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게, 치열하게, 꾸준하게
오전 9시 30분 경기장 안은 초록색과 흰색이 섞인 경기복을 입은 어린이 참가자들로 붐볐다. 어린이들은 보호자의 손을 잡고 폴짝폴짝 뛰었다. 쉼 없이 재잘거렸다. 그러다 아는 얼굴을 보면 해맑게 웃었다. 웃음을 터뜨릴 때마다 자그마한 어깨가 춤추듯 들썩였다. 어린이들의 재잘거림과 웃음으로 경기장 안은 왁자지껄해졌다. 말 그대로 천진난만한 모습이었다.
경기도 구리시에서 온 박경민 군(11)은 “바둑을 시작한 지는 1년 넘었어요. 목표는 16강 진출”이라고 밝혔다. 이어 박 군은 “5월에 바둑을 좀 쉬긴 했어요”라고 덧붙였다. 박 군은 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을 통해 바둑을 처음 경험했고, 재미를 붙였다고 했다.
지난해 대회 일반부 우승자인 박시윤 군(10)은 “저는 원래 바둑대회를 많이 나갔어요. 이번에도 우승할 자신 있어요”라며 자신만만해했다. 박 군은 “바둑은 1학년 때부터 뒀어요. 방과 후 활동으로 바둑을 했는데 재밌었어요”라며 “사실 유단자로 나오고 싶었는데 바둑협회 단증이 없어서 다시 일반부로 나왔어요. 다음에는 유단자로 지원할 생각”이라고 했다.
전라남도 무안에서 온 초등학교 4학년생 안지원 군은 본선 진출이 목표라고 했다. 안 군은 “바둑을 두고 싶어서 참가했어요”라며 “공격하는 게 재미있어서 1학년 때부터 바둑을 뒀어요”라고 말했다. 안 군의 아버지 안창현 씨(44)는 “대회 참가를 위해 새벽부터 올라왔다.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는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게 해주려고 대회에 왔다”며 “8강까지 가면 좋겠는데 안 돼도 좋다”고 했다.
오전 10시 3분 개회식이 시작됐다. 개회식에는 김원양 일요신문사 대표이사 겸 발행인, 신상철 아시아바둑연맹 회장, 정봉수 (사)대한바둑협회 회장, 김삼배 한국유소년바둑연맹 회장, 유재성 심판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김원양 대표는 개회사에서 “바둑은 어릴 때 배워서 은퇴 이후 즐기면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된다”며 “(바둑을 통해) 논리력, 집중력, 기억력, 계산력을 향상하면 공부와 사회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이어 김 대표는 “대국 중에는 최선을 다하고, 대국이 끝나면 이긴 사람은 진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해 주고, 진 사람은 이긴 사람한테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자세를 보여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 대표의 당부에 참가자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정봉수 회장은 ‘세계로 미래로’라는 대회 슬로건에 관해 설명하며 “바둑을 통해 세계 인재가 돼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사고력과 집중력이 핵심역량이다. 이 두 가지를 바둑을 통해 잘 터득해서 10년, 20년, 30년 후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큰 인재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개회사가 끝나고 김원양 대표가 징을 울렸다. 대국이 시작됐다. 경기장 안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장난기 가득하던 어린이들의 눈은 프로선수 못지않게 진지해졌다. 흰 돌과 검은 돌로 바둑판을 채워나갔다. 다음 수를 생각할 때면 턱에 손을 괴었다. 수가 막히면 머리를 감싸 쥐었다. 손을 들고 심판을 찾는 어린이들도 있었다. 대국장 바깥에 있던 보호자들은 그 모습을 초조한 얼굴로 바라봤다.
대회가 무르익어가자 희비가 엇갈리기 시작했다. 승리한 아이들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패배한 아이들은 못내 아쉽다는 미소를 띠고 보호자에게 달려갔다.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꿈나무 저학년부인 노은호 군(9)은 “더 올라가면 좋았을 것 같은데 8강까지 가서 아쉬움은 남지만 그래도 괜찮아요”라고 했다. 노 군은 집 짓는 방법이 재미있어서 바둑을 꾸준히 두게 됐다고 했다. 좋아하는 프로 바둑 기사는 신진서 9단이다.
새싹부 고등반 우승자인 김수연 군(12)은 “우승을 해서 감사하고, 우승을 하게 도와준 분들께 감사드려요”라며 “함께 재미있게 바둑을 둔 친구들한테도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김 군은 “바둑은 머리를 쓰고 대마를 잡으면 역전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어요. 이번에도 역전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김 군의 아버지는 싱글벙글 웃으며 인터뷰하는 김 군을 바라봤다.
대회 중간에는 페이스페인팅, 인공지능 로봇체험, 프로기사 지도다면기 등의 이벤트도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자기 얼굴에 그림을 그리고, AI로봇과 바둑을 두고, 프로기사의 조언을 듣는 자리를 가졌다.
