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업무 오히려 늘고 사건 처리 지연돼…조사관 숫자·역량 부족 문제 우려가 현실로
#"우리가 콜센터냐" 교사들 폭발 직전
최근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끼리 작은 다툼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한 아이가 다른 친구에게 손찌검을 했는데, 피해자 부모의 문제 제기로 결국 학교폭력 사건으로 접수됐다. 하지만 교사들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동안의 경험에 비춰 보면, 피해자가 정중히 사과하면 끝날 사소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이 예상과 다르게 흘렀다. 학교 측이 절차에 따라 학폭 전담조사관에 사건을 이첩했는데, 경찰 출신 전담조사관은 먼저 손찌검을 한 학생을 취조하듯 몰아붙였다. 그러자 해당 학생의 학부모는 당초 사과하겠다는 뜻을 거두고 "법대로 제대로 해보자"는 식의 태도로 돌변했다.
이 학교 교사는 "적당히 마무리할 수 있었던 사안이었는데, 전담조사관이 피해 학생을 옹호하고 가해 학생을 지나치게 추궁했다는 인식이 많았다"며 "전담조사관의 열정이 과했던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가해자 쪽 학부모가 '나도 판을 키워보겠다'는 식으로 나와 학교 전체가 애를 먹었다"고 떠올렸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이 같은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한 학생은 평소에도 특정 친구를 괴롭혀 왔는데 어느 날엔 주먹질까지 했다. 여러 대를 맞은 피해자는 저항하다 한 차례 발길질을 했다. 전담조사관은 이를 '쌍방'으로 봤다. 두 학생을 잘 알고 있던 교사들은 공감할 수 없었다.
애초 학폭 전담조사관 제도는 교사의 학폭 관련 업무를 줄이고, 전문가를 투입해 사안 조사의 전문성을 높이려는 취지로 도입됐다. 2023년 12월 7일 교육부·행정안전부·경찰청 합동으로 마련한 정책으로, 전직 경찰·교원 2700명을 위촉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예고 없이 나온 정책에 발표 당시부터 성급하다는 우려가 잇따랐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위 두 사례처럼 전담조사관의 역량을 놓고도 물음이 잇따르는 데다, 교사의 업무가 오히려 더욱 늘었다는 분위기도 지배적이다. 전담조사관이 있어도 교사가 사건 접수 및 기초 사실관계 조사 업무를 그대로 맡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교사들은 전담조사관의 사건 조사 때도 함께 참석하고 있다.
대전의 한 교사는 "올 2월 교육청이 보낸 학폭 전담조사관 운영계획 공문을 보고 크게 놀랐다"며 "사건의 1차 접수 및 조사를 학교에서 진행한다기에 당최 무슨 말인지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업무가 더 늘고 말았다"면서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제는 학부모에다 전담조사관까지 모셔야 할 판"이라고 털어놓았다.
실제 기존의 학폭 처리 절차는 '학교 자체 조사' 이후 '교육청 학폭심의위원회'로 넘어가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학교와 교육청 조사 사이에 전담조사관의 사안조사가 추가됐다. 게다가 전담조사관의 조사 일정을 잡는 일 역시 교사의 몫이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콜센터 직원이냐"는 성토가 잇따른다.
교사들은 학폭 전담조사관 제도가 사실상 '낙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초등교사노조가 9361명의 초등교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8%가 D학점, 60.6%가 F학점을 줬다고 나타났다. 중등교사노조가 104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19.0%가 D학점, 50.6%가 F학점을 줬다. A학점은 초등 3.6%, 중등 4.9%에 불과했다.
#'교권'과 '학폭조사'의 상관관계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오긴 마찬가지다. 가해자 쪽이든 피해자 쪽이든 신속한 절차를 바라지만, 속도가 많이 느려진 데다 상황에 따라서는 사건 조사가 하염없이 연장되는 때도 있어서다. 이는 전담조사관 숫자가 부족한 데서 불거진 문제로 역시 제도 도입 이전부터 제기됐던 우려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4년 3월 기준 전국 학폭 전담조사관은 1955명으로 정부 목표치보다 28% 부족했다. 모집된 인원 가운데에선 전직 경찰이 37.4%(704명)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한 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전담조사관이 이 학교 저 학교 옮겨 다녀야 하는데, 조사 사건당 20만 원 안팎의 수당이 부족한 듯싶다"고 전했다.
