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서 우승하고파 KIA 입단…내 변화 도운 ‘비밀 선생님’ 시즌 끝나면 공개”
그는 항상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를 성적으로 보여줬다. 그러나 때로는 그 땀과 노력이 성적을 배신할 때도 있었다.
2021년 7월, 그는 LG 정찬헌과 일대일 맞트레이드 형식으로 트레이드돼 LG 유니폼을 다시 입고 나서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LG에서 남긴 성적은 189경기 타율 0.229 OPS 0.614였다. 2023시즌 종료 후 그는 구단에 방출을 요청한다. 그리고 그해 겨울 고향 팀인 KIA 타이거즈와 연봉 5000만 원에 계약하고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었다.
한때 리그를 대표하는 교타자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서건창 스토리다.
최고 정상에 있던 선수가 바닥으로 추락했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 절치부심했지만 야구는 그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야구를 그만둬도 이상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그에게 손을 내민 팀이 KIA였고, 서건창은 고향 팀에서 재기를 위해 몸부림쳤다. 그 결과 서건창은 올 시즌 부활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일부에선 ‘블록버스터급 반전’이라고 말할 정도로 서건창의 2024시즌 출발은 단단한 흐름으로 현재진행형이다.
5월 16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서건창을 만났다.
서건창이 LG에서 나왔을 때 키움 히어로즈의 일부 팬들은 그가 다시 히어로즈로 돌아오길 바랐다. 그가 히어로즈에서 재기에 성공하길 원했던 것이다. 실제로 키움의 고형욱 단장도 서건창과 계약에 적극적이었고, 선수 측에 공식 입단을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건창의 선택은 고향 팀 KIA 타이거즈였다. 당시 그 선택에 대한 배경이 궁금했다.
“가장 첫 번째는 내가 태어나고 성장한 광주를 홈으로 사용하는 팀이 KIA였다. 야구한 날보다 야구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광주에서 야구를 해보고 싶었다. 그동안 가족들이랑 오래 떨어져 지낸 터라 가족들이 있는 곳에서 야구를 하면 후회는 남지 않을 것 같았다. 두 번째는 아직 나한테 우승 반지가 없다. 상대 팀으로 KIA를 만났을 때 강팀이라는 생각을 했고, 이렇게 좋은 팀에서 같이 우승을 이룰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거라는 생각에 KIA를 선택했다.”
현재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는 KIA는 시즌 초반 나성범 황대인 임기영 박찬호 이의리 등 주축 선수들의 부상이 잇따랐지만 다른 선수들이 그 공백을 잘 메우면서 리그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선수가 서건창이다. 서건창은 선발과 교체 출전을 가리지 않고 타석에 들어서 제 역할을 해냈다.
“광주 생활이 조금은 편해진 것 같다.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팀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자고 생각했는데 때로는 결과가 좋지 않을 때도 있지만 일희일비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어디를 가나 야구는 똑같다고 생각한다. 그 안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으면 감사한 거고. 그래서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한다.”
서건창한테 야구는 늘 어려운 대상이다. 선수 생활 내내 야구와 희로애락을 반복하는 삶 속에서 성적이란 결과물이 자신을 흡족하게 만든 적이 많지 않았다고 말한다.
“다들 개인적인 목표가 높을 것이다. 그 목표대로 야구 성적이 뒷받침된다면 야구와 싸울 필요도 없다. 그래서 야구가 어렵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비시즌 동안 준비했던 것들이 경기에 잘 녹아들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이제 시즌 초반이 지났고, 중반을 향하면서 아직 풀어내지 못한 내 야구가 잘 나올 수 있을 것이라 믿고 가는 중이다.”
지난 4월 10일 광주 LG전에서 KIA는 8회말 역전승을 거두며 단독 선두를 지켰다. 당시 서건창은 9번 타순에 대타로 들어가 7회 볼넷으로 무사 1, 2루 기회를 만들어 1점 차 추격에 힘을 보탰다. 8회에는 3-4로 끌려가던 상황에서 동점 1타점 2루타를 터트려 KIA 팬들의 엄청난 환호를 이끌었다. 서건창은 경기 후 수훈 선수로 선정돼 팬들 앞에 섰다. 장내 아나운서와 인터뷰를 마치자 팬들은 서건창에게 응원가를 불러줬고, 서건창은 눈시울을 붉히며 관중석을 돌아본 후 팬들에게 두 팔을 들어 하트를 만들어 보냈다. 모처럼 서건창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핀 순간이었다.
