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빛 쫓아 유리창·전광판 등에 ‘다닥다닥’…한강 깨끗한 탓? “이상기후 영향” 분석도
#한강 주변 도심 ‘팅커벨 대란’
동양하루살이의 몸길이는 18~22mm지만 날개가 50mm로 몸보다 훨씬 커 ‘팅커벨’이라는 별칭을 가졌다. ‘하루살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성충의 수명은 몇 시간에서 최대 14일까지로 매우 짧은 편이다. 5~6월과 8~9월 등 1년에 두 번 우화(유충이 날개가 있는 성충이 됨)하는데, 보통 봄에 우화하는 개체가 몸집이 크다. 게다가 번식을 위해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 습성이 있어 사람들이 혐오감을 느낄 수 있다. 때문에 늦봄·초여름 사이 불편 민원이 많이 접수된다.
최근 한 엑스(X·옛 트위터) 이용자는 “지금 경의중앙선 열차 상황”이라며 동양하루살이 수십 마리가 전철 차량 내부 벽과 조명, 광고판 등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 그는 “정체불명의 벌레들이 열차 안에 가득하다. 그래서 그런지 좌석이 많이 비어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일부 누리꾼들은 “저 칸은 못 탈 것 같다” “쟤네(동양하루살이)는 무임승차 해버리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동규 고신대 보건환경학과 교수는 “전철 내부의 불빛을 보고 달려든 것 같다”면서 “동양하루살이는 주광성(빛의 자극에 반응하는 성질)을 지닌 개체이기 때문에 밝은 빛을 따라다닌다. 지상부를 달리는 경의중앙선 전철의 경우 전동문이 열릴 때 날아서 들어오거나 승객들의 몸에 붙어서 들어올 수 있다. 또한 운행이 다 끝난 밤에 청소를 위해 문을 열어 놓을 때 불빛을 보고 들어왔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한강 주변의 번화가 역시 피해를 호소하는 상황이다. 2023년부터 동양하루살이 대량 출몰로 민원이 많이 접수됐던 서울 성동구에는 ‘핫플’로 떠오른 성수동이 위치해 있다. 성수동에는 수많은 상가들이 밀집해 있고, 밤에도 밝은 간판이 많아 시민들은 벌떼같이 달라붙은 동양하루살이를 보고 불쾌감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동양하루살이가 주로 서식하는 한강 주변은 상수원 보호구역이라 살충제를 쓸 수도 없는 상황이다.
성수동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30대 남성은 “지난해에도 (동양하루살이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는데 올해는 정도가 더 심해진 것 같다. 가게 간판도 끄고 물도 뿌려보고 했지만 수많은 벌레들을 퇴치하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간판을 켜면 새까맣게 모여든 동양하루살이 때문에 손님들이 혐오감을 느끼고, 반대로 문을 닫고 간판을 끄면 손님들이 영업하지 않는 줄 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불만을 호소했다.
국립생태원 박영준 선임연구원은 “동양하루살이는 나방처럼 빛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다. 이들은 특히 눈이 큰 편에 속하기 때문에 더욱 빛에 민감하다. 게다가 자연이었다면 교미를 위해 암컷을 찾아다녔을 수컷들이 간판 등에 가만히 앉아 자연스럽게 암컷을 만나게 된다. 불빛이 많은 도심이 번식에 유리한 환경이 된 상황”이라고 설명하면서 “다만 동양하루살이는 익충에 가까우며, 입이 퇴화해 먹이를 먹지도 않고 사람을 물 수도 없기 때문에 전염병을 옮기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성동구청 관계자는 “민원이 들어오는 대로 현장 방역하고 있다”면서 “인력 등 한계가 있어 (시민들이) 가능하다면 가게의 조명을 줄이고, 동양하루살이가 붙어있는 곳에 스프레이로 물을 뿌려 직접 해결을 해준다면 좋을 것 같다. 당연히 사람의 손 등이 닿기 어려운 곳에는 최대한 방역 인력을 투입하고 있으며, 민간위탁업체를 동원한 방역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서울 송파구 잠실경기장, 용산 전자상가 등 한강 주변의 도심 속에서 동양하루살이 떼가 출몰하면서 환경 당국도 방역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최근 수도권에서 동양하루살이가 대거 발생하는 원인과 친환경적인 방제 방법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활동 범위 넓어진 이유가…
전문가들은 동양하루살이의 개체 수가 점점 증가하고 활동 반경이 넓어지는 이유로 한강의 수질 개선을 꼽는다. 동양하루살이 유충은 2급수 이상 되는 깨끗한 물에서 살기 때문에 수생태계가 건강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지표종으로 꼽힌다. 한강 주변 도심에서 동양하루살이 대량 출현은 사실 한강이 건강하다는 증거로 생태학적으로는 환영할 일인 셈이다.