학폭 피해자 부모들을 상담하는 이해준 학교폭력연구소장은 "사안 처리 절차가 복잡하고 길어졌다는 불만은 학부모들 사이에서 이미 자리 잡았다"며 "가까스로 조사에 돌입해도 교사들이 이전처럼 똑같이 개입하기 때문에 '뭐가 달라진 것이냐'며 허탈감을 드러내는 목소리가 크다"고 설명했다.
물론 학폭 전담조사관들도 할 말은 있다. 교사들이 규정상 필요한 부분이야 협조해주지만, 형식에 그칠 뿐 실질적인 도움에는 소극적이라고 토로한다. 학부모 민원 등을 걱정하는 탓인지 각 학생의 특이사항을 설명해주는 데에 소극적이고, 1차 사실 확인의 질도 학교마다 편차가 워낙 크다는 불평이다.
'역량 미흡' 비판에도 항변할 거리가 많다. 수도권의 한 경찰 출신 학폭 전담조사관은 "새 학기 시작 불과 열흘 전에 위촉됐고, 대강당 등에 100여 명이 모여 2∼3차례 교육 받은 게 전부"라며 "학교는 경찰과는 크게 달라 학생의 민감한 사항은 교사들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는데, 아직은 한계가 뚜렷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결국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 가운데 서울·강원·전남교육청 3곳은 학폭 전담조사관 제도의 시행 여부를 각 학교의 선택에 맡기기로 했다. 인천 등 다른 일부 지역에서도 교육청이 교사들과 관련 간담회를 진행하거나, 교원 대상 설문조사 등을 진행하고 있어 선택제 전환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일각에선 이 같은 실태를 교권 하락 문제와 연관 지어 바라보기도 한다. 사실 교사들의 업무 경감 등을 위해 학교에서 발생한 사건을 전직 경찰 등에 맡기는 자체가 적정성을 둘러싼 논란이 불가피한데, 이 같은 제도가 도입된 배경이 실은 '교사들의 무기력감'에서 비롯됐을 수 있다는 분석에서다.
서울의 한 초등교사는 "선생님들이 그저 일을 덜 하고 싶어서 학폭 업무를 외부에 맡기자는 게 아니"라며 "당연히 마음 같아선 학교와 학생들 사정을 잘 아는 교사들이 교육적 측면을 고려해 직접 문제를 풀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교사들에 주어진 권한이 아예 없다"고 토로했다.
이 교사는 "가해자 학생에 어떤 처분을 내리면 '당신들이 경찰이라도 되느냐'는 학부모 저항이 따르곤 한다"며 "와중에 학부모가 정말 경찰이나 변호사를 찾게 되면 학교든 교육청이든 '피곤한 일'로 치부하며 교사들더러 '당신들 선에서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의 태도로 일관해 왔는데, 교사들이 뭘 할 수 있겠나"라고 털어놓았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도 "교사가 숙고 끝에 내린 결론으로도 일부 학부모들이 특정 학생 편을 드는 게 아니냐는 식으로 항의하는 현실은 분명 존재한다"며 "가뜩이나 수업 외 행정 등 여러 업무에 시달리는 교사들로서는 더욱 지칠 수밖에 없는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박 교수는 "학폭 조사는 사실상 수사에 준하는 절차에 이미 돌입한 셈이라 이를 전담조사관에 맡기는 조치를 굳이 나쁘게 볼 필요는 없어 보인다"며 "미국 등 해외에선 경찰이 학폭에 개입하는 문화가 이미 정착한 현실로서, 국내에도 전담조사관 제도가 도입된 이상 교사의 업무 경감 등을 이룰 후속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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