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 중립 탈피·원내대표 단독 출마 이례적…이재명 연임 가능성에 일각에선 “퇴행” 시선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에 뛰어든 민주당 후보들은 앞다퉈 의장의 중립 의무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6선의 추미애 당선인은 총선 다음날인 4월 11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국회의장은 중립이 아니”라며 “혁신 의장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일찍이 있었다”고 말했다.
우원식 의원(5선)도 4월 25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삼권분립 훼손에 단호히 맞서겠다. 국회법이 규정한 중립의 협소함도 넘어서겠다”며 “22대 전반기 국회에서 민주당의 국회가 엇박자를 내거나 민주주의 개혁과 민생 문제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민심의 회초리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당 최대 계파인 ‘명심(이재명 대표의 마음)’을 얻기 위한 행보로 풀이됐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국회의장 중립 의무가 훼손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국회법 제20조의2는 “의원이 의장으로 당선된 때에는 당선된 다음 날부터 의장으로 재직하는 동안은 당적을 가질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당적을 떠나 각 당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다만 국회의장의 중립 의무는 명문화돼 있지 않다.
이 법안은 2002년 16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당시 이만섭 국회의장은 “의사봉을 칠 때마다 한 번은 여당을 보고 한 번은 야당을 보며 마지막으로는 국민을 바라보며 양심의 의사봉을 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 의장은 국회법 개정 후 탈당해 의장직을 수행했다.
5월 5일 김진표 국회의장은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에서 “그나마 당적이 없으니까, 또 법상 중립의 의무를 부여하니까 그래도 (의장의) 조정력이 생긴다”면서 “만약 한쪽 당적을 계속 가지고 편파된 행정을 하면, 편파된 의장의 역할을 하면 그 의장은 꼭두각시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5월 16일 의장 후보에는 예상을 뒤집고 우원식 의원이 선출됐다. 우 의원은 “민주당에서 제시하는 방향이 국민의 뜻과 함께 반드시 국회에서 실현되고, 그것이 대한민국의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며 “국회의장으로서 국민에게 옳은가 옳지 않은가를 기준으로 22대 국회 전반기를 잘 이끌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원내대표 선출 과정도 이례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친명계 박찬대 의원이 단독 입후보한 다음 과반 득표를 얻어 새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김성환 의원, 서영교 최고위원 등 10명이 물망에 올랐다. 그러다 후보로 거론되던 의원들이 차례로 불출마를 선언했다. 물밑에서 박 원내대표로 교통정리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5월 3일 실시된 투표에는 22대 국회 민주당 당선인 171명 중 170명이 참석했다. 득표수는 공개되지 않았다.
민주당 계열 정당 역사상 원내대표 단독 출마는 이번이 두 번째다. 19년 전인 2005년 정세균 전 총리가 단독 입후보해 만장일치로 선출됐다. 당시 열린우리당(민주당 전신)은 국가보안법 등 ‘4대 입법’ 처리 실패 후폭풍으로 리더십 공백 상태에 있었다. 정 전 총리는 당을 수습하기 위해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대승을 거둔 상황에서 단독 입후보한 박찬대 원내대표와는 상황 차이가 있다.
국회의장 후보와 원내대표가 친명계로 정해진 상황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 연임 가능성은 높아지고 있다. 민주당에서 당대표 연임은 1995~2000년 새정치국민회의(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처음이다. 이 대표는 우 의원이 의장 후보로 당선된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아직 임기가 네 달 가까이 남았기 때문에 깊이 생각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연일 이 대표 연임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주를 이룬다. 정청래 수석 최고위원은 5월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뉴시스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저는 이재명 대표 연임 찬성입니다”라고 밝혔다. 정 최고위원은 “이 대표는 말도 못 꺼내게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제가 당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으며 이재명 대표를 설득하고 권유하는 데 총대를 멜 생각”이라고 밝혔다.
박지원 민주당 당선인은 5월 13일 BBS불교방송 ‘전영신의 아침저널’에서 “(이 대표의)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에서도 당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전직 총리 등 상당한 중진들과 얘기를 해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다. 이런 얘기를 한다”며 “이재명 대표가 국민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채진원 경희대학교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교수는 최근 정가에서 거론되는 뉴노멀에 대해 과거 삼김시대 보스정치와 유사하다고 꼬집었다. 새로운 표준으로 거론되는 사례들이 오히려 과거를 연상케 한다는 의미다. 과거 삼김은 강력한 지역기반과 리더십을 바탕으로 당을 좌지우지했다.
채 교수는 22대 총선에서 친명계가 대거 공천됐다는 점이 보스정치 현상이라고 봤다. 채 교수는 “이 보스정치를 극복하기 위해 지난 30년간 정당을 민주화하고 공천 과정을 투명하게 만들었다”며 “노무현 대통령은 이 보스정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민 참여 경선도 했고, 당정분리도 했고, 본인이 탈당하기까지 했다. 지금은 그런 개혁의 흐름과 정반대로 퇴행하는 모습”이라고 했다.
반면 김민하 시사평론가는 과거 삼김시대와는 다르다고 봤다. 이재명 대표 리더십은 삼김에 비해 훨씬 약하다는 이유에서다. 22대 총선 공천, 국회의장 경선, 원내대표 경선, 당 대표 연임 등의 사안에서 내부 잡음이 지속해서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김 평론가는 “약한 리더십이기 때문에 더 요란스러운 것이다. 당장 국회의장도 (이 대표의) 마음대로 된 건지 의문”이라며 “이 대표 리더십은 사법리스크 등에 좌우되는 면이 있다. (의원들이) 그 점을 생각할 것이다. 과거 총재들(삼김)하고는 다른 지점”이라고 짚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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