이날 대회장을 찾은 김채영 8단은 “바둑을 배우는 어린 친구들과 외국 친구들을 만나서 기쁘다. 이 대회가 글로벌한 대회라는 것을 느꼈다. 함께 사진도 찍고 다면기도 하면서 보람찼다”고 했다. 김 8단은 “일단 바둑을 재미있어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흥미를 잃지 않고 오래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어린이들이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대회 우승자 출신인 한우진 9단은 “오랜만에 이 대회에 왔다 재미있게 다면기를 한 것 같다. 이런 좋은 기회가 앞으로도 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 9단은 “후배들이 자신감 있게 바둑을 하는 게 중요하다”며 “실력이 빨리 늘지 않는다. 그래도 하루하루 열심히 하면 꾸준히 실력은 향상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강한 한국 바둑과 겨루고 싶어서
싱가포르, 중국, 일본,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대만 등 외국에서 온 참가자들도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아시아바둑연맹의 초청을 받아 한국을 찾았다. 대회 관계자는 외국 선수들이 예년과 달리 상당한 실력을 갖춘 것으로 파악된다고 귀띔했다. 대만의 경우 토너먼트를 거쳐 선발된 어린이들이 대회에 참가했다.
최강부에 이름을 올린 황푸젠 군(대만·12)은 “한국 대회의 경기가 강도 높다”며 “그래서 한국무대에 도전하고 싶어서 지원했다”고 밝혔다. 오전에 내리 3승을 거둔 황 군은 “예선전은 재미있었고, 도전적이었다”고 했다. 그는 신진서 9단이 좋다고 했다. 강한 바둑을 두기 때문이다.
베트남에서도 첫 참가자가 나왔다. 장 비엔 민 군(11)은 “강력한 친구들과 경쟁하고 싶어 대회에 참가했다”며 “강한 상대들을 만나 기분이 좋았다”고 밝혔다. 장 군은 최선을 다해 공격하는 바둑을 두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일본 나가요 토마 군(10)은 최강부에서도 실력자로 꼽힌다. 토마 군은 “목표는 4강이고, 가능하면 우승하고 싶다”며 “오전에 전승을 거둬서 기쁘고 해냈다는 느낌이 든다. 지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토마 군은 일본에서 활동하는 프로기사 홍맑은샘 씨의 문하다. 강한 바둑을 두지만 팬들에게는 친절한 시바노 도라마루 9단 같은 프로기사가 되는 게 토마 군의 목표다.
조별리그(더블일리미네이션)와 본선 토너먼트로 진행된 이번 대회 최강부에서는 대만의 천잉자 군(13)이 결승에서 오세현 군(13)을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현재 한종진 바둑도장에서 수학하고 있는 천잉자 군은 대만에서는 대만 바둑의 일인자 쉬하오훙 9단의 뒤를 이을 것으로 기대받는 유망주다.
한편 유단자부에서는 서규현 군(창원 교방초)이 결승에서 박원동 군(대청초)을 꺾고 정상에 올랐다. 서규현 군은 “우승해서 기쁘고 이번 우승을 계기로 더욱 정진하겠다”고 짧게 소감을 밝혔다.
이 밖에 고학년부에서는 김의준 군(현촌초)이, 저학년부에서는 유재현 군이 정상에 올랐다. 또한 새싹부 고학년 김수연(문지초), 샛별부 고학년 최윤우(개운초), 꿈나무부 저학년 조아인(연가초), 꿈나무부 고학년 황시윤(삼각산초), 샛별부 저학년 김민서(능곡초), 새싹부 저학년A 변성빈(반곡초), 새싹부 저학년B 한결(한여울초), 일반부 저학년A 김찬영(공도초), 일반부 저학년B 이서진(송원초), 일반부 고학년 이예준(어울초)이 각각 우승을 차지했다.
[결승전 승부처 돋보기] 흑 천잉자(대만) 백 오세현(한국·샘머리초등학교) 107수끝, 흑 불계승
최강부 우승을 차지한 천잉자 군은 대만에선 제2의 쉬하오훙으로 기대받고 있는 유망주다. 결승전도 불과 107수 만에 끝내 반짝반짝 빛나는 기량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한국 최고의 바둑대회에서 우승해 영광스럽다”는 천 군은 “오는 7월 대만에서 열리는 입단대회에서 프로기사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더 강해지기 위해 올해 한국의 한종진 바둑도장으로 건너온 천 군은 7월 열리는 대만 입단대회의 유력한 후보라는 게 스승 정찬호 사범의 귀띔이다.
정 사범은 천잉자를 두고 “수읽기가 무척 강하고 부분적인 맥에 밝다. 포석과 전투 등 두루 강한 기량을 보유하고 있어 앞날이 기대되는 유망주”라며 “당장 한국에서 뛰어도 연구생 1, 2조 정도의 실력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장면1] 백2, 무거운 수
흑1로 우변을 압박했을 때 빠른 안정을 꾀한 백2가 무거운 수. 다음 흑에게 A를 당해 답답해졌다. 백2로는 A나 B로 중앙을 향해 가볍게 행마하는 게 좋았다.
[장면2] ‘큰 곳’보다 ‘급한 곳’
백을 든 오세현 군은 대국이 끝나자마자 제일 먼저 백1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패착이라는 이야기. ‘큰 곳’이지만 ‘급한 곳’을 놓쳤다. 흑2의 치중이 통렬해서 백이 곤란해졌다. 흑8까지 전체 돌이 사활에 걸린 모습. 결국 이 백 대마가 잡히면서 이른 시기에 종국을 맞고 말았다. 백1로는 5의 곳에 젖혀 우변 대마를 보강해두는 것이 최선이었다.
유경춘 객원기자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