하지만 도심 내 ‘팅커벨 대란’이 이상기후에 따른 결과라면 말이 달라진다. 일각에서는 더운 날씨로 대기 움직임이 활발해져 동양하루살이가 더 멀리 이동하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표면이 가열되면 공기 흐름이 대기 상층으로 치솟는 현상이 잦아진다. 이런 상승기류가 동양하루살이의 이동 범위를 넓히는 데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2024년은 1973년 이후 역대 가장 더운 4월로 기록될 정도로 이른 더위 때문에 이들의 대량 출몰이 예년보다 앞당겨졌다. 향후 이상기후 현상이 지속하면 서울 한복판에서도 곤충과 벌레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동규 교수는 “동양하루살이 활동 범위가 넓어진 원인에는 기후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면서 “4월에 기온이 상승하면 수온도 상승하기 때문에 물속에 있는 유충들의 대사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성장 속도가 빨라진다. 이에 따라 동양하루살이 성충들이 조기 출연을 하게 된다. 게다가 4월 하순부터 5월 초순 사이에 강풍이 많이 불었다. 동양하루살이는 몸에 비해 날개가 과도하게 큰 ‘Week flyer(비행 능력이 낮은 개체)’이기 때문에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흩어지게 된다. 그래서 한강에서 다소 떨어진 도심부까지 퍼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분석했다.
앞으로 기후 변화에 따라 동양하루살이의 출현 시기가 더욱 빨라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립생태원 박영준 선임연구원은 “현재 동양하루살이 개체 수 증가의 원인에 수온이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이들의 우화 주기를 이르면 4월 말부터로 보는데 기존에는 6월에 최고로 많이 나왔다. 2023년도 그렇고 2024년에도 (동양하루살이 성충이) 5월이 피크라고 한다면 조금 앞당겨진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더 빨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동양하루살이의 주광성을 이용한 친환경 트랩을 설치하거나 수목을 심어 자연 생태계와 도심 불빛을 분리하는 방법을 권장한다. 이동규 교수는 “동양하루살이의 경우 모기에 쓰는 살충제 농도의 100배 이상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어느 국가에서도 약재 방역은 하지 않는다”면서 “한강변에 강한 불빛을 내는 트랩들을 설치해서 물리적인 방제를 할 수 있다. 동양하루살이는 더 밝은 빛을 쫓아다니기 때문에 불빛이 있더라도 더 밝은 트랩으로 모인다. 사실 그러한 방법 외에는 (시민들이) 호스로 물을 뿌리는 방법이 가장 적합하다”고 말했다.
박영준 선임연구원은 “한강 하구는 동양하루살이의 주서식지 근처이기 때문에 자주 출현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유충이 한강 모래 근처에 있다가 우화해서 나오기 때문”이라면서 “네온사인 빛으로 유인하는 트랩을 설치한다거나 하는 방법도 있지만 미관상 좋지 않고 비용도 많이 든다.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한강 주변에 수목을 많이 심어 빛을 차단하는 방법이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면 탄소 저감 효과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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