“내가 다시 응원가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응원가를 KIA 팬들이 불러주니까 정말 힘도 나고 당시 감정이 많이 올라왔다. 내게 이런 느낌과 이런 기회를 갖게 해줘서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
서건창이 KIA에서 재기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이자 야구 전문가들은 그 배경을 파악하려고 애를 썼다. LG에서 힘든 모습을 보인 그가 어떤 점이 달라졌기에 KIA에서 부활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래서 선수에게 직접 그 이유를 물었다.
“일단 환경이 바뀐 게 가장 큰 요인인 것 같다. 바뀐 환경에서 좋은 감독님, 좋은 동료 선수들과 재미있게 야구하고 있는 게 큰 힘이 된다. 지난겨울 비시즌 동안 새로운 걸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아주 많은 연습량을 소화했다. 타격과 관련해서 여러 변화를 시도했고, 어느 정도 좋은 결과가 나왔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내 것이 되지 않았다. 이건 연습도 중요하지만 경기를 통해 계속 경험을 쌓아야 한다. 은퇴한 선배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은퇴할 때까지 야구가 어렵다고 말씀하시더라. 정체돼 있지 않고 기술적인 보완을 거듭하면서 내 걸로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서건창은 자신의 변화에 도움을 준 ‘선생님’이 있는데 지금 그가 어떤 분인지 밝히기보다 자신이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치른 다음 공개하고 싶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야수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타격폼에 변화를 준다. 그러나 변화를 준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성공과 실패라는 결과론으로 인해 아예 시도조차 못 하는 이들이 있다. 서건창은 이와 관련해서 더 이상 잃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상태라 새로운 걸 찾아야만 했다.
“타격폼에 큰 변화를 준 다음 스프링캠프를 소화하고, 시범경기를 치르면서 매 타석 불안한 마음으로 임한다. ‘이게 될까?’ ‘결과가 괜찮을까?’ 하는 두려움과 불안함이 혼재하기 때문이다. 그걸 극복할 수 있는 건 ‘결과’밖에 없다. 시즌 초반 몇 경기 치르면서 좋은 성적을 냈고, 내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기면서 좀 더 확신을 갖고 타석에 들어섰던 것 같다.”
한 해설위원은 서건창이 올 시즌 히팅 포인트를 앞으로 가져가면서 좋은 결과를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서건창은 이와 관련해서 “히팅 포인트라는 말 자체가 어렵고 위험한 표현”이라고 대답했다.
“선수마다 고유의 히팅 포인트가 있는데 다른 사람이 봤을 때는 히팅 포인트가 앞으로 온 것처럼 보이겠지만 선수한테는 가깝게 놓고 친 걸 수도 있다. 그래서 이건 표현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즉 선수가 보는 것과 다른 사람이 보는 시야의 차이가 크다. 내가 히팅 포인트를 몇 개 앞에 놓고 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일부러 그렇게 가져간 게 아니다. 즉 히팅 포인트를 앞으로 두려 한 게 목표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좋은 결과가 뒤따른다면 이런 설명도 맞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이 또한 부질없는 거라서 야구가 어렵다고 말하는 것 같다.”
서건창은 LG에서 보낸 2년여의 시간들이 자신과의 싸움이었다고 회상한다.
“내가 프로 생활 시작할 때부터 잘한 선수는 아니지 않았나. 정말 바닥부터 올라갔던 터라 바닥으로 내려갔을 때 특별한 감정을 느끼진 않았다. 그럼에도 때로는 자책도 많이 했고, 주위의 평가들에 힘든 적도 있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렇게 힘든 문제가 아니었는데 내가 많이 힘들어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 받아들이면 되는 일이었는데 왜 그렇게 힘들어 했을까 하는 아쉬움도 따른다.”
서건창에게 그동안 은퇴를 고민한 적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무리 힘들고 지쳤을 때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힘들 때는 ‘설마 앞으로 이것보다 더 힘들겠어’ 하는 마음으로 버텼다. 그런데 더 힘들어지기도 했다. 경험해보니 힘들 때는 그 힘듦을 지나치지 못한다. 그냥 내버려 두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다.”
서건창은 인터뷰 말미에 자신의 야구 인생을 야구 경기로 표현했을 때 7이닝을 지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KIA 팬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전한다.
“선수는 팬들 덕분에 즐겁게 야구하고 있다. 경기 때마다 야구장을 가득 채워주시는 팬들의 응원 덕분에 선수들도 힘을 내서 경기에 임하고 있다. 팬들이 보내는 격려와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시즌 마지막 무대에서 더 많은 기쁨을 느끼고, 더 많은 눈물을 흘렸으면 좋겠다.”
광주=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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