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편익분석 타당성 두고 갑론을박…선심성 행정 재정 위기 초래 가능성 지적도
#원인은 ‘수원 군 공항 이전’ 갈등?
수원·화성 지역 최대 현안이자 갈등 사안인 ‘수원 군 공항 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지역 정치권과 지자체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3선에 성공한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수원을)은 차기 국회 1호 발의안으로 지난해 11월 김진표 국회의장(수원무)이 대표발의한 ‘수원 군 공항 이전 및 경기남부통합국제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 재추진을 예고한 상황이다.
반면 수원 군 공항 예비 이전 후보지인 화성 지역 정치권에서는 거부 목소리를 분명히 하고 있다. 5월 20일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화성갑)은 국회의원회관에서 정책 토론회를 열어 경기국제공항 건설의 실효성이 부족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수원시는 경기국제공항의 필요성이 검증됐다는 입장이다. 일반적으로 비용편익분석(B/C분석) 값이 1.0을 넘으면 사업의 타당성을 인정받는다. 수원시 소재인 아주대 산학협력단에서 2021년 수원시 의뢰를 받고 펴낸 경기남부 국제공항 항공수요 분석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경기남부 국제공항 건설사업의 B/C분석값은 2.043이다. 편익이 비용의 두 배를 넘는다는 뜻이다.
보고서는 여객 수요뿐만이 아니라 향후 반도체 항공화물운송수요 증가분을 고려해 B/C값을 산출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047년까지 세계 최대·최고의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조성하기 위해 총 622조 원을 투자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도체 수출만을 놓고 국제공항을 건설한다는 발상이 무모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도체 크기가 점점 소형화되면서 물동량의 증가를 기대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0년 항공화물 수출액은 2010년 대비 59.4% 증가했으나, 항공화물 물동량은 중량 기준으로 오히려 13.1% 감소했다.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장은 “항공 운임은 화물가액이 아니라 부피 아니면 중량을 산정해서 값을 매기기 때문에 물동량이 기준이 된다. 반도체가 아무리 비싸도 항공화물로서 화물 수송에 대한 수요가 막연히 증가한다는 식의 예측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인천공항에서 현재 반도체 수송과 관련한 물량을 안정적으로 소화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생산량 증가분을 파악하기 어려워 예측하기 조심스럽지만, 인천에서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선진국의 공급망 재편 전략으로 인해 반도체와 배터리 제조사들이 현지생산 전략을 채택하고 있는 점도 수요예측의 타당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비행기는 왕복 수요가 있어야 원활하게 취항하는데 수출 수요만 생각하면 쉽지 않다. 특히 국내는 화물 전용기보다는 여객기에 화물을 함께 싣는 경우가 많다”며 “반도체 하나만 보고 짓기에는 공항 인프라 건설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성현 경기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은 “처음부터 국제공항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수원 군 공항 이전 관련 반발이 워낙 심하니까 국제공항을 패키지로 추진하면서 시작된 얘기다”라며 “경기도는 근거리에 공항들이 많고 실제로 후보지로 거론되는 거점들이 인천, 김포, 청주국제공항과 불과 약 80km 반경으로 가깝다. 신공항 건설은 낭비”라고 지적했다.
화성으로 군 공항을 이전해 민·군통합공항을 만들겠다는 수원시와 별개로 경기도 차원에서도 공항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다른 점은 군 공항 이전과 상관없이 독자적인 민간공항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경기국제공항 조성은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핵심 공약이기도 하다. 2023년 6월 경기도는 민간공항 형태로 경기국제공항을 조성한다는 내용의 조례 개정을 진행하고 같은 해 9월 연구 용역에 착수했다.
경기도청 관계자는 “수원시는 민·군통합공항을 추진 중이기 때문에 정치권에서 공방이 벌어지고 있지만 도에서는 군 공항 이전을 배제한 민간국제공항 조성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별건”이라며 “현재 용역을 발주했고 타당성과 복수 후보지, 후보지에 대한 개발 구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홍근 경기도 의원은 “수요가 없는 공항을 선심성 공약에 따라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고 반박했다.
#국내 공항이 과포화 상태라는 문제
정치권은 특별법 제정을 통해 경기국제공항 예비타당성 조사(예타) 면제를 추진 중이다. 가덕도신공항과 대구경북통합신공항 등 상당수 국책사업들도 특별법 제정을 통해 예타를 면제받았다.
지역별로 대규모 건설사업을 중심으로 지역균형발전과 사업의 조기 추진, 지역경제활성화를 명분으로 특별법 제정을 밀어붙이면서 예타가 유명무실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타는 총사업비가 500억 원 이상이면서 국가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 원 이상인 대규모 재정 사업 등에 실시하는 타당성 검증 제도다. 예산 낭비를 방지하고 재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런데 나라살림연구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예타 면제사업은 총 163건으로 예타 심사대상 사업수인 108건을 훌쩍 뛰어넘는다. 예타를 통과한 사업수(97건)보다도 무려 66건이 많다. 사업비를 기준으로 보면 106조 원에 달해 같은 기간 예타를 통과한 사업의 사업비(80조 원)보다 26조 원이 더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 공항이 과포화 상태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국내에는 8개 국제공항(인천·김포·김해·제주·청주·대구·무안·양양)과 7개 국내공항(원주·군산·광주·여수·사천·울산·포항경주)이 있지만 인천과 김해, 제주 정도를 뺀 나머지 공항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 BBC 방송이 2009년 양양공항을 ‘유령 공항’이라 부르며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공항’이라는 뉴스를 내보낸 적이 있고, 무안공항은 ‘활주로에서 고추 말리는 공항’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대다수 공항이 B/C분석 실패로 매년 운영적자에 시달리고 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구교훈 회장은 “민간이든 국무총리 산하 국책연구기관들이든 모두 엉성한 수요예측을 한 것이 문제인데, 미래의 교통과 화물수송 수요를 과도하게 부풀리고 이를 근거로 B/C 분석을 하기 때문”이라며 “항공수요를 세밀하게 조사하지 않고 정치인들이 선심 행정의 일환으로 우후죽순으로 지방공항을 유치해 국가 재정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국장은 “최근 판결이 난 용인경전철이나 공항, 고속도로, 항만 등을 들여다보면 똑같다. 정치권과 지자체 의지만으로 우선 추진한 후 나머지는 끼워맞추는 것”이라며 “세금이 새고 재정 파탄 상태에 이르러도 아무도 책임 안 진다. 지자체장이나 담당 연구기관 책임자들은 손해배상 책임을 물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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