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 발생·시신 발견 등 범죄 악용 우려…도로 멀고 면적 작아 재개발 사업성 저조한데 강제 철거 명령 어려워
흔히 ‘옥인1구역’으로 불리는 이곳은 2007년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됐다가 2016년 지정이 해제됐다. 경복궁과 서촌마을, 한양도성에 인접한 점을 고려해 서울시가 2018년 ‘역사문화형 도시재생’ 지역으로 선정하고 일부 환경개선 사업을 벌였지만 높은 경사, 좁은 길폭 탓에 획기적 변화는 어려웠다. 지난 15일 현장에서 만난 종로구 환경미화원 A 씨는 “쓰레기 수거차량을 댈 수 없는 곳들이 있어 리어카(수레)를 대놓고 치우거나 직접 걸어 올라가 쓰레기를 빼내고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 전철 1호선과 의정부경전철 환승역인 경기도 의정부시 회룡역 앞. 북적이는 보행로 옆 일명 ‘외미마을’에 시커먼 폐가들이 늘어서 있다. 손만 대도 부서질 듯 낡고 녹슨 단독주택들. 주변을 지나다 폐가를 들여다 본 시민 B 씨는 “집 안 수풀이 집보다 훨씬 높게 자랐을 정도로 오래 방치된 것 같은데 참 흉물스럽다”고 말했다. 시민 C씨는 “제법 큰 전철역과 상가,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인 곳에 이런 빈집촌이 있는 게 말이 안 된다”며 “재개발이 어렵다면 차라리 지방자치단체가 마을을 통째로 사들여 공원이나 광장을 만드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약 2만㎡(6000평) 규모인 외미마을은 2015년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돼 시공사 선정까지 마쳤지만 조합원 갈등 문제가 봉합되지 못해 2019년 구역 지정이 취소됐다. 2018년 기준 세입자 포함 약 90가구가 거주했지만 현재는 55가구로 줄어들었다. 의정부시는 총 16채가 빈 집 상태임을 확인하고 ‘폐·공가 출입금지’ 안내판을 붙인 상태다.
수도권 도심 곳곳의 빈집촌이 이렇다 할 대책 없이 방치되고 있어 지역사회의 골칫덩어리가 되고 있다. 농·어촌을 제외한 순수 도시지역에서 1년 이상 아무도 살지 않아 방치된 빈 집은 2022년 서울 2869호, 경기 1650호, 인천 2985호로 집계됐다.
서울은 종로구 사직동·창신동·충신동 일대, 서대문구 현저동, 성북구와 도봉구의 일부 노후주택가에서 빈집촌을 볼 수 있다. 인천은 미추홀구 주안동·용현동이 대표적으로, 중구·부평구·동구·서구 등에도 각각 수백 호가 있다.
빈집촌 가운데 재개발 등 정비사업 가능성이 있는 곳은 손에 꼽힌다. 대부분 정비사업이 추진됐다가 무산된 경우 또는 구역 면적 자체가 작아 처음부터 재개발을 꾀하기 어려운 경우에 속한다.
정비사업 바람이 불었던 곳도 다시 동력에 불이 붙기는 쉽지 않다. 재개발 관련 각종 규제가 완화되고 있지만 수년 새 건설물가가 2~3배 뛰면서 전반적인 재개발 사업성이 악화된 탓이다. 자연스레 재개발에서 마음을 떼는 주민이 늘면서 사업 동의 조건 확보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빈집촌 재정비 업무를 맡고 있는 한 수도권 지자체 관계자는 “현재 시공비 등이 많이 상승해 정비사업을 벌인다고 해도 수익이 남을 상황이 아니어서 주민들도 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집을 비워둔 소유주들이 정비사업을 원하더라도 구역 전체 소유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 요건을 채우지 못해 지자체에 정비사업 제안신청을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들이 할 수 있는 조치는 일부 빈집을 매입해 고쳐 임대주택으로 내놓거나 소규모 주차장·공원을 조성하는 환경개선사업 정도에 국한된다. 서울시는 2018~2023년 빈집 500채를 매입해 임대주택 1500호, 지역생활기반시설(SOC) 120개 조성을 목표로 사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9월 30일 기준 빈집 총 413채를 매입해 임대주택 341호 공급, SOC시설 61개 조성 실적을 냈다.
장기 방치된 빈집촌은 지역 내 환경훼손을 넘어 범죄나 일탈행위 장소로 악용될 위험이 있어 주민들의 우려가 크다. 지난해 6월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의 한 재개발 구역 빈집에선 10대 여고생과 성인 남성 등 3명이 숨진 채 발견된 일이 있었다. 지난해 9월 경기 광명시에서는 20대 남성이 헤어진 여자친구를 폐가 밀집지역으로 끌고 가 폭행한 사건도 일어났다.
‘폐가 체험’ 동호회나 유튜버 등 인터넷 방송인이 빈집에 불법 출입하거나 촬영하는 일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관할 지자체나 경찰이 일일이 현장 단속에 나서는 것도 쉽지 않다.
기존 ‘소규모 주택 정비법’에 따르면 지자체장은 붕괴 위험이나 범죄 발생 우려가 큰 빈집에 대해 정비나 철거 명령을 내릴 수 있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다. 하지만 집주인들의 거센 반발과 재산권 침해 논란 등에 부딪혀 실제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거나 철거를 집행하는 경우는 손에 꼽는다.
전문가들은 빈집촌 대부분이 큰 도로에서 벗어나 있거나 규모가 중소형인 점을 주목해 더 파격적인 정비사업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빈집들에 대해 최대한 자체 개발을 유도해야 하는데 큰 길과 접도될 수 있도록 주변 지역과 합쳐 통합 개발하지 않는 이상 소규모 필지는 개발이 거의 불가능하고 다른 대책도 거의 없을 것”이라며 “주변에 문화재 구역이나 자연경관 구역 등이 있어 용적률·층수 등 각종 규제가 중첩됐던 곳들도 많은데 규제를 풀고 인센티브를 크게 부여하지 않고는 정비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강훈 기자 ygh@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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