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조사 일정 조율부터 동석까지 ‘업무’ 그대로…학부모도 부담감 커져 ‘변호사 선임’ 증가
A 교사에 따르면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화해 의사가 있는지 학부모를 통해 먼저 확인한 뒤 학생에게 화해를 권유하는 것이 일반적 절차다. 그런데 해당 조사관은 그런 절차 없이 가해 학생에게 직접 화해를 종용했고, 이 때문에 학부모는 조사관 변경을 요구했다. 결국 A 교사는 조사관과 학부모 사이 갈등을 조정하느라 관련 업무가 배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
교육부가 지난 3월 새 학기부터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 제도를 도입했다. 퇴직한 교원이나 경찰이 위촉직 형태로 채용돼 전국 177개 교육지원청에 배치됐다. 조사관은 학교폭력 의혹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 학부모, 목격 학생 등을 대상으로 사안을 조사한 뒤 그 결과를 교내 학교폭력 전담기구에 보고하는 역할을 한다. 그동안 교사들이 학교폭력 조사를 직접 맡는 과정에서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에 시달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정책으로, 교육부는 교사들의 관련 업무 부담이 상당 부분 경감될 것이란 기대를 내놨다.
하지만 제도가 2~3개월 운영된 사이 교사들은 체감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교폭력 발생 시 업무 부담이 크게 줄어든 느낌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반응이 곳곳에서 나온다. 전담 조사관의 조사 일정을 교사가 잡아주는 일부터 조사 현장에 함께 동석해야 하는 일까지 교사가 조사 과정 전반을 챙기느라 업무가 경감되기 어려운 구조라는 호소다.
서울의 한 학교에서 3년째 생활부장 겸 학교폭력 대응 업무를 담당해온 B 교사는 “학폭 전담 조사관은 말 그대로 ‘사안 조사’만 맡고 조사 일정 조율은 여전히 교사가 다 맡고 있으며 조사가 이뤄질 때는 교사가 동석해야 해 (할 일이 많다)”며 “오히려 ‘조사관’이라는 상전이 한 명 더 생긴 격”이라고 말했다.
학부모들의 문의나 민원에 시달리는 현실도 여전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경기지역 A 교사는 “학부모들은 학폭 신고 접수부터 심의 결과 과정까지 조사관에게 궁금한 것이 생기면 일단 교사에게 연락해 확인하거나 의사를 전달하려 한다”며 업무 부담이 여전하다고 호소했다. 그는 “전담 조사관에 대한 불만으로 학부모가 조사관 교체를 원해 결국 조사관이 재배정되는 바람에 내 업무가 더 늘어났다”며 학부모들의 불만·민원을 피할 길이 없다고 토로했다.
많은 학부모들은 이제 막 시행된 학폭 조사관 제도를 썩 신뢰하기 어려워 교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지 못하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학교나 일선 교사가 아닌 외부 인사가 조사를 맡으면 공정성과 객관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학부모가 있는 반면, 학교와 학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것이라며 외부 인사의 조사 참여에 부정적인 학부모가 많다.
학교폭력 전문인 황혜영 법무법인 에이파트 변호사는 “전담 조사관은 제3자 입장이기 때문에 객관적‧중립적일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면서도 “교사들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 (가해‧피해) 학생들의 관계나 사건 전체를 종합적으로 살피는 것과 달리 (외부 조사관은) 사건에 대한 주장만 정리하고 학생들의 심리 상태는 꼼꼼히 살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외부 조사관의 참여로 학교장 차원에서 해결될 일이 오히려 더 커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심리가 읽힌다. 조성백 서울시교육청 학폭담당 장학사는 지난 2월 국회에서 열린 ‘학폭전담조사관제 방안과 과제’ 토론회에서 “지난해 서울 초중고 학폭 9000여 건 가운데 60% 정도가 학교장 자체해결이고, 80% 정도가 경미한 조치에 그쳤다”며 “학교장 자체 해결이 가능한 사안까지 모두 외부 조사관을 거쳐 심의위원회 개최로 이어지는 등 사법적 해결에 과잉 의존하다 좋지 않은 결과로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학폭 조사관 제도가 학부모들에게 변호사 선임에 대한 부담감을 높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부 조사관이 개입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사 결과를 끌어내기 위해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의 도움을 받으려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혜영 서울교사노조 대변인은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 모두 (조사 결과에) 부담감을 느끼면서 학부모들이 학폭 전문 변호사를 선임하려는 움직임이 늘었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전했다.
내년부터는 학교폭력 가해 처분 이력을 대학입시에 의무 반영하는 조치가 본격 시행될 예정이어서 조사 초기 단계부터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려는 학부모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사들 중에는 전담 조사관이 학교폭력 사안 조사 업무를 맡기 시작하면서 관련 업무가 줄었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분명히 있다”며 “조사 일정을 조정하는 업무 책임 관계나 조사 시 교사의 동석을 의무화하는 부분 등은 시도 교육청에 따라 모두 다른 상황으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교사들의 부담을 덜 수 있는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외부 조사관에 대한 학생·학부모들의 불만 민원에 대해서는 “(조사관) 개인의 특성이나 역량 차이로 발생하는 문제는 지속적인 연수와 교육 등으로 공통적 역량을 확보할 수 있도록 보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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