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으로 그려낸 ‘가구 위의 화룡점정’
우리나라에서 금속장식의 역사는 유구하다. 삼국시대의 금관, 귀걸이 등을 보면 그 세공 기술이 이미 높은 경지에 올라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금동투조화형’(金銅透彫花形) 장식이나 경주 천마총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관모 등을 보면 이미 통일신라시대에 장석을 만드는 전문적인 장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시대에 화려하고 세련된 금속장식 문화가 발달했다면, 조선시대 초중기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자연적인 아름다움이 강조되면서 실용성에 중점을 둔 장석 문화가 자리잡았다. 가령 목가구를 만들 때에도 장석이 화려한 꾸밈의 용도로 쓰이기보다는 경첩, 고리, 들쇠(반달 모양의 손잡이) 등 꼭 필요한 부분에 주로 기능적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목가구 등에서 장식성이 강조되고 여성 취향에 따른 금속장식이 유행하면서 세련된 장석 문화가 발전하게 되었다.
조선시대의 법전인 ‘경국대전’에는 공조와 상의원에 각각 4명의 두석장이 배속되어 일한 것으로 나타난다. 국가적 행사나 왕실에서 쓰이는 기물을 제작할 때에 금속장식 전문가인 두석장이 함께 참여하였고, 이들의 손끝을 거치며 기물의 품격이 한층 높아질 수 있었다. 영조가 계비인 정순왕후와 혼례를 치르는 가례 과정을 기록한 ‘영조정순왕후 가례도감의궤’에는 당시 기물 제작에 8명의 두석장이 동원된 사실이 기록돼 있다.
장석의 재료로는 주로 두석(황동)이 쓰였으며, 보다 화려하게 장석을 꾸미기 위해서 백동도 사용되었다. 또한 민간에서 목가구의 금속장식을 만들 때에는 철판을 쓰기도 했다. 특히 두석은 금과 은에 비해 값이 저렴하고 색상이 매우 아름다워 귀중품을 보관하는 함과 궤를 비롯해 왕실의 각종 장식용 기물을 제작하는 데 널리 사용됐다. ‘승정원일기’에는 제빈(여러 빈) 이하의 탈것(가마)은 두석으로 장식하였는데 색이 금과 같다는 내용도 기록돼 있다.
전통 장석의 제작 공정은 구리 합금 가닥을 두드려 펴서 정으로 쪼고 줄로 쓸고 다듬는 수공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주석이나 백동을 넣어 가열해 녹이고 이것을 망치로 두들겨 0.5mm 두께의 판철로 늘이고 면을 반듯하게 다듬는다. 여기에 본(밑그림)을 따라 작도와 정으로 오리고 줄로 다듬고 활비비(송곳으로 구멍을 뚫는 활 모양의 도구)와 정으로 문양을 새긴 뒤 사기분말을 묻힌 천으로 문질러 광택을 내 완성한다. “장석이 아름다울수록 두석장의 손은 거칠어진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긴 시간과 공을 들여 손품을 팔아야 하는 작업이다.
장석의 종류는 금속장식을 붙이는 물건에 따라 농장석, 궤장석, 의걸이(옷을 걸 수 있는 장)장석, 벼락닫이(위짝은 붙박이고 아래짝만 오르내려 여닫는 창문)장석, 모반(여섯 또는 여덟 모로 된, 음식을 담는 나무 그릇)장석, 전통장석 등으로 구분된다. 또한 장석의 문양으로는 나비, 박쥐, 붕어, 학 등 다산과 부귀영화, 수복강녕을 상징하는 동식물, 복(福)과 수(壽) 같은 문자, 기하학적 무늬 등이 쓰인다.
대표적인 장석 중 하나인 자물쇠의 경우에는 형태와 문양에 따라 귀자(貴字)쇠통, 비각쇠통, 거북장쇠통, 타래쇠통, 네모희자쇠통 등 다양하게 분류된다. ‘쇠통’이란 쇠로 만든 통을 지칭하는 말로 자물쇠를 뜻한다.
장석만으로는 하나의 완성품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과거에 두석장은 각종 기물을 만드는 소목장의 주문에 따라 기물에 맞는 장석을 특별 제작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거의 모든 목재 기물 제작에서 가장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장석이다. 기물의 기능에 맞게 들쇠, 경첩 등이 만들어지고 부착되어야 비로소 해당 기물이 완성품이 되기 때문이다. 두석장을 목가구에 ‘화룡점정’하는 장인이라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두석장은 1980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초대 보유자인 김덕룡 선생을 거쳐 현재 김극천, 박문열 두 명장이 보유자로 활동하며 작품 제작과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김 두석장은 통영 두석의 전통을 4대째 이어받은 토박이 장인으로 김덕룡 초대 두석장의 아들이기도 하다. 박 두석장은 전래되는 다양한 우리 비밀 자물쇠를 재현해 내 이름을 널리 알린 바 있다.
자료 협조=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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