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고려대학교 내부 포털사이트에 ‘고대의 위기 상황에 대한 교수의 성명서’라는 제목의 글이 공개됐다. 고려대 평교수 140명의 서명이 담겨있는 이 성명서는 김재호 고려중앙학원 이사장에게 “취임 후 지금까지 고려대의 발전 방향과 비전을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성명서에서 학교법인을 향해 문제 제기하고 있는 부분은 크게 4가지다. ‘김 이사장은 지난 5월 고려중앙학원 이사장에 선임된 이후 지금까지 고려대의 발전을 위한 장기적인 구상과 구체적인 투자 계획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고대의료원에 의약품을 독점 납품했던 수창양행을 김 이사장과 그의 가족 구성원들이 소유하면서 수익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다. 법인은 자질과 능력을 갖춘 총장을 선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김병철 총장이 공약했던 학교발전계획의 실현 상태와 순수모금액 공개 및 자율권을 무시한 일방적인 교무행정을 개선하라’ 등이다.
특히 수창양행을 비롯한 고려대 수익사업업체와 김 이사장의 관계에 관한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김 이사장이 주주로 있는 수창양행은 고려대 의료원에 의약품과 의료물류를 독점으로 공급하던 도매업체다. 지난 6월 ‘병원이나 약국에 2촌 이내의 친족이 운영하는 도매업체는 거래할 수 없다’고 약사법이 개정되면서 의약품 도매는 (주)수창에게 넘기고 현재는 의료용품만을 독점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주)수창 역시 개정된 약사법 위반을 피하기 위해 상호만 변경된 회사로 김 이사장의 친인척이 운영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1996년 수창양행 설립 당시 지분 구조는 인촌기념회가 50%, 일민문화재단이 20%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기자가 확인해본 결과 현재는 김재호 이사장 외 2명이 회사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김 이사장 외 다른 2명도 김 이사장의 가족이라고 전해진다.
이처럼 수창양행을 비롯해 고려대와 관련된 각종 수익사업업체를 김 이사장과 그 친인척들이 운용하면서도 거기에서 나오는 수익금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는 전혀 밝히지 않는다고 교수들은 비난한다. 이 업체들의 수익은 법인에 귀속돼 고려대와 의료원의 발전에 사용돼야 마땅한데 김 이사장과 가족들이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성명서에 서명한 A 교수는 “다른 대형 병원들은 의약품 및 의료용품 도매업체로부터 연간 수백억 원의 기부금 형식의 투자를 받는다”며 “김 이사장이 소유한 수창양행은 고려대 의료원에 그러한 기부금을 내지 않고 있어, 학교법인으로 들어오는 투자금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수창양행을 비롯해 (주)수창, 스마트엠매니지먼트의 지배구조와 수익금 처리 내역 역시 구체적으로 공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명서에 이름을 올린 B 교수는 “구로병원 주차장 업체, 안암 및 안산 장례식장의 식당, 법인의 설계 및 관리를 독점적으로 수탁하는 업체 등 다른 수익사업업체들도 김 이사장과 관계있는 사람이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러한 수익구조를 효율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학교 발전도 어려워진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냈다.
그렇다면 성명서 발표 후 김 이사장과 김 총장은 어떤 입장일까. 성명서와 관련해 고려중앙학원 관계자는 “아직은 입장이 정리되지 않아 논의 중이다”라고 밝혔다. 총장 측에서도 논의 중이라고 말을 아끼면서도 “고려대에 재직하는 교수가 1600명이 넘는데 이번 성명서에 이름을 올린 교수는 150명이다”라며 “다른 교수들의 전체적인 의견도 들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고려대 학생과 단체 내부에서도 성명서 발표 이후 다른 목소리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성명서를 발표했던 교수들도 일단은 법인과 총장 측의 답변을 기다려본다는 입장이다.
A 교수는 “교수들이 학교의 위기를 타개하고자 공식적인 질의를 보냈으니 법인과 총장이 뭔가 대답을 내놓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그들이 내놓는 입장을 듣고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김 이사장과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은 지난 6월 고려대학에 들어온 기부금 227억 원을 재단 수입으로 처리해 편법 운용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또한 재단이 김 이사장이 회장으로 있는 종합편성채널 <채널A>에 25억 원을 투자한 사실도 공개돼 논란이 됐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