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완재에서 대체재로 윤-한 관계 변화…전당대회 친한 세력 결집 여부에 관심 집중
2023년 12월 26일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은 집권당 구원투수로 여의도에 입성했다. 총선 패색이 짙어지자 한 전 위원장 등판 요구가 거셌고, 윤 대통령 선택도 ‘한동훈’이었다. 한 전 위원장은 윤 대통령이 가장 아꼈던 후배 검사였고, 정부 출범 후엔 법무부 장관에 임명되며 ‘소통령’으로 불렸다. 윤 대통령이 믿고 당을 맡길 수 있는 최적의 카드였던 셈이다.
‘정치인 한동훈’은 등장과 함께 여권 간판으로 떠올랐다. 대통령 임기가 2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차기 주자로 거론됐다. 윤 대통령과 한 전 위원장 관계를 두고 여의도에선 보완재가 아닌 대체재로 분석을 하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질수록 한 전 위원장 몸값은 높아질 것이란 내용이었다.
한 전 위원장 역시 총선 승리를 위해선 윤 대통령과의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는 당 안팎 지적을 수용하는 스탠스를 취했다. 여기엔 향후 정치적 행보를 위해선 ‘윤석열 아바타’ 이미지를 깨야 한다는 ‘컨설팅’ 결과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진다. 한 전 위원장이 총선 그 이후를 염두에 뒀다는 뜻이다. 그러자 윤 대통령 주변에선 당혹감이 흘러 나왔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형성될 무렵, 이를 증폭시키는 트리거가 나왔다. 소위 ‘마리 앙투아네트’ 발언이었다. ‘한동훈 비대위’ 김경율 전 비대위원이 김건희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빗대며 명품백 수수 의혹 등에 대한 윤 대통령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이는 당내 ‘김건희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정가에선 김 전 비대위원이 총대를 멨다는 반응이 나왔다.
대통령실은 발끈했고, 그 후 ‘한동훈 사천 논란’이 불거졌다. 한 전 위원장이 김경율 전 비대위원에게 공천을 주려고 부적절한 개입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명분은 공천을 내세웠지만 한동훈 비대위가 ‘역린’을 건드려 윤 대통령 심기를 거슬렀다는 게 공공연한 이유로 꼽혔다. 친윤계는 일제히 한 전 위원장을 향해 공세를 가하기 시작했고, 한 전 위원장은 대통령실로부터 받은 사퇴 요구를 공개한 뒤 이를 거부하며 응수했다.
총선을 앞두고 ‘투톱’ 불협화음에 대해 여권에선 우려가 쏟아졌고, 둘은 다시 손을 잡았다. 하지만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는 평이 많았다. 총선 패배 후 나타난 일련의 현상 역시 이런 연장선상에서 풀이된다. 친윤계는 노골적으로 ‘한동훈 책임론’을 언급하며 그를 비토했고, 한 전 위원장의 전당대회 출마 전망에 대해서도 평가절하했다. 한 전 위원장이 출마할 경우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실력행사 가능성도 언급했다.
한 친윤 의원은 “대통령 의중은 명확하다. 이제 한동훈은 ‘친윤’이 아니다. 한 전 위원장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면서 “전당대회 출마는 본인 자유다. 하지만 친윤계에선 다른 후보를 밀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과 오랜 근무 경험이 있는 전직 검찰 관계자도 “한동훈이라서 더욱 충격이 컸을 것이다. 윤 대통령에게 한 전 위원장은 말 잘 듣는 ‘모범생’ 이미지다. 그런데 자신을 향해 칼을 겨눴다. 관계 회복은 쉽지 않아 보인다”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비윤계로 꼽히는 한 중진 의원은 총선 이전이던 3월 30일 통화에서 “윤 대통령은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배신을 했다고 보는 것 같은데 잘못된 것이다. 한 전 위원장이 검찰과 정부 소속일 땐 부하 직원인 게 맞지만, 지금은 엄연히 집권당 대표다. 2인자 개념이 아니다. 당은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라면 대통령도 비판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윤 대통령에 충성할 것이라던) 예상과는 달리 제 역할을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5월 13일 법무부가 단행한 검찰 인사 역시 윤-한 갈등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이날 법무부는 김건희 여사 수사를 맡고 있던 서울중앙지검장 주요 지휘부를 모두 교체했다. 이 중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 김창진 1차장검사, 고형곤 4차장은 김 여사 수사를 두고 용산과 미묘한 잡음에 휩싸였던 검사들이다. 이들은 ‘특수통’인 동시에 검찰 내에서 ‘친한동훈계’로 꼽힌다.
서초동에선 한 전 위원장에 대한 불신이 이번 인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앞서의 전직 검찰 관계자는 “대통령실은 서울중앙지검이 김 여사 수사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배경에 한 전 위원장이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을 하는 것 같다”면서 “윤 대통령이 보다 확실한 우군을 (김 여사 수사 라인에) 배치하기 위해 무리해서라도 인사를 밀어붙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용산 내부의 기류는 한 전 위원장의 전당대회 도전에 가장 큰 리스크가 될 전망이다. 최근 들어 분화의 모양새를 띠고 있긴 하지만 친윤계는 여전히 여권 최대 계파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열린 당내 주요 선거에선 친윤이 ‘낙점한’ 후보가 선출됐다. 비대위원장 시절 공천에 별다른 지분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것도 한 전 위원장으로선 아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한 전 위원장의 정치력 부재 지적도 넘어야 할 산이다. 벌써부터 당내 일각에선 ‘한 전 위원장이 총선 때 셀카를 찍은 것 말고 무엇을 했느냐’라는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윤석열 정부 후반기를 이끌 집권당 수장으로, 그리고 2026년 지방선거와 2027년 대선을 치를 수 있도록 당의 재건을 다질 만한 자질이 있는지에 대한 회의감이다. 친윤계에서도 ‘베테랑 대표’ 기조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한 전 위원장 측은 출마할 경우 해볼 만한 싸움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전체 당선인 108명 중 44명에 달하는 초선, 수도권을 중심으로 하는 비영남권 등을 포섭하면 세 대결을 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실제 10여 명의 당선인들은 한 전 위원장 지지 의사 표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 전 위원장 측은 현 시점 보수 진영에서 한 전 위원장 대안이 없다는 점도 부각한다. 윤 대통령과 친윤계가 때리면 때릴수록, 한 전 위원장의 최대 아킬레스건이었던 ‘아바타’ 이미지를 벗을 수 있을 것으로도 기대한다.
한 비례대표 당선인은 “한 전 위원장이 ‘황교안의 길’을 갈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더라.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황교안 전 대표는 선거 패배로 보수의 원흉이 됐다. 그런데 한 전 위원장은 오히려 지금 더 원하는 이들이 많다. 지금 정부로는 정권 재창출이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동훈 역시 윤을 넘어서야 살 수 있고, 앞으로 그렇게 갈 것이다. 나뿐 아니라 많은 당선인들이 용산 거수기 역할을 하는 대표를 원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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