 손을 돌리는 게 좋았다. 4까지 상변에 맛을 붙여둔 다음 흑8까지 이 그림이라면 아직 긴 바둑이었을 것이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