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화 유산은 대부분 조선시대에 집중돼 있다. 그것도 풍경화인 산수화 위주로 알려져 있다. 조선의 건국이념은 민본이다. 백성이 근본이라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미술에서도 사람을 중심에 두었을 것이다. 잘 보면 실제로 그렇다. 아직까지 제대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 조선 회화에서도 인물화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래서 인물화 제작 기법도 상당한 수준으로 발달했다.
인물화를 바라보는 생각도 뚜렷했다. 인물의 형상 재현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담아낸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그래서 살아있는 듯한 꼼꼼한 사실성을 바탕으로 은은하게 스며 나오는 채색 기법을 사용했다. 화면의 뒷면에 색을 칠해 앞으로 배어나오게 하는 배채 기법이 그것이다.
우리 미술사를 이루는 회화는 산수화가 가장 많고 그 다음 사대부들이 그린 문인화, 꽃이나 식물, 곤충 등을 다룬 화훼화, 동물을 주제로 한 영모화 등이 있다.
그런데 500년 역사에 비해 우리 회화는 양적인 면에서 빈약하기 그지없다. 작품의 크기가 작아 본격적인 작품으로 평가하는 데 무리가 따르는 것도 상당수다. 적지 않은 작품이 화첩(여러 그림을 모아 책으로 묶은 것) 형태로 완성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문적인 화가가 아닌 문인 사대부들이 심심풀이로 그린 것도 많다. 지금으로 치면 정치가들이 취미 삼아 그린 그림인 셈이다.
이에 비해 인물화는 화공으로 천시되던 전문화가의 작품이다. 작품의 완성도나 크기를 보면 미술사를 다시 써야 할 정도로 출중하다. 그런데 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일까.
많은 수의 인물화가 왕실의 행사나 사건을 기록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인물화 대부분이 초상화기 때문이다. 초상화는 감상보다는 특별한 쓰임을 위해 제작된 그림이었다. 유교의 핵심 중 하나인 제사와 관련해 왕실이나 양반집 사당, 서원 등에 모시기 위한 것이 대부분이었기에 예술 작품과는 별개로 보았다.
우리 화화의 기법이나 변천을 살피는 데 인물화 연구는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그런데 아직도 접근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왕실이나 문중의 사당 같은 특정한 장소에 있어서다.
이런 현실에 도전하는 작가가 이재선이다. 그는 전통 인물화기법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인물화를 개척하고 있다. 기법은 전통을 따르지만 구성이나 상황 설정은 서양화의 방법을 수용한다. 서양 인물화의 구성 어법인 배경을 통해 심리 표현에 능하다. 동서양 인물화의 방법을 혼합해 한국적 인물화를 목표로 뚝심 있는 작업을 보여준다. 치밀한 사실성을 바탕으로 정신을 담아내는 그의 인물화는 현대인의 다양한 생각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의 인물화가 소중하게 보인다.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
